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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고 비웃은 소설 속 주인공, 나는 다를까

[서른 넘어 읽는 고전] 기 드 모파상 단편집 '두 친구'

등록 2019.10.16 08:19수정 2019.10.16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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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은 틀렸다. 가을이 어떻게 독서의 계절이 될 수 있는가? 놀러 다니기에 가을만큼 좋은 계절도 없다. 1년 중 내가 가장 책을 안 보는 때도 가을, 그중에서도 10월 딱 요맘때이다. 선선한 가을 바람 맞으며 놀고 먹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들썩, 발바닥이 간질간질 하는데, 그깟 책이 눈에 들어오겠는가.  

그래도 아예 책을 놓고 지낼 수는 없으니, 이럴 때 읽기 좋은 책이 바로 고전 단편들이다. 의외로 고전 단편들은 부담 없이 설렁설렁 읽기 좋다. 고전문학들은 대부분 인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의, 내가 살고 있는 이곳과 멀리 떨어진 이국의 이야기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소 심각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하여도 크게 감정 소모 없이 읽을 수 있다.

요즘 소설은 너무 나와 가까운 이야기여서 내리읽다 보면 정신적으로 무척 피로해진다. 그렇게 먹먹해진 마음을 달래는 데에도 고전 단편이 제격이다. 일종의 우화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읽는데 부담이 없다. 현대 문학이 나무 하나하나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집요하게 그 속을 파헤친다면, 고전 문학은 큰 숲을 조망한다.

최근에 내가 외출할 때 자주 들고나간 책은 민음사 '쏜살문고' 시리즈 중 하나인 기 드 모파상의 <두 친구>이다. 1850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모파상과 2019년 한국에 있는 나의 기묘하고도 짜릿한 데이트. 고백하자면, 모파상의 책이 기존의 '고전문학스러운' 고리타분한 옷을 입고 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선뜻 밖에 들고 다닐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민음사 쏜살문고는 너무 깜찍하고 산뜻해 자꾸만 눈길이 가고, 어디든 데리고 다니고 싶다. 그야말로 '포켓북'인 것이다.
 

<두 친구>,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봉지 옮김, 민음사(2017) ⓒ 민음사

 
모파상의 <두 친구>에는 14편의 단편이 들어있다. 표제작 <두 친구>를 비롯해 <비곗덩어리>, <목걸이> 같이 유명한 작품들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작품은 <전원에서>와 <안락사용 안락의자>이다. 예전에 읽었던 작품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으니 그 느낌이 또 새롭다. 이번에 <비곗덩어리>를 다시 읽으면서 '이런 장면이 있었나?'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아주 흥미로웠다. 그리고 곧 참을 수없이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코르뉘데는 맥주를 청했는데 그가 맥주를 마시는 방법은 매우 유별났다. 먼저 병 마개를 따서 잔에 거품이 나게 따른 다음, 잔을 기울여 들여다보고 또다시 등불 가까이로 들어 올려 색깔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마시기 시작하는데 그럴 때면 그가 좋아하는 술 빛깔을 띤 긴 수염이 사랑에 부르르 떠는 것 같았다. 잠시라도 술잔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바라보는 바람에 눈은 사팔뜨기가 되었다. 그런 그를 보노라면 오직 이것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같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에게 있어 자신의 생활 전체를 차지하는 두 가지 커다란 열정, 즉 맥주와 혁명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듯했다. 맥주를 음미하면서 혁명을 생각하지 않는 일은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 41쪽, <비곗덩어리> 중에서

이 책에서 인상 깊게 읽은 단편 중 하나인 <전원에서>는 어느 가난한 시골에 이웃으로 살고 있는 두 집의 이야기다. 두 집에는 똑같이 자녀가 넷씩 있었는데, 어느 날 젊은 여인이 마차를 타고 이 동네를 지나는 중에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여인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므로, 이 아이들 중 가장 어린아이를 하나 데려다가 양자로 삼았으면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튀바슈네 막내 아이가 눈에 들어 여인은 튀바슈 부부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 아이를 자신이 데려가 키워도 되겠느냐 묻는다. 다달이 두 부부에게 적지 않은 돈도 주고, 아이가 자라면 자신의 재산을 이 아이에게 상속하겠다는 약속까지 한다. 가난한 부부에게는 솔깃한 제안이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을 팔 수는 없지.'라고 답을 하자니 왠지 지금의 형편으로는 자식들을 잘 키울 자신이 없고, '좋은 집으로 아이를 보내면 더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더 나은 삶을 살수 있을 테니 보내는 게 낫겠지.'라고 대답을 하자니 부모로서 못할 짓 같아 망설여진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보면 무엇이 옳은지 더욱더 알 수가 없게 된다.

이번엔 또 다른 단편 <안락사용 안락의자>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주인공은 여느 아침과 같이 신문을 읽는다. 신문을 펼치자 '자살자 통계' 기사가 눈에 띈다. 기사를 읽으며 주인공은 어느새 공상에 잠긴다. 공상 속에서 그는 '자발적 죽음 센터'라는 간판을 단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그곳은 자살하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자살을 중앙 통제할 필요를 느끼고,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조용하고 고통 없는 죽음을 맞도록' 도와주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이곳은 회원들의 기부금으로 운영이 되는데 회원들은 대부분 사교계 인사들이나 예술가들이다. '모두들 이 사업에 기부하는 일을 품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부금은 언제나 넉넉하다. 회원들은 이곳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척 여유를 부리며 카드놀이를 하는 둥 이곳을 일종의 '살롱'처럼 드나드는 것이다. 정작 죽음을 원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빈민들과 파산한 중산층이다.
 
"저희 사업은 전대미문의 유행을 불러일으켰답니다. 세상의 멋쟁이란 멋쟁이는 모두 회원이 되었어요. 죽음을 우습게 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말이지요. 그리고 여기에 와서는 억지로라도 유쾌한 척해야 하지 않겠어요? 안 그러면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그래서 모두들 농담을 하고, 웃고, 허풍을 떨면서 재담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재치를 배우게 되었죠. 이제는 단연코 이곳이 파리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재미있는 장소가 되었답니다.
(…) 부자들이 자살하려면 1000프랑을 내야 합니다. 그 대신 멋지게 죽죠.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무료입니다." - 205쪽, <안락사용 안락의자> 중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욕하고 비웃었던 인물과 나는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렇듯 고전문학은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인간인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무엇 하나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묵직한 질문들이다.

나는 책을 덮고 잠시 멍하니 앉아서, 또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어렴풋이 깨닫기도 하는 것이다. 나의 삶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두 친구

기 드 모파상 (지은이), 이봉지 (옮긴이),
민음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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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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