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그래서 무엇이 되었나요?

[서평] 열두 명의 시인이 쓴 시와 산문 '교실의 시'

등록 2019.10.02 21:43수정 2019.10.0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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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해 있는 독서모임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시 모임을 갖는다. 시를 많이 읽는 편도 아니고, 시를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매달 빠지지 않고 시 모임에 나가는 이유는 뭘까.

시를 읽을 때 나는 내가 한국어 원어민이라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새삼 우리말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되는 순간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국어를 그저 일상적인 대화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것은 어쩐지 너무 아깝다.


나를 포함한 인간들이 참을 수 없이 미워질 때에도 나는 시를 찾는다. 타인을 이해하고, 동시에 나를 이해하는 도구로는 시만 한 것이 없다. 그렇지만 시를 읽는 일이 수월치는 않다.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어려운 것처럼. 시는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못하는 한 인간의 세계를 지극히 개인적인 언어로 풀어보려는 시도이다. 그러니까 시는 암호이고, 외국어다.
 
이곳은 말의 조탁이 아니라 발명이, 말의 미학이 아니라 말의 배치가 문제가 되는 세계다. (…) 우리는 시와 산문을 동일한 강도의 문장으로 쓰는 시인을 좋은 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문학은 일종의 외국어로 씌어진다"는 프루스트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사실을 말하자면, 시는 외국어로 쓰는 것이다.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중에서)

이번 달 시 모임에서 읽을 시를 골라본다. 어떤 시집이 좋을까. 여럿이 함께 읽을 시집을 고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너무 난해하지 않으면서 유치하지 않은 시집이면 좋겠는데… 고심 끝에 고른 시집은 열두 명의 시인의 시와 산문이 담긴 <교실의 시>. 표지에 적힌 이름들 중에는 익숙한 이름들도 보이고, 낯선 이름들도 보인다.
 

<교실의 시> 표지 ⓒ 돌베개

 
<교실의 시>에는 시인들이 각자 학창 시절을 소재로 쓴 시들과 그 시가 탄생하게 된 이야기, 그리고 '그때를 지금으로 감각하는', '그때를 떠나지 못하는 시인들의 지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교실, 리코더, 교탁, 칠판, 체육복, 운동장 같은 단어들을 참 오랜만에 발음해 보았다. 이 단어들은 주술 같은 힘이 있어 소리 내어 불러보는 순간, 그 시절로 순간 이동한다. 어느덧 열다섯의 마음이 된다.

지금의 나는 중학생 때의 나와 다른 점이 거의 없다.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그때와 거의 같다. 다만 그때보다 늙은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자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뭐야.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아 늙은 몸을 하고 있는 인간을 어른이라고 하는 건가. 지금 나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쎄, 나이 든 겉모습과는 달리 여전히 어설프고 미숙한 내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아연해진다. 평생 어른 같은 것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무수한 척들을 거쳐 어른이 되었다. 어른이 되면 척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난생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나는 늘 당황한다. 진짜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 자주 얼굴을 훔치고 고개를 숙인다. 그럴 때 등장하는 나는 분명 척을 하고 있다. 나인데 내가 아닌 척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럴 때마다 분명 나인데, 나임이 분명한데 내가 나라는 사실이 어색하기만 하다. 아직도 나는 많은 일에 서툴고 집 근처에서도 자주 길을 잃는다. 어쩌면 어른인 척 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164쪽)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학창시절 이야기가 빈번하게 소환된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갑자기 활기를 띠며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열심히 그때 그 시절을 이야기한다. 모두 즐거워 보인다. 다들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도 한다. 나는 나의 학창시절에 대해서 웃으며 이야기할 만한 기억이 거의 없다. 당연히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그립지도 않다.

물론 즐거웠던 기억도 있지만 그런 장면은 겨우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그때의 나는 증오로 똘똘 뭉쳐 있었다. 매일 가족을 원망했고, 원망은 죄책감이 되고, 죄책감은 자기혐오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정말 지독히도 나 자신을 싫어했다. 그 시절 나는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내가 서른 살이 넘도록 살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간의 성장이란 참 이상하다. 그저 사랑받고 싶고, 기쁘고 싶고, 즐겁고 싶을 뿐이었던 어린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호르몬이 작용하기 시작하면 점점 심각하고 우울하고 우스꽝스러운 인간이 되어버린다. 중학생 시절이란 그렇게 갑자기 성장하게 되어버린 웃기고 슬픈 나날들이다. (불행하게도) 두뇌가 발달해버리는 바람에, 내가 '나'라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는 그 시절, 내가 '나'라서 자꾸 겪게 되는 그 무수한 시행착오들.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누구든 당장 땅속 깊숙이 머리를 박고 싶어지리라. (14쪽)

지금 나는 서른 살이 훌쩍 넘었고, 당연히 아직 살아 있다. 결혼도 하고 딸도 둘이나 있다. 가끔 내 어린 딸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서워진다. 갑자기 모든 일에 자신이 없어진다. 이 아이들이 나를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난다. 나는 아이들이 물어보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고 알려줄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망연자실해지곤 한다.

나는 내 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금은 그렇다 쳐도, 딸들이 자라서 열다섯 살이 되면, 그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열다섯 살의 마음'이어야 할까, '열다섯 살을 돌아보는 마흔다섯 살의 마음'이어야 할까. 쉼 없이 흔들리며 상처받고 방황하는 사춘기를 통과하는 딸들을 나는 초연하게 지켜봐 줄 수 있을까. 모르겠다. 어렵다.
 
나는 다 큰 사람이 되었는데도 나를 의탁할 수 있는 '어른'을 간절히 원했다. 서른이라니, 갑자기 노숙한 느낌이 들어 착잡하면서도 어려운 기로에 설 때면 누가 길을 알려주고 힌트를 던져주기를 바랐다. 다만 바깥에서 들어오는 조언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고 있었을 따름이다. (188쪽)

<교실의 시>를 함께 낭송하고 감상을 나누면서 우리는 모두 눈가가 촉촉해졌고, 수시로 눈물을 훔쳐야 했다.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는 시인의 글을 읽으면서, 요동치는 감정들에 마음을 가누지 못하다가도, 나의 학창시절이 특별하게 끔찍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이날 모임에서 우리는 이제껏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얼굴도 모르는 시인이 쓴 시 앞에서 조심스레 꺼내보았고, 언제나처럼 시인에게 위로를 받는다며 조용히 웃음 지었다. 그 시절 나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는가. '그때 꿈꾸던 어른'의 모습에서 지금 나는 얼마나 멀어졌는가. <교실의 시>에 실린 열두 편의 시와 글들이 한목소리로 나에게 던진 질문을 당신에게도 던져본다. '그래서 너는 무엇이 되었니.'

교실의 시 - 그때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김승일, 김행숙, 김현, 배수연, 서윤후, 서효인, 신철규, 신해욱, 오은, 유진목, 임솔아, 황인찬 (지은이),
돌베개, 2019


#교실의시 #시X산문 #앤솔로지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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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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