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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 꺼내든 청년... 공원에서 벌어진 날벼락 같은 일

[유최늘샘의 세계방랑기 37] 에티오피아에서 무장 강도를 만나다

등록 2019.11.02 20:57수정 2019.11.0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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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북동부 다나킬 저지대 소금호수의 광부들 ⓒ 최늘샘

 
극단의 공포, 칼 든 강도를 만나다

에티오피아 북동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활화산 에르타 알레와 형형색색의 유황지대 댈롤, 해수면으로부터 102미터 아래에 위치한 아프레라 소금호수가 있는 다나킬 저지대에서 2박 3일을 머물렀다.


대중교통이 없는 곳이라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해야만 했다. 마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듯한 땅은 마치 영화에서 본 외계의 행성같이 기이했다. 그 무덥고 황량한 곳에서도 광부들과 원주민 아파르인들은 소금을 채굴하고 염소를 기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누이가 외교부의 해외안전여행 소식을 전해 주었다. 7월 25일 공지된 에티오피아 '남부국가민족(SNNPR)주' 치안 유의 안내문은, 자치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시다마족(族)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와사 주정부가 연방정부에 치안관리를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케냐 국경 모얄레까지는 약 800킬로미터. 직행 버스는 없고, 아와사, 딜라, 이르가체페(예가체프), 야벨로 등을 지나 2박 3일을 가야하는 거리다. 가능하면 육로로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싶었고, 비행기는 너무 비쌌기에, 며칠을 고민하다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터미널 주변의 사람이 많은 곳에서만 머물며 최대한 조심해서 이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침 나처럼 육로로 이동하는 한국인 여행자 대호 형을 만나, 케냐 나이로비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멀어질수록 도로를 오가는 승용차는 줄어들고 군인과 경찰의 검문이 잦아졌지만 별다른 위험은 없었다. 남부국가민족주의 주도(主都) 아와사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한 우리는 숙소에 가방을 놓고 호수를 구경하러 나섰다.

저렴한 에티오피아 인기 음료 아보카도 주스로 배를 든든하게 하고 호수와 도시 전경을 보기 위해 타보르(Tabor) 언덕 공원을 향해 걸었다. 모처럼 파란 하늘이 선명한 날씨여서 기분이 좋았다. 언덕 곳곳에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나무 아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도 있었다. 한없이 평화로운 대낮이었다.
 

강도를 당하기 직전, 아와사 타보르 공원의 푸른 하늘이 예뻐 사진을 찍었다. 사진 오른쪽, 도로에서 불과 40여 미터 떨어진 공원에서 강도를 만날 줄이야 ⓒ 최늘샘

 
오르막길에 들어서는데 한 청년이 따라오길래 길을 비켜 주었다. 또 다른 청년이 따라와서 길을 비켜주며, '현지 청년들은 걸음이 빠르네' 하고 생각했다. 앞서 걷던 청년이 바지 밑단에서 뭔가를 꺼내기에, 주머니가 터져 흘러내린 핸드폰인 줄 알았다.


그 순간, 뒤따라 온 또다른 청년 두 명이 내 백팩과 크로스백을 거칠게 잡아챘다. 눈 깜짝할 새였다. 바지 밑단에서 꺼낸 것은 흘러내린 핸드폰이 아니라 커다란 칼이었고, 네 명의 건장한 청년들은 우리를 표적으로 삼고 따라붙은 무장 강도였다.

차와 행인이 오가는 도로로부터 불과 40미터 거리, 나는 도움을 구하기 위해 "노! 노!" 라고 고함을 지르며 도로쪽으로 몸을 던졌지만 두 강도가 가방끈을 부여잡고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풀숲으로 잡아당겼다. 백팩 지퍼가 찢어지고, 물건들이 내 몸과 함께 흙바닥을 뒹굴었다. 한 명은 등 뒤에서 가방과 팔을 잡고 한 명은 눈 앞에 날선 칼을 들이밀며 "머니! 스마트폰!"이라고 속삭이며 협박했다. 그야말로 죽을 고비, 인생 최대의 공포였다.

'또 스마트폰을 뺏기면 이 아프리카 어디에서 다시 사고, 익숙하게 사용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릴까. 폰 속에 저장된 사진과 자료들은 어쩌나. 그래도 스마트폰이랑 돈 때문에 칼에 찔려 죽을 수는 없지...'

몇 초 만에 온갖 판단과 욕설이 뇌리를 스쳤다. 뿌리치고 도망가기에는 강도들의 완력이 너무 강했다. 돈이 적게 든 지갑부터 내줘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다른 두 명의 강도를 어떻게 뿌리쳤는지 대호 형이 고함을 지르며 뛰어왔다. 얼굴에는 피가 흐르고, 손에는 강도에게 뺏은 칼이 들려 있었다. 나에게 붙은 강도들도 놀랐는지 도망을 갔다. 서둘러 떨어진 물건을 챙겨 도로로 내려왔다.

폭력의 후유증

동행 대호 형을 노린 두 강도는 나를 담당한 두 강도와 달리 협박의 말도 없이 다짜고짜 칼을 들이밀었다고 한다. 등 뒤의 강도가 고가의 노트북이 든 가방을 뺏으려는 찰나, 대호 형은 손으로 칼날을 잡고 눈 앞의 강도를 발로 밀쳐냈다.

주민의 신고를 받고 온 경찰차를 타고 경찰서에 가서 피해 사건을 설명하고 상처 치료를 부탁했다. 안내에 따라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오가는 경찰마다 질문만 되풀이할 뿐 병원에 데려다주지 않았다.

눈꺼풀과 손이 찢어진 대호 형은 참다 못해 경찰서를 뛰쳐나가 병원을 향해 걸었다. 뒤따라온 경찰들은 병원비 지원이 불가능하며, 우리가 부자가 아니라면 병원비가 싼 공립 병원으로 가야 한다며 그제서야 우리를 실어다 주었다.

병원 응급실은 '응급실'임에도 경찰서와 마찬가지로 업무 처리가 무척 느렸다. 게다가 위급 환자가 너무 많았다. 강도의 녹슨 칼에 찔린 작은 상처 정도는 어느 누구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주사기 하나, 바늘 하나도 의사의 처방전을 받은 뒤에, 옆 건물 창구에 줄을 서서 구입한 다음에야 치료가 가능했다. 천만다행히 눈꺼풀의 상처는 심하지 않았다.

젊은 의사는 마취도 하지 않은 손에 커다란 바늘을 몇 번이나 찔러 넣더니만, 마무리 매듭을 짓지 않고 그대로 쭉 실을 빼냈다. 상처를 꿰매 본 적이 없는 건 물론이고, 찢어진 옷가지의 바느질 한 번 해본 적이 없었음이 너무나 분명하다.

낚싯바늘로 생살을 뚫는 끔찍한 고통을 준 뒤, 다시 새 바늘과 실을 사오라고 처방전을 써 주며, 이런, 그는 겸연쩍게 웃었다. 대호 형이 고통에 찬 표정으로 분노를 전하자 돌팔이 의사는 그제서야 선배 의사 셰히드씨를 불렀고, 다행히 그는 능숙하게 꿰맨 상처에 매듭을 지었다.
 

에티오피아 아와사 공립 병원의 의사 셰히드 씨와 동료들이 강도에게 찔린 여행자 정대호 씨의 상처를 꿰매고 있다 ⓒ 최늘샘

 
여행자들이 잘 가지 않는 곳에서 사고가 난 경우 많은 사람들, 특히 익명의 인터넷 댓글은 쉽게 여행자를 비판하곤 한다. 내 여행기는 보는 사람이 많지 않고 낯선 독자의 댓글은 매우 드물다. 헝가리와 세르비아 국경에서 마주친 경찰에게 당한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썼을 때, 그 희소한 댓글이 몇 개 달렸다. '오지랖도 넓지, 관광지도 아닌 남의 나라 국경에 왜 갔는가', '나라 망신이다. 애꿎은 경찰력을 낭비시키지 말라'는 의견이었다.

길 위에서 만난 여행자들은 종종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정부에서 위험하다는 것, 남들이 하지 말라는 것들 다 신경쓰면 어떻게 여행을 해', '정부나 미디어에서 말하는 위험과 경고 정보를 다 믿지는 않아'.

여행의 자유와 여행의 안전에 대해서, 정답 없는 고민을 계속하며 내가 세운 나름의 기준은 '입국이 금지된 지역에는 들어가지 않고, 경보 지역에서는 최선을 다해 조심하는 것'이다.

외교부의 경고대로 우리는 육로 이동을 포기하고 비싼 비행기를 탔어야 할까. 자치정부 수립을 위한 시다마족의 시위 때문에 대낮의 공원에도 강도가 설치는 것일까. 주머니 가벼운 장기 배낭여행자인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적었다. 강도 사건은 세계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위험 지역은 되도록 가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가더라도 더욱 조심해야겠다.

콜롬비아 버스 수면 마취제 강도 사건, 헝가리 폭력 경찰 사건에 이어, 지구를 한 바 퀴 도는 동안 또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눈앞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칼이 번뜩였던, 평생 겪지 않아야 할 아픈 경험이다. 동행이 칼를 뺏지 못했다면, 조금 더 어둡고 한적한 장소였다면, 그 청년들은 단지 수십만 원의 돈과 핸드폰을 얻기 위해, 우리를 죽였을 것이다. 그 강도 청년들의 삶은 얼마나 처참하기에, 약간의 돈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피를 내는 것일까.

후유증은 깊다. 나는 케냐 다음으로 예정했던 우간다와 르완다 행을 포기하고, 남쪽의 탄자니아로 방향을 돌렸다. 인적이 드물고 어두운 곳은 물론, 대낮의 북적이는 도시에서도 뒤따라오는 사람을 경계하고 무서워하게 됐다. 여행길에서 수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여행과 삶을 이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세계 곳곳에는 커다란 부조리와 불평등, 폭력과 위험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강도 사건 이후 한 달, 아직도 내 몸 곳곳에는 그날의 상처가 남아 있다. 칼에 찔린 대호 형의 치료가 시급했으므로 나는 소독조차 하지 않았지만, 강도들과 흙바닥을 뒹굴다가 팔꿈치며 발목에 생채기가 많이도 나 있었다. 흉터는 서서히 옅어지겠지만, 칼을 겨누고 위협하던 강도 청년의 형형한 눈동자, 그 폭력의 충격과 슬픔, 한없이 처참한 무력감은 못내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지구별 대다수 사람들의 선의와 친절을 믿는다. 무기가 아닌 악기를, 차별과 욕설이 아닌 노래를, 폭력이 아닌 평화를, 꿈꾸고, 믿는다.
 

에티오피아 강도 사건 다음 날, 아와사에서 딜라를 거쳐 야벨로로 가는 미니 버스 안에서. 생명의 은인, 여행자 친구 정대호 씨와 함께. 그토록 험한 일을 당했음에도, 우리는 왜 웃을 수 있는 것일까 ⓒ 최늘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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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다 미륵섬에서 유년기를, 지리산 골짜기 대안학교에서 청소년기를, 서울의 지옥고에서 청년기를 살았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827일 동안 지구 한 바퀴를 여행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생활놀이장터 늘장,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센터, 섬마을영화제에서 일했다. 영화 <늘샘천축국뎐>, <지구별 방랑자>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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