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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의 명령을 거스른 미 외교관의 의문사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빚 내서 조선 지킨 미국인은 왜 일본에서 사망했을까

등록 2019.10.30 20:02수정 2019.10.3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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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이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원산이 일본 식민지? 수상한 한국 지도

청나라 위안스카이(원세개, 袁世凱, 1859~1916)가 조선을 '속국화'하기 위해 벌였던 횡포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지 클레이턴 포크(1856~1893)라는 미국인이 위안스카이의 횡포로부터 조선을 보호하려고 투쟁했던 사실은 우리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위안스카이는 1884년 말 27살의 나이로 조선에 부임해 조선의 내정을 마구 간섭할 뿐 아니라 그 행태가 안하무인이었고 무도했다. 비근한 예로, 궁중에 입궐할 때 다른 나라 외교관들은 궐문 밖에서 가마에서 내려 걸어갔으나 위안스카이는 가마를 탄 채 들어갔다. 국왕을 알현할 때도 다른 외교관과 달리 그만은 기립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구한말 조선에 외교관으로 부임한 미 해군 중위 조지 포크는 위안스카이를 내세운 청나라의 종주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막으려 했지만 그것이 미국 정부의 지시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청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미국의 베이야드(Bayyard) 국무장관은 오히려 여러 차례 포크 대리 공사에게 조선문제에 개입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조지 포크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안스카이와 강경하게 맞섰다.

조선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그에게 가장 큰 고통은 경제난이었다. 본국 정부가 지원하는 활동비로는 턱없이 부족했으므로 빚을 내거나 생활비에서 충당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 그의 건강은 허물어져 갔다. 조선에 온 지 2년 3개월 후인 1886년 9월 10일, 그는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차라리 죽으면 해방이 될 것이라고. 제가 처해 있는 이 무서운 수렁으로부터 죽어야 벗어날 것이라고."

"조선이 소멸돼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미국인"


마치 조선총독처럼 행세했던 위안스카이는 마침내 고종에게 조지 포크를 추방하지 않으면 자신이 떠나겠다고 압박했다. 조정의 '수구대신'들은 위안스카이의 뜻에 따라 춤을 췄고 조지 포크에게 조선을 떠나라고 했다.

아울러 위싱턴 주재 청나라 공사는 베이야드 국무장관에게 포크를 소환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포크를 조선에 계속 두는 것은 두 나라의 관계를 해치는 것이라고 협박했다. 청나라와의 관계를 손상시키고 싶지 않았던 미국 정부는 결국 조지 포크를 내치게 된다. 본국 정부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은 조지 포크는 울분을 삼켰다. 자신의 직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청나라의 압력에 무릎을 꿇고 만 조국으로부터 깊은 모욕감과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그가 조선과 마지막 이별을 고하고 일본 나가사키로 떠난 것은 1887년 6월 29일이었다. 그의 나이 31살, 조선에 온 지 3년 2개월 만이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썼다.

"하느님, 조선에서의 시련은 이제 끝난 것 같습니다. 미래는 한 치 앞을 모르겠습니다. 보우하여 주소서."

1950년 미국의 한 학자가 조지 포크의 조선 활동에 대해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일부를 옮겨 본다.
 
"조지 포크는 여느 외교관과 달랐다. 그는 조선의 언어, 역사 그리고 문화에 몰입했다. 그 결과 조선인들이 긍지가 강하고 애국적인 민족임을 알게 됐다. 비록 그 정부는 낡았고 부패했지만 그 이유만으로 조선이 국제사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소멸돼서는 안 된다고 그는 믿었다. 포크는 조선에 대해 낙관적인 믿음을 가졌고 조선에 대해 미국이 책임이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본국 정부는 포크의 열정에 공감하지 않았으며,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큰 이해관계가 없는 조선의 미래를 보증하는 위험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국 정부는 양국 우호 관계의 탁월한 옹호자였던 조지 포크를 불신임하고 퇴출시켰던 것이다." (Robert E. Reordan, 'The Role of George Clayton Foulk in United States-Korean Relations', 1884~1887)

탈진 상태로 일본에 도착한 조지 포크는 5년 후인 1893년 8월 6일 후지산에서 홀로 죽음을 맞는다. 만 37세를 앞두고 있던 나이였다. 당시 그는 후지산의 남동쪽 아래 휴양지에서 요양을 하고 있던 중에 일본인 아내 및 친지와 함께 후지산을 올랐다. 웬일인지 그는 도중에 일행과 떨어지게 됐고 다음 날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폭행을 당한 흔적은 없었다고 한다. 부검의는 심장 마비 혹은 과로사라고 결론을 내렸다.

조지 포크의 죽음은 과연 자연사였을까? 어떻게 홀로 일행과 떨어질 수 있었을까? 동행자들은 왜 그의 실종을 즉시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음 날에서야 사체를 발견하게 된 것일까? 또한 왜 그의 유해는 고국의 품에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 교토의 산중에 묻혔을까? 당시 생존해 있던 부모 형제들은 조지 포크의 의문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그의 죽음에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떤 기록도 연구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지난 2017년 여름 미국 의회 도서관에서 조지 포크의 문서를 열람하다가 흥미로운 자료를 발견했다. 훗날 조지 포크의 조카(Miller Foulk)가 고인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그리고 일본인 숙모 카네의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정황을 알려주는 정보였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지금도 조지 포크의 죽음은 석연치 않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그를 '망각의 강'에서 건져올리기로 했다
  

미의회도서관과 조지 포크 자료 ⓒ 김선흥

 
조지 포크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은 그가 한미 수교 후 최초로 한국 땅을 밟은 서양인이었고, 그 기록을 남겼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역사적인 가치가 적지 않을 터인데 아직 국내에 알려져 있지 않다.

해군 소위인 조지 포크는 아시아 함대에서 복무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부산을 들렀다. 때는 1882년 6월 7일로 미국과 조선이 외교관계를 맺은 지 갓 보름이 지난 시기였다. 당시 그가 다른 두 명의 동료와 함께 견문했던 조선과 조선 사람에 대한 정보가 현재 미 의회 도서관에 보존돼 있다. 최근에 이 자료를 나는 미국 친지의 도움으로 구할 수 있었다. 이 내용을 차차 소개할 볼 생각이다.  
  

조지 포크의 조선과 시베리아 견문록 ⓒ 미의회도서관

 
26살의 조지 포크가 1882년 6월 초 부산항에 첫 발을 디뎠을 당시 그는 훗날 자신이 이 나라로 발령을 받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이 나라를 위해 젊음을 소진한 끝에 일본 땅에서 짧은 삶을 마감하게 되리라고는 더욱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선의 개화와 자주 독립을 위해 헌신한 결과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고 본국으로부터는 해임당했던 이 비운의 미국인은 왜 망각 속에 묻혀 버린 것일까? 그는 애당초 조선과 어떻게 인연이 닿았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벌였을까? 한양에서 그가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보낸 많은 편지들과 조선 여행기 속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그의 눈에 비친 조선과 조선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런 의문을 안고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관련 자료를 수집했다. 이제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를 '망각의 강'에서 건져 올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의 발자취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나보려는 까닭이다. 이 여행은 또한 서양에 물들기 이전의 우리 자신을 만나러 가는 일이기도 할 터이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동참을 기대해 본다.
#조지 포크 #위안스카이 #조선 #미의회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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