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지만 사람 대접 못 받는 '몸'

[서평] 염운옥 '낙인찍힌 몸'

등록 2019.10.08 09:21수정 2019.10.08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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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몸의 온전한 주인일까? 몸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즉 인종, 국가, 계급, 성, 성 정체성 등에 따라 달리 인식되고 취급된다. <낙인찍힌 몸>의 저자 염운옥은 흑인에서 난민까지, 인종화로 억압당하고 차별당한 몸의 역사를 사려 깊게 더듬는다.

인종, 계급, 젠더가 교차하는 여성의 몸


인종적으로 가장 차별받은 흑인의 몸을 노예의 역사에서 빼고 말할 수 없다. 이 불편한 역사는 선진문화를 누린 서양의 많은 나라들이 흑인 노예를 착취하고 억압한 반인권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증명한다.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은 노예제의 주역이라는 부끄러운 그림자를 지울 수 없고, 미국 자본주의 약진 또한 철저히 흑인의 희생에 빚지고 있다.

노예제 폐지 운동이 흑인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과학적 인종주의와 동시대에 병행되었다는 역설은, 노예제 폐지 운동을 추동한 '선의'의 인도주의가 '정의까지 달성했는가를 뼈아프게 묻고 있다.

저자는 흑인 여성 세 명(사르키 바트만, 메리 프린스, 서저너 트루스)을 소개하면서 인종차별의 정점에 있는 흑인의 몸이 어떻게 계급, 젠더와 교차하는지를 소상히 다룬다.

이 중, 바트만이 케이프타운에서 런던 그리고 파리로 옮겨지는 과정은 이주가 아닌 인신매매당한 몸의 역사를 보여준다. 흑인의 열등함을 증명하기 위해 기형성과 동물성을 과장한 바트만의 몸은 '괴물 쇼'에 전시됨으로써, 식민지 지배(백인의 우월함)의 정당함을 꾀하는 데 이용당한다.

살아서 학대당한 바트만의 몸은 죽어서도 철저히 왜곡된다. 사후 퀴비에에 팔린 바트만의 몸은 24시간도 안 돼 장례식조차 없이 즉시 해부되어, "생식기는 유리병에 담기고, 뼈는 분리되어 박제된 채 파리 인간박물관에 전시"(154쪽)된다. 흑인 여성 노예였던 사르키 바트만의 몸이 사는 동안 그리고 사후 어떻게 유린되었는가를 밝히는 일은, 식민화된 인종차별과 계급차별, 여성차별이 중첩되며 작동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 한 여성 서저너 트루스를 살펴보자. 주지하듯이 서저너는,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라는 명연설로 유명한 노예 출신 흑인 여성 운동가다. 스스로를 '진실을 전하고 다니는 사람'이란 뜻의 서저너 트루스로 명명한 것은, 노예에서 벗어난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살지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의지의 소산일 터다.

그는 "백인 아이들에게 젖을 빨린 가슴, 자기 자식들은 젖을 빨지 못했던 가슴을 헤쳐보"(190쪽)임으로써, 투쟁의 방식으로서의 벗은 몸이 어떻게 두려움 없는 몸이 되는가를 재현했다. 그렇다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난 '서저너들'은 지금 해방되었을까?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의 주인공 한매는 유모와 가사도우미를 병행하며 돌봄 노동을 수행한다. 영화 말미의 서늘한 반전은, 결혼 이주 여성이 처한 처참한 반인권 현실과 그럼에도 지키고 싶었던 그의 모성이 어떻게 침탈당하는지를 아프게 보여준다.

결혼 이주 여성인 한매의 현실이야말로 소수자의 인권이 어떻게 인종, 계급, 젠더와 맞물리며 피해자의 몸이 되는가를 설명한다. 한매처럼 '글로벌화된 메이드'로 대체된 현대판 '서저너들'은 지금 세계 각처에서 상류층 여성들의 가사, 돌봄 노동을 대신하며 살고 있다. 이 현실은 노예제 하의 흑인 유모가 "재생산 노동의 인종적 분업"으로 완벽히 대체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종교의 인종화로 차별당한 유대인의 몸
 

'인종화된 몸'의 명백한 담론으로, "유대인의 종교 문화적 특성을 생물학, 신체적 열등함과 연결 짓는 유대인 몸 담론"(231쪽)을 빼놓을 수 없다. 13세기부터 매부리코, 두툼한 입술, 악취, 피 흘림 등 열등하게 고착된 유대인의 몸은, 마침내 유대인 남성 월경설까지 유포되며 혐오된다.

이는 유대인의 몸을 여성의 몸으로 젠더화시켜 열등한 존재로 만들려는 남녀 위계적 이분법이 낳은 결과다. 이렇게 오랜 시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억압당하고, 나치에 의해 절멸 수준의 홀로코스트를 겪고 살아남은 유대인은 이후, 인간의 몸을 어떻게 구성했을까.

유대인 국가인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보인 유대인의 이중성은 피해자성을 극복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1980년 이스라엘로 유대인 이주가 진행될 당시 에디오피아 유대인들에게 보인 차별과 아랍계 이스라엘인 군대 입대를 불허한 정책,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무자비한 인권 침탈을 불편하지 않게 바라보기란 매우 어렵다. 존중받아본 적이 없는 결핍의 역사는 성찰을 메마르게 하는 걸까.
 
저자의 '인종화된 몸' 담론은 여성 몸을 둘러싼 '베일 논쟁'으로 옮아가며 흥미를 더한다. 히잡, 니카, 브르카, 차도르 등 다양한 종류의 베일은 무슬림 여성들에게, "'살아온 몸'의 일부이자 '제2의 피부'다"(298쪽) 무슬림 여성의 베일 속 눈은 관찰하는 '카메라의 눈'으로 변이되며, '보여지는 것'에서 '보는 시선'으로 시선을 역전시킨다.

이를 견딜 수 없는 식민지 남성성은 베일을 '벗기고 싶은 대상'이자 '문명화를 위해 벗겨야 하는 기표'로 만들며, 무슬림 여성의 복장 문제를 '젠더화된 이슬람 포비아'로 작동시킨다.

<베일 벗은 알제리>에서 파농은 식민지 지배자의 '베일 벗기기'가 실은, 누가 알제리 여성의 몸을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였음을 간파한 바 있다. 지배자인 프랑스 남성성이 피지배자인 알제리 남성의 가부장을 건드려 자존심과 사회구조를 파괴하려 든 시도로 본 것이다. 이 지점에서 알제리 여성은 사라지고, 몸만 남성들의 싸움터로 남게 된다. 결국, 식민주의건 반식민주의건, 이들이 여성의 몸을 대상화한 가부장의 수호자이며 공모자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지금, 여기, 한국에서 벌어지는 '인종화된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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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인 찍힌 몸' 표지 ⓒ 돌베개

 
인종화된 몸의 역사를 추적한 궤적의 종착지로 저자는 어디에 이르게 될까? 지금, 여기, 대한민국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들을 보는 우리의 태도는, 우리 또한 차별과 억압의 기제로 '인종화된 몸 담론'을 작동시키고 있음을 적시한다.

한국에 이주민 정책 자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한국에 이주민이 유입될 수 있는 경로는 고용허가제와 '다문화정책'으로 불리는 결혼 이민자 정책뿐이다.

고용허가제가 약탈적 노동제도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영주권 신청을 막기 위해 딱 4년 10개월의 기한을 두고, 이후 더 정주하려는 이주민 노동자들을 불법 체류자로 만드는 현실은, 노동자인 사람을 한낱 물건 정도로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년 DMZ 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다큐 <안녕, 미누>는, 노동시장에서 이용되고 버려진 이주노동자가 어떻게 아픈 현실을 견디고, 그럼에도 이 차별의 땅인 한국에서 얼마나 한국인으로 살고 싶어 하는가를 보여주었다.

영화의 주인공 미누는 청춘을, 반평생을 한국에서 보냈다. 한국을 사랑한 그는 한국인이 되어 한국에서 살고 싶었지만, 한국은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가 영화 속에서 한국인보다 더 진한 감성으로 부르는 '목포의 눈물'은, 한국인의 자격이 대체 무엇일까를 묻게 했다. '헬조선'이라 저주하는 한국을 그토록 사랑하는 미누는 왜 한국인이 될 수 없는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일시적 체류를 허락받아 겨우 한국에 입국했던 미누는 귀국 후 죽었다. 충격이었다. 그렇게 애타게 오고 싶었던 한국을 다녀간 후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는 소식은, 영화제에서 "더는 여한이 없다"고 밝힌 소감이 예언이 되게 했다. 그의 사망 소식 이후, 미얀마 이주노동자 탄저테이가 폭압적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 사망했다는 연이은 비보는, 이주민 노동자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있는가를 고발했다. 탄저테이는 고작 26살이었다.

결혼으로 이주한 여성들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의 결혼이민정책이 인신매매성 반인권 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부 결혼이주여성의 한국인 남편들이 '비싼 돈을 주고 사 왔는데 왜 내 맘대로 못 하느냐'고 말하는 현실이 이를 슬프게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지난 7월 11일자 <한겨레> 기사 참고).

게다가 이주민 여성이 처한 가정 폭력의 현실은 어떤가. F-6 비자로 체류하다 2년 후 정주권을 심사받게 하는 가부장성 결혼이주정책 또한, 결혼 이주민 여성의 인권을 사각지대에 방치하게 두는 제도로, 조속히 개선되어야 한다.

켄 리우의 단편 소설 <종이 동물원>는 결혼 이주민인 동양 여성이 이주한 미국의 문화에 동화되라는 압박 속에, 자신다움을 상실하고 황폐하게 소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자신의 이름을 바꿔야 했고, 고향의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고향의 말을 잊어야 했다. 자신을 다 지워야만 그 나라 사람이 될 수 있는 폭력이, 지금 여기 한국에서도 '다문화'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다.

한국인도 외면하는 전통다도를 결혼 이주민 여성들에게 가르치며 전통문화를 수호하라는 동화정책을 과연 '다문화'라 할 수 있을까. '다문화'가 본래 "인권에 포함되지 않는 소수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담론이라면, 지금 한국 다문화정책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자문하고 시정해야 한다.

끝으로, 예멘 난민에게 퍼부어졌던 혐오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에게 표출된 '이슬람 포비아' 역시 무슬림을 악마화하려는 '인종화된 몸'담론에 기반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한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 인정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은, 우리 역시 '제도화된 인종주의'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방증한다. 일본, 사할린, 만주, 멕시코, 쿠바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 또한 줄기찬 난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낙인찍힌 몸 - 흑인부터 난민까지, 인종화된 몸의 역사

염운옥 (지은이),
돌베개, 2019


#낙인찍힌 몸 #염운옥 #안녕, 미누 #다문화정책 #이주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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