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비는 성역? '집단 공격' 을 받았습니다

[아파트 회장 분투기 11] 방어에서 공격으로, '연대'를 시작하다

등록 2019.10.08 07:52수정 2019.10.0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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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이 칼럼은 30회 연재 중에 11번째 글입니다. - 기자말

'회장' 남기업 쫓아내기를 위한 적폐세력의 3번에 걸친 해임투표를 재판과 행정력을 동원해 막아내고, 선관위의 불법적 장악을 통한 '동대표' 남기업 해임시도도 재판을 통해서 봉쇄했지만, 매달 1~2회씩 열리는 회의 때마다 괴롭힘을 당하는 건 정말 참기 힘들었다. 이대로 가면 임기 2년 내내 당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버티기만으로 일관할 수 없었다. 정해진 안건을 다 처리할 때까지 이어지는 모욕과 수치를 모면하기 위해 정회 및 산회 작전을 썼지만 한계가 컸다. 방어가 아니라 공격이 필요했다.

하여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입주민들과 퇴근 후 아파트 근처 호프집에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애석하게도 그들은 동대표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원외(院外)였기 때문에 직접적 도움을 주진 못했지만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고통을 응시했고 공감했고 분노했으며 한편으론 미안해 했다.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나서 주었다. 평범한 그들의 공통점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분노'였다.

평범한 입주민들과의 연대
  

그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또 서명을 받을 때마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결같은 맘으로 동참해주었다. ⓒ pixabay

 
나를 가장 앞장서서 도운 사람은 전직 경찰 출신 입주민이었다. 2016년 3월 세 번에 걸친 해임투표에 시달리고 있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해임투표에 관해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는 전화였다. 만나보니 30년 가까이 경찰로 근무한, 지금은 현역에서 퇴임한 입주민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동대표들끼리 갈등하다 해임투표까지 가는 걸 많이 경험했다. 그러나 한 번 투표해서 부결되면 그것으로 끝내야지 투표 결과를 무효화하고, 세 번씩이나 투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입주민의 총의를 선관위 몇 명이 뒤엎는 반(反)민주주의적 폭거다. 지금 저들은 해임이 될 때까지 투표할 태세다. 저렇게까지 불법을 저지르는 데는 필시 무슨 까닭이 있을 것이다. 내가 도와주겠다."

논리가 정연했다. 그는 나를 괴롭히는 적폐세력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저런 사람들의 약점이 무엇인지, 법적 대응을 어떻게 할지, 저들과 말을 섞을 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어떤 말을 삼가야 할지 등을 코치해주었다. 한마디로 누적된 경찰의 경험과 전문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어떤 때는 직접 회의에 참관하여 나를 괴롭히는 동대표들과 싸우기도 하고, 때론 법원과 경찰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해주기도 했다. 내겐 너무나 고맙고 필요한 사람이었다.

세월호로 인연이 돼 만난 입주민들도 있었다. 2015년 5월 말엔가 어떤 일 때문에 낮에 수원역 지하상가를 다녀온 일이 있었다. 항상 하던 대로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앞뒤로 걸고 말이다. 그런데 지하상가 한쪽에서 테이블을 펼쳐놓고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으며 피켓을 들고 있는 3~4명의 여성이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맘에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가던 길을 가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나를 불러세웠다. 아마도 내가 피켓을 앞뒤로 메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나는 그분들과 세월호 진상규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격려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중 2명이 우리 아파트 입주민이었다. 내가 적폐세력에게 회의 때마다 '몰매' 당한다는 이야길 듣고 참관하러 온 입주민 중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해임투표를 3번씩이나 하는 걸 지켜보면서, 아파트 회장이 여러 달 전에 수원역에서 세월호 피켓을 메고 다녔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또 서명을 받을 때마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한결같은 맘으로 동참해주었다.

마을에서는 상식과 몰상식이 있을 뿐

나를 도운 입주민들은 직업도, 성향도 참 다양했다. 재밌는 건 이분들의 사회의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전직 경찰 출신의 입주민은 사회적 이슈에 관해서는 나랑 정반대 입장을 보였다. 한마디로 나는 진보고 그는 보수였다. 하지만 마을에서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무의미했다. 상식과 몰상식만 있을 뿐이었다.

해임투표를 한 번 해서 부결되면 수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회장을 쫓아내고 싶다고 해서 회의에 와서 회장에게 욕하고 집단으로 공격하면 안 된다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아파트 돈을 알뜰하게 써야 하는 것도 상식에 속한다. 잘못 지출된 아파트 관리비는 회수해야 한다는 것 역시 상식이다. 이분들이 시간을 내서 나를 도운 까닭은 이런 상식이 소수에 의해 짓밟힌 것에 대한 '의분' 때문이었다.

사회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학습과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고 어떤 학습과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마을의 일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누가 잘못한 건지,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누가 나쁜 놈인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대단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튼 아파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사회의식의 다름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같이 활동했던 분들은 나중에 나와 같이 대화하고 활동하면서 진보적인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깨졌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수원시에 정밀감사를 요청하다

밤마다 모여 논의한 끝에 우리는 행정기관인 수원시에 정밀감사를 청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수원시 정밀감사가 나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동시에 저들의 비리를 행정기관을 통해서 적발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었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수원시는 2016년에 아파트 입주민의 1/3 동의를 받아서 감사를 청구하면 아파트 비용을 한 푼도 들이지 않고도 정밀감사를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저들은 항상 나를 비방하는 공고문을 붙일 때마다 '페인트 코킹 공사 입찰 비리의 주범 ○○○의 동서 남기업'란 내용의 문구를 넣었다. 한편 적폐세력들에게도 상당한 의혹이 있었다. ⓒ 유성호

 
당시 적폐세력들은 나를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떠들고 다녔다. 과거 비리 공사와 내가 연루되었다는 게 이유였다. 적폐세력들은 수년 전 동대표 활동을 하던 사람들을 페인트 코킹 공사 입찰 부정이 있다고 아파트에 대대적으로 여론몰이를 해 해임시키고 자신들이 입주자대표회의를 접수했다. 당시 해임 당한 동대표들은 공교롭게도 나를 지지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나의 동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저들은 항상 나를 비방하는 공고문을 붙일 때마다 '페인트 코킹 공사 입찰 비리의 주범 ○○○의 동서 남기업'이란 내용의 문구를 넣었다.

한편 저들에게도 상당한 의혹이 있었다. 저들의 대부분이 전임 회장과 동대표들이었는데, 당시 동대표 운영비도 유용한 증거들이 있었고, 공사 업체선정과 실제 공사에도 이상한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이것은 저들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하여 나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제안했다.

진퇴양난

'당신들이 페인트 코킹 공사에 엄청난 비리와 부정이 있었다고 하니 정말 그런지 우리끼리 갑론을박할 것이 아니라 수원시에 요청해서 정밀감사를 받아보자. 그러나 페인트 코킹 공사뿐만 아니라 최근 5년 동안 아파트에서 수선유지비와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실시했던 각종 공사의 적법성 여부, 그리고 동대표 운영비 등이 합법적으로 집행된 건지도 정밀검사를 받자. 만약 정밀검사를 받아서 불법성이 드러나면 반드시 책임지게 하자. 이렇게 해서 과거를 둘러싼 대립과 갈등을 끝내고 미래로 나아가자.'

저들은 페인트 코킹 공사에 대한 정밀감사 요청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감사 대상에 과거 5년 동안 진행한 아파트의 모든 공사도 넣어서 모든 의구심을 털고 가자고 하는 건 껄끄러워했다. 받자니 부담스럽고 안 받자니 명분이 약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가장 꺼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적폐의 몸통과 관리소장이었다.

어쨌든 나는 회장 직권으로 수원시 정밀감사 청구를 회의 안건으로 상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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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정의와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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