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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으로 사는게 두려워? 우리는 그냥 이렇게 살아

[우먼 인 로컬 - 전주편]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등록 2019.10.29 19:29수정 2019.12.1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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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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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은 비혼여성이자 1인 가구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주거 문제와 사회 안전망에 대해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 유성호


통계청의 '2018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대답은 고작 48.1%에 그쳤다. 작년 혼인율은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저치다. 비혼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비혼 공동체나 커뮤니티도 늘었다. 그러나 새롭게 만들어지는 커뮤니티가 그렇듯 비혼 공동체도 앞선 세대의 롤모델을 찾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지역에 눈을 돌려보자. 여기,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비혼 1세대들이 모인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아래 공간비비)이 있다. 공간비비는 비혼여성과 1인 여성가구를 위한 공간이자 네트워크다.

공간비비의 시작은 2003년 2월 비혼여성들의 소모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란이 조합원이 평소에 알고 지낸 비혼 여성 6명을 모았다. 비혼뿐 아니라 직업적 고민도 함께 나누며 가까워졌다. 그때 지은 이름이 비비, '비혼들의 비행'의 약자다. 이후 2006년 비비는 비혼여성공동체로 스스로 정체화했고, 멤버들이 전주의 한 임대 아파트에 하나둘 모여 살게 되면서 '공동체'에다 '1인가구 네트워크' 정체성까지 추가되었다. 

창립 멤버였던 김란이, 봄봄, 이미정 세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2010년 비혼 여성들과 함께 하는 우정의 공간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를 만들었다. 공간비비에서는 비혼여성아카데미, 페미야학 등 소모임뿐 아니라 요가, 타로, 글쓰기 등의 수업도 연다. 2016년에는 협동조합의 형태를 갖추며 조합원 50여 명의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이 되었다.

창립멤버가 함께 한 지는 벌써 16년. 비비의 시작을 연 김란이 조합원은 50살을 바라보는 나이다. 비혼력이라는 게 있다면 비비의 그것은 꽤 수준급이 아닐까. 하여, 지난 여름의 끝자락에 조합원 김란이와 봄봄을 공간비비에서 만났다.

비혼의 삶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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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이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조합원이 지난 8월 28일 전라북도 전주 완산구 공간비비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비혼으로서 겪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 비혼이 무엇인지 정의부터 내려야 할 것 같다.
"혼인제도 안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안한 분도 있지만 이혼한 사람, 함께 살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스스로 자신이 비혼이라고 생각하면 비혼으로 봐야 할 것 같다.

가끔 자신이 비혼인지 아닌지 헷갈리는데 비비 모임에 참여해도 되냐고 묻는 분도 있다. 자기가 비혼인지 아닌지는 자신이 아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도 우리에게 그런 걸 묻는 건 자신의 상태를 규정하는 데서 오는 안정감 때문인 듯하다. 자기 삶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는 데 지친 분들이 비혼이라는 말 안에서 안정감을 찾는 것 같다."

- 비혼으로 사는 데서 끝나지 않고,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뿐 아니라 공간비비까지 확장한 이유는 뭘까?
"비혼이라도 사는 건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비혼이면 불행할 거라고 짐작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고, 잘살고 있다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는 분들이 있다."

- 비혼은 왜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나?
"우리 사회는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을 애라고 생각하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본다. 사회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건데, 그런 인식은 여성에게만 해당된다. 남자가 결혼을 안한다고 덜된 인간이라고 보진 않는다."

- 요즘 청년들이 비혼을 선택하는 이유가 뭘까?
"결혼하기 어려워서라고들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결혼 자체가 매력이 없다. 젊은 세대들이 살고 싶은 삶의 이상이 결혼제도 안에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굳이 결혼을 선택할 필요가 없는 거다. 특히 결혼하면 남성보다 여성이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감내할 게 훨씬 많다. 우리 때는 선택권이 그것(결혼)밖에 없는 줄 알았다. 지금은 아니다. 그래서 이혼도 많아지는 것 같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 지금이야 비혼이 이상하지 않지만 비비 창립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때는 '비혼'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다. 미혼이라거나 화려한 싱글이라고 했다. 화려한 싱글이라면 돈도 많고 직업도 빵빵해야 할 것 같지 않나? 돈 있으면 혼자 살아라, 이런 말도 많이 들었다. 난 돈도 없는데 어떻게 비혼 해야 하나 싶었다. 우리 때는 불행한 모델 외에 비혼으로서 잘 살아가는 모델이 없었다. 저희가 첫 비혼 세대다. '비혼'이라는 말이 나온 세대고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한 세대다. 후배 세대들에게는 우리가 모델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이지만, 누군가 이미 살았다면 따라가 보면 되는 거니까."

- 비혼여성아카데미도 열었다.
"비혼에 대한 논의를 공식적으로 할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비혼여성아카데미를 열었다. 매년 진행방식이 다른데, 첫해 2016년엔 세대별로 나눠서 진행했다. 20대 비혼에 대한 고민은 달랐다. 주변 친구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연애하는 사람이냐 아니냐로만 만들어 나가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연애 안 하면 매력이 없다거나 실패자로 보는 시선이 싫단다.

30대는 멋있는 비혼 모습에 관심이 많다.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사회생활도 활발하게 하는 시기라서 그런 것 같다. 40대가 되면 결혼은 안 하더라도 남은 생을 누구와 어떤 형태로 함께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이때부터 부모님 부양 고민도 심각하게 하는 것 같다. 부모돌봄은 세대별로 다 가지고 있는 이슈다. 작년과 올해는 비혼 여성을 대상으로 부모돌봄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기도 했다."

- 비비 초창기 멤버 6명은 비혼 1인 가구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고 들었다. 대안 가족으로 봐도 될까? 아님 여전히 친한 친구 정도일까?
"가족 같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가족이 없다면, 어떤 공동체가 가족을 대신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왜 늘 가족이라는 형태로 수렴돼야 하나. 우리는 공동체지만 개인에 대한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간비비에 오는 청년 중엔 공동체라는 말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가족이라는 말로 우리를 표현하긴 어려울 것 같다. 임대아파트 조건이 좋아서 가까운 비비 친구들에게 홍보하다 보니 알음알음 한 아파트에 살게 됐다. '1인 가구 네트워크'라고 봐야할 것 같다."

비혼의 제1 조건은 주거독립

- 비비는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맞다. 비비의 목표는 '각자의 삶을 지키면서 우리를 만드는 것'이다. 중심은 개인에게 먼저 맞춰져 있다. 우리가 굉장히 끈끈하고 모든 걸 같이 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결속력 있게 으쌰으쌰 하는 걸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분도 있다.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일까 걱정했는데 와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함께 하는 건 내가 얻고 싶은 10%를 위해 80~90%를 내놓는 것과 같다. 얻고 싶은 10%가 좋은 거다. 이 공간과 사람이 좋아야 가능한 거다."

- 그런데 왜 협동조합을 꾸렸나.
"비비의 경험이 우리 것만이 아니라 많은 비혼 여성들의 허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었다. 50살을 바라보고 있다. 더 나이가 들면 비혼이라는 정체성보다 '여성 노인'이라는 정체성 고민이 더 커질 거다. 그땐 비혼을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공간비비의 운영을 넘겨줘야 하지 않겠나.

그럴 때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모두의 것이 되려면 협동조합 형태가 좋다. 지금은 50여 명 정도의 회원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회원 회비는 월에 1만 원에서 2만 원 정도다. 회비를 내라고 권장하지만 안 낸다고 딱히 불이익도 없고, 더 낸다고 대단한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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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0일 전주시 커먼즈필드 전주에서 열린 비혼여성 주거독립 실천편 '구해줘! 전주 홈즈!' 행사 모습. ⓒ 비비협동조합


- 비혼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게 뭘까.
"주거 독립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걸 즐기는지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게 주거 독립이다. 돈을 번다고 해도 부모님과 같이 살면 나도 모르게 의지하게 된다. 밥해주고 청소해주고 심지어 용돈을 주기도 하지 않나. 주체적인 내 살림을 꾸릴 필요가 없다. 내가 벌어서 어디까지 꾸릴 수 있는지 해봐야 한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게 된다. 혼자 잘 사는 사람인지, 누군가가 필요한지."

- 몇몇 공간비비 회원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걸로 아는데, 가까이 살면 뭐가 좋은가.
"비비의 비혼여성친구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아파트에 산다. 21가구 정도가 한 아파트에 사는 셈이다. 물론 모두 공간비비 회원은 아니지만 알고는 지낸다. 각자 세대주지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같이 사는 기분이다. 가까이 있어서 도울 일이 많다. 아프면 돌봐주고 입원하면 보러 간다. 물건을 대신 받아 주거나 여행 갔을 때 집을 봐주기도 한다.

새벽에 모르는 사람이 초인종을 계속 누른다며 와달라고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가보니 아랫집 남자가 술에 취해서 집을 헷갈린 거였다. 사실 경찰이나 경비가 있다고 안심이 되는 건 아니다. 그들의 감수성 부족이 폭력이 될 때도 있다. 그럴 때 서로 돌봐줄 이웃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울타리이자 연결망이 되는 거다."

16년 비혼여성공동체의 비결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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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이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조합원이 공간비비에서 운영하는 페미야학, 글쓰기 강좌, 생활요가 등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다. ⓒ 유성호


- 전주여서 주거 안정을 더 쉽게 이룰 수 있는 것 아닐까?
"지역이니까 주거 독립이 가능했다. 서울 집값이면 엄두도 못 냈을 거다. 공간비비 근처의 아파트 시세가 1억에서 2억 사이다. 전주가 사실 비비에게는 최적의 지역이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크가 좋다.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적다. 때문에 그런 네트워크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하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 공간비비 같은 곳이 지역에 있어서 신기하다고 보지 않나.
"비비가 전주에 있어서 신기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비혼여성공동체는 서울에 있을 것 같은가 보다. 전주라서 더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일단 이런 공동체가 많이 없으니 주목을 더 받는다. 또 공동체라는 게 새끈하게 재미만 있진 않다. 안 재미있을 때도 많다. 지역 사람들이 그런 것에 더 잘 적응하는 것 같다. 서울은 계속 새로운 게 생기고 역동적이지 않나.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울로 갔다가 외롭다면서 돌아온다. 다시 여기가 답답하다며 서울로 가기도 한다. 재미있는 걸 원하면 스스로 지역에서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서는 누가 만들어주길 기다리면 안 된다."

- 서로 너무 잘 알면 오히려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전주에서 비비를 아시는 분보다 전주 외 지역에서 아시는 분이 더 많은 것 같다. 전주에서만 오지 않는다. 전주에도 비혼이 많을 텐데, 지금보다 더 많이 오지 않는 건 지역이 작아서인 듯하다. 여기 오면 비혼인 걸 공표하는 셈이니까 부담스러울 수 있다."

- 비혼 노인의 삶도 고민한다고 했는데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
"비비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다. 곧 오십이다. 신체 능력도 떨어질 거다. 사회적 지위도 달라지고 일자리에서도 소외될 거다. 비혼 여성은 일자리가 더 없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고민한다. 노인이 돼서도 즐겁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비비 친구들과 <메종 드 히미코>(게이 실버타운 메종 드 히미코에 청년이 아버지를 찾아가며 시작되는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4대에 걸친 모계 가족의 삶을 그린 페미니즘적 서사 영화) 같은 영화를 함께 보며 어떻게 살고 싶냐고 서로 묻곤 했다. 각자의 삶을 존중받고 싶지만 노화로 인한 돌봄도 필요하다.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공간을 꾸려야 한다. 세대 간 나눔도 고민한다. <메종 드 히미코>에 보면 젊은 세대가 농활처럼 노인들의 공간에 오지 않나. 상상하면 이루어진다고 믿기에 여러 방향으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비비가 미치는 영향력은 공간비비를 중심으로 더 확대되고 있다. 공간비비는 부모돌봄을 하고 있는 비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자기돌봄캠프', '페미무비나잇', '페미 비기닝' 등을 통해 전주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공간비비에서 운영하는 페미야학은 굳이 비혼여성만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여성으로 사는 자신의 삶을 해석하는 데 좋다는 게 김란이의 주장이다. 페미야학은 1학기, 2학기도 나눠져 있는데다 방학, 졸업식도 있는 일 년간의 긴 과정인데도 꾸준히 인기가 좋다. 김란이가 하는 타로 강좌와 봄봄이 하는 글쓰기 강좌도 일반 여성 대상이다.

6명의 작은 비혼여성공동체로 시작된 비비가 모든 여성에게 열린 공간비비가 되었다.

* 여성생활문화공간비비협동조합 *
063) 236-0615
http://www.spacebb.co.kr/ spacebb@hanmail.net

 
"비혼은 주의도 아니고 선택도 아니다"
김란이가 생각하는 '비혼'

인터뷰가 끝나고 공간비비를 나서는데 김란이와 봄봄이 묻는다.

"비혼이신가요?"

고개를 끄덕이자 비혼 관련 문구가 적힌 스티커와 자물쇠를 선물해준다. <비로소 혼자 서기>, <비혼 뒤 땅이 굳는다>, <비혼을 피우다> 등이 적힌 스티커다. '비혼'이라는 말로 이렇게 재미있는 말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 사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비혼에 따라붙는 동사를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비혼을 '선택했다'라고 해야 하는지 '비혼 상태다'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이에 대해 김란이가 말한, 인상 깊은 대답을 덧붙인다.

"비혼은 어떠한 '주의'도 아니고 '선택'이라는 말을 쓰기도 애매한 말이다. 답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비혼을 일시적이나 임시적인 상태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삶의 계속적 형태로 받아들여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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