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계기로 언론개혁" 주장 펴다 엉뚱한 사례 끄집어 든 박원순

[팩트체크] ‘징벌적 배상’ 사례로 든 1982년 미국 방송사 소송, 실제로는 원고가 한 푼도 못 받아

등록 2019.10.01 14:57수정 2019.10.0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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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9월 19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 이희훈

 
박원순 서울시장이 1일 언론개혁을 강조하는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발언을 했다.

박 시장은 이날 오전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 출연해 조국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문제도 있고, 또 하나는 언론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확정되지 않은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확정된 것처럼 막 흘리고 쓰고 이러는 것이 미국 같은 경우는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른바 징벌적 배상의 원칙이라는 게 있다"며 1982년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전 주베트남 미군 총사령관이 미국 방송사 CBS를 상대로 낸 소송을 예시했다.

"웨스트모어랜드 대 CBS라는 사건이 있어요. 그게 약 1000만 달러의 배상을 하게 했거든요. 그러면 100억 원이 훨씬 넘잖아요? 그러니까 보도를 하나 잘못하면 100억 원의 배상금을 물리는 거예요. 이러면 언론이 확인하지 않으면 다양한 취재를 통해서 진실이라고 스스로 확인했을 때만 쓸 수 있는 것이죠."

박 시장은 "제가 이거에 대해서는 연구도 하고, 책도 한번 쓰려고 자료도 엄청 모았는데 서울시장이 되는 바람에 못했다"고 덧붙였다.

사실관계 잘못 전달... "다른 사례와 헷갈린 듯"

박 시장이 예시한 소송은 1982년 1월 23일 CBS가 방송한 다큐멘터리 '계산되지 않은 적 – 베트남의 기만'에서 시작된다.

1968년 1월 베트콩의 구정대공세 당시 미군의 오판을 비판한 방송 내용에 대해 웨스트모어랜드는 "가공의 인물이나 왜곡된 인식을 가진 증언을 기초로 한 것"이라며 강력 부인했다.

CBS가 자체 조사를 거친 뒤 15분 분량의 해명 방송 기회를 주겠다고 제의했지만, 웨스트모어랜드는 이를 거부하고 CBS 사장과 프로그램 담당 PD, 수석기자 마이크 월러스, CIA 정보분석담당자 샘 애덤스 등 4명을 상대로 1억 20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984년 10월 9일 뉴욕에서 시작된 재판의 최대 쟁점은 웨스트모어랜드가 1968년 구정대공세가 있기 전에 적 병력의 규모를 30만 명 이내로 예측했냐 여부였다.

1967년 8월까지 웨스트모어랜드의 미군사령부는 베트콩 수를 30만 명, CIA는 50만 명으로 각각 평가했다. CIA의 판단을 따를 경우 미국 린든 존슨 행정부는 전쟁에 이기기 위해 베트남 파견 병력 수를 파격적으로 늘리거나 아니면 철수를 단행해야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병력 증파는 미국내 반전 시위를 가열시킬 우려가 높았고, 철수는 강대국의 자존심이 허용되지 않는 선택이었다.

웨스트모어랜드는 사령부 정보부장 게인즈 호킨스 대령에게 "적의 군사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곤란하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웨스트모어랜드가 결국 적군 규모를 30만 명 이내로 꿰어 맞춘 보고를 워싱턴에 했다는 게 CBS의 주장이었다.

결국 배심원 평결이 임박한 1985년 2월 12일, 호킨즈 대령 등 웨스트모어랜드의 부하들이 "장군의 '30만 명 상한선' 지시는 사실"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하면서 웨스트모어랜드 주장의 신뢰성을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6일 뒤 웨스트모어랜드는 소송을 전격 취하했다. 웨스트모어랜드는 한 푼의 배상금도 받지 못했고, 소송 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CBS는 그날 "웨스트모어랜드의 애국심과 국가에 대한 봉사를 존중한다. 그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고, 웨스트모어랜드 역시 "CBS의 저널리즘적 전통과 베트남전에 대한 그들만의 시각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웨스트모어랜드는 베트남전 초기였던 196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할 정도로 명망이 높았던 장군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불러 두 차례나 훈장을 줄 정도로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친숙한 인물이었다.  

반면, 에드워드 머로와 월터 크롱카이트 등이 거쳐간 CBS도 보도의 신뢰성을 널리 인정받는 유력 매체였다. 둘의 대결은 베트남전의 성격 규정부터 언론 보도의 자유와 한계 문제까지 다양한 쟁점들을 만들며 미국을 뜨겁게 했다. 이런 소송이 배심원 평결을 앞두고 원고의 소송 취하로 흐지부지 끝나버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웨스트모어랜드의 CBS 소송은 공론의 장에서 논의될 역사적 사건을 법정으로 끌고 오는 것이 무리하다는 교훈을 준 사건은 될 수 있어도 '징벌적 손해배상'의 사례는 될 수 없다. 박 시장이 사실관계를 완전히 뒤집어 엉뚱한 예를 든 셈이다. 박 시장의 핵심참모는 이에 대해 "박 시장이 방송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이뤄진 다른 사례와 헛갈린 듯하다"고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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