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방을 찾는 50대 남자들의 고민

[내 인생의 하프타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사람들

등록 2019.10.02 15:00수정 2019.10.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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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삶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주말이면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있다. 서울 근교 어느 도시에 있는 목공방이다. 그곳에서 목공을 배우는 친구들은 작은 가구 등을 만들며 주말을 보낸다. 목공을 배우지 않더라도 주말 저녁쯤이면 친구들이 공방으로 모여든다. 그곳을 운영하는 주인 A(54세)도 고등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6년 전쯤 그 친구가 목공방을 차렸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난 그의 직업 변화가 인상 깊었다. 사람들은 직장을 옮기거나 사업을 시작할 때는 그 전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주로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 친구는 매우 달랐다.


내 명함첩에는 A가 예전에 건넨 명함이 두 장 있다. 한 장은 대기업 과장 시절 명함이고, 다른 한 장은 그가 운영했던 회사 사장 명함이다. 공대를 나오고 대학원에서도 '내연기관'을 전공한 친구는 자연스럽게 자동차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10년 정도 다닌 A는 다른 길을 찾고 싶어서 사업을 시작했다. 전공이나 경험과는 상관없는 IT 회사였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주 고객이 정부여서 매출은 안정적이었다고 들었다. 그랬던 그가 돌연 목공방 주인이 되어 나타난 것.

자동차 다루던 그는 왜 목공방을 차렸나
 

친구의 공방 대기업을 다니고 사업도 한 친구는 어느 날 공방 주인이 되어 나타났다. ⓒ 강대호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 대기업은 안정적이었지만 큰 조직에서 작은 개인이 갖는 한계를 절감했지. 사업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결과물보다는 절차와 근거를 우선 따지는 고객을 상대하면서 사람에게도 치이고 사업에 대한 흥미도 놓아버린 거지."

목공방 주인이 된 A의 말이다. 그는 40대 중반을 지나갈 즈음 삶과 일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고 털어놨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런 일은 어떻게 찾을 건지, 그리고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갈 건지 등.

그는 다양한 자료를 뒤지고 정보를 캐던 중 목공의 세계를 알게 됐다. 한 나무공방 본사에서 창업 교육 10주 과정을 들었다. 큰 기대 없이 배우기 시작했지만 깊은 매력에 빠졌고,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고, 새로운 가능성도 찾았다.


"공대 출신이라 그런지 나를 위한 작업장에서 공구를 다룰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 그리고 뭔가를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도."

A는 창업 교육을 마친 이후에도 개인적으로 수련을 이어갔다. 혼자서 큰 나무를 기계 톱으로 작게 자르고 다양한 공구로 다듬으며 자기가 진짜로 원하던 걸 알게 됐다. 또한 당시에는 아직 목공방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때가 아니라서 사업적인 기회도 보였다. 목공을 배우며 자기 마음의 소리도 들었고 새로운 미래 계획도 세운 것.

"사실 나 같은 사람이 어디엔가 또 있지 않을까 하는 모험심도 있었지."

그렇게 A는 2013년 6월 목공방을 열었다. 초기에는 장비 및 재료 마련 비용이 꽤 든 데다 불안정한 수입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고등학교 동창 등 지인들의 큰 호응 덕에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A는 개인 강습 과정과 취미 과정을 운영해 수강생들을 받았다. 처음에는 수강생이 지인들 중심이었는데 점차 다른 강습생들도 들어왔다. 간혹 동호회 등의 요청이 오면 단체 강습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즈음부터 친구네 공방이 자리한 도시에는 비슷한 콘셉트의 목공방이 늘어나기도 했다.

목공방을 찾는 남자들의 고민
 

친구의 공방 공대 출신인 친구는 자기만의 작업실과 공구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고 했다. ⓒ 강대호

   
A가 운영하는 목공방의 남녀 수강생 비율은 현재 8:2로, 남자 수강생이 현저히 많다고 했다. 그것도 우리 또래, 50대 중반 즈음의 남자가 다수. 이유가 궁금했다. 친구는 자세히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면서도 수강생에게서 보고 들었던 것을 떠올렸다.

"생각해 보니 나와 수강생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살아온 거 같아."

남자 수강생 중 다수가 자기처럼 공대를 나와 전공과 관련한 회사에 다닌 것 같다고 했다.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다들 "자기만의 작업실에서 특별한 공구를 만지는 낭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는 것이다.

또한 엇비슷한 경험을 해온 사람들이 모이니 자연스럽게 자기 고민이나 계획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개인 작업을 하러 공방에 나와 거친 나무를 다듬으며 자녀의 취업이나 결혼 걱정, 퇴직 후 진로를 두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식이다. 

A는 "그래서 다들 공방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가 보다"라고 짐작했다. 실제로 그는 목공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긴장하고 이완하는 걸 수시로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나무를 자르거나 못질할 때는 바짝 긴장해야 하지만 구상을 한다든지, 곱게 다듬는다든지 할 때는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고. 더구나 가구나 소품을 만들며 왜 그걸 만드는지, 왜 그렇게 디자인을 했는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마음에 있는 말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다고 덧붙였다.

난 목공에는 취미가 없지만 그 분위기는 상상이 갔다. 같은 시절을 살아온,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같은 취미를 가진 남자들. 모두 함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묵묵히 작업하다 보면 어느새 완성되어 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고,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주위에 자랑할 수 있다는 성취감도 얻을 수 있는 게 목공이 주는 매력 아닐까."

물론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해도 성과물을 얻는 걸 목표로 한다. 때론 그 성과물이 눈에 보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조직의 일원으로 맡은 부분만을 해낼 때는 전체를 보기도 힘들거니와 성과물도 수치로만 볼 때가 많을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목공방에 오면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그것도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성과물을 직접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런 경험을 하진 못했지만 손수 자르거나 못질해서 만드는 묘한 성취감은 상상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가는 사람들
 

친구의 공방 같은 세월을 살아온, 비슷한 경험을 한, 같은 또래의 남자들이 많이 찾아 온다고. ⓒ 강대호

 
A는 수강생들이 작업에 몰입하는 과정을 지켜볼 때면 감동하는 일이 많다고 했다. 직접 만들 작품을 머리로 상상하거나 종이에다 그려볼 때의 진지한 표정이, 하나의 소품을 완성할 때 살짝 미소짓는 얼굴이, 완성된 작품을 집으로 가져가려고 차에 실을 때 한껏 상기된 얼굴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

그런 모습을 전해주는 공방 주인 친구의 얼굴도 즐거운 흥분으로 달아오른 듯했다.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살아왔던 반생과 전혀 다른 삶을 살면서 가장 크게 변화한 건 무엇인지.

"직장에 다니고 사업을 하면서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고, 공방을 열고부터는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 무엇보다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걸 찾아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게 가장 큰 변화지."
 

간혹 목공방을 차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A에게 상담하러 온다고도 한다. 그럴 때면 그는 먼저 인지도 높은 나무공방의 본사에서 정식 교육을 받아보라고 권한다. 또한 상담하러 오는 사람의 대부분이 목공을 좋아하면서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과 돈을 버는 건 다른 차원'이라고 꼭 조언해준다. 전국에는 좋아하면서 매우 잘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테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까지 좋은 기운을 얻는 듯했다. 세상에 다양한 에너지원이 있지만 사람 마음만큼 좋은 에너지는 없다고 느꼈다.
덧붙이는 글 '내 인생의 하프타임'은 격주 수요일에 연재됩니다.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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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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