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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젠장"... 이 노인이 이러는 이유

[여자의 소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올리브 키터리지'

등록 2019.11.21 20:34수정 2019.11.2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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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설가가 통찰력 있게 그려낸 여성 서사를 통해 여성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합니다. 여성에게 의미 있는, 필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더 많은 여성 서사가 우리 삶에 스며들길 기대합니다. - 기자말
       
   
그녀의 외로움

이 소설을 3분의 1 정도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이 노년 여성을 왜 계속 보고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심정이었다. 소설 주인공이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올리브는 왠지 모르게 하루종일 화가 나 있는 것 같은, 그저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것뿐이 모르는 것 같은, 그러니까 소설로도 그닥 지켜보고 싶지 않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책표지 ⓒ 문학동네

 
올리브는 처음 보는 사람의 외모를 흉보고("생쥐 같아."), 심심치 않게 남편에게 비아냥대며("고명하신 우리 헨리 키터리지 집사님"), 좋은 사람에게서도 나쁜 점을 찾아내고("얘는 상냥한 목소리밖에 가진 게 없어"), 심사가 뒤틀리면 쉽게 욕을 했다("염병할 교장").


올리브에게 '좋은', '편안한' 같은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녀는 인간 존재에 대한 환멸로 가득 찬 사람 같다. 그녀는 그녀보다 더 괴팍한 사람도 싫어할 것 같고, 더 온화한 사람도 싫어할 것 같으며, 그녀 자신과 똑같은 사람 역시 싫어할 것 같다.

이런 그녀를 사람들은 대개 어려워한다. 그녀가 가르쳤던 학생들은 그녀를 무서운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동네 주민들은 헨리가 어떻게 올리브 같은 아내를 참고 사는지 궁금해 하며, 아들은 엄마를 피한다. 

올리브는 확실히 다정한 기질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이다. 까칠하고 날카롭고 또 자기중심적이다. 그런데도 소설을 3분이 1 정도 읽은 후부터 나는 조금씩 올리브에게 마음을 열어갔다.

어쩐지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그녀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퉁퉁한 손 위에 내 손을 올려놓고 싶었다. 그러고는 주제넘게도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나는 당신이 그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가 아무리 퉁명스럽게 말해도 그 말의 이면을 바라보고 싶어졌다. 선하고 고요한 남편 헨리가 수십 년간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때.
 
"올리(책 속 올리브 애칭), 그거 알아 ?" 올려다보는 그의 눈은 고단했고, 눈 주위 피부는 붉었다.
"결혼하고 수십 년을 같이 사는 동안, 당신은 한 번도 사과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무슨 일에도."

역시 올리브의 반응은 너무 방어적이고 날이 섰다.
 
"젠장, 도대체 뭐가 괴로운 거야? 이게 다 무슨 소린데? 사과? 좋아, 그렇담 미안해. 이렇게 지랄 맞은 마누라라서 진짜 미안해."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올리브가 왜 이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하는지가 아니라,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의 그녀의 마음이다. 소설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앞으로 몸을 숙이더니 한 손을 올리브의 무릎에 올려놓았다. 인생은 어떤 길을 따라, 그 길을 타고 가는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나는 이 문장이 그려낸 풍경을 그려 보았다. 아내의 날선 반응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무릎에 한 손을 올려놓으며 진정시키려는 남편. 그리고 남편의 손에 전해진 아내의 슬픔. 수십 년을 함께 한 부부가 갈등을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 최선의 몸짓.

올리브에게 인생이란 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그 길은 과거의 언젠가 그녀가 선택한 길이었고, 그녀의 꿈은 앞으로도 계속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날선 말을 퍼부은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이젠 그 꿈이 깨져 버렸다는 걸 상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올리브는 지금 울음을 참느라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올리브에게 마음을 열게 된 건, 그녀가 외로운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그 외로움을 감추려(또는 극복하려) 처절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였다. 사람들이 자신의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괜찮아" 하고 말할 때 올리브는 "젠장" 하고 화를 내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올리브는 좋은 이웃도, 좋은 친구도, 또 좋은 아내나 엄마도 아닌 채로 그저 산다는 것이 너무 외로워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올리브는 때로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몇 해 전,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 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

이후 나는 그녀의 모든 말과 행동을 조금은 울컥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됐는데, 이는 마치 이런 것이다. 어느 영화에서 어느 인물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어느 찰나에 그 인물이 지은 어떤 표정에 마음을 온전히 빼앗겨 버리는 것. 찰나의 표정에 스산한 외로움이 너무 짙게 드리워져 있던 것. 아무렇지 않아 보이던 누군가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게 되자 이후 그를 아무렇지 않게 보지 못하게 되어 버리는 것. 그의 쓸쓸함에 자꾸 신경을 쓰게 되는 것. 

올리브가 외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보면 문득 나를 바라보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올리브의 "젠장"이 내가 그간 내뱉은 수많은 말들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 역시 자주 감추려 드는 나의 외로움, 너무 꽁꽁 숨겨놓아 나조차도 자주 잊곤 하는 나의 외로움을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직면하곤 하니까. 나 역시 그녀처럼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자, 나는 그녀가 그 누구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올리브 역시 타인의 외로움을 눈치채는 사람, 외로운 타인을 위해 무언가를 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올리브도 우리들처럼 사는 게 서툴러 수많은 실수를 하고 살지만, 그녀 역시 우리들처럼 필요할 땐 누군가의 곁에 가만히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인생이란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늙어가는 것

<올리브 키터리지>의 가장 큰 미덕은 이 소설이 죽음과 늙음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시선에 있다. 이 소설에선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 마구 죽어나간다. 어떤 전조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 속 우리가 하루아침에 죽어나가는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도 하루아침에 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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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홀로 길을 걸어가는 것. 그래서 외로울 땐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도 좋은 것. ⓒ 픽사베이


이 소설에서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인생'이다. 인생이란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늙어가는 것이라고 소설은 말한다. 올리브 남편 헨리도 그렇게 죽는다. 올리브와 함께 장을 보고 나서 차를 타다가 그대로 고꾸라진다. 뇌졸중이었다. 그는 그 길로 요양소로 들어가 자신의 삶에 대해 그 어떤 말도 남기지 못한 채 멍하게 살아가다 죽는다.

올리브는 남편이 쓰러지고 나서 애도 그룹이란 델 찾아갔다. 그곳에 갔다 온 그녀가 한 이 말은 그녀 특유의 불퉁한 말투에 담기기는 했지만 이 소설이 견지하는 죽음에 대한 진리다.
 
"근데 거기서 그러더군. 화가 나는 게 정상이래. 하, 사람들이 멍청하긴. 왜 화가 나야 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리란 거 모두가 다 알고 있는데."

그녀는 매일 요양소를 찾아가 헨리를 돌본다. 사람들은 그녀를 성녀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그저 "삶이 두려운 늙은 여자일 뿐이"라는 걸 안다. 올리브는 생각한다. 사람들은 모두들 그럭저럭 살아내고 있지만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는 것이라고. 삶이란 파도가 칠 때 그 파도에 떠밀려 갈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든 파도에 맞서 싸울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일 뿐이라고.

남편은 죽고, 아들은 전에 없이 냉랭해졌고, 이제 올리브는 혼자가 되었다. 더더군다나 올리브는 이제 많이 늙었다. 혼자가 된 늙은 여자. 외로움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아는 여자.

페이지를 넘겨가며 사실 나는 올리브가 조금 달라지길 기대했던 것 같다. '아직 늙지 않은' 나는 올리브에게서 내가 나에게 바라는 어떤 노년의 태도를 기대했던 것 같다. 시들어가는 육체 위에 지혜라는 꽃이 피길. 지혜가 그녀에게 부드러운 태도를 선물해 주길. 

하지만 올리브는 나의 기대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그녀는 아무리 혼자 남아도, 아무리 외로워도, 여전히 젊었을 적의 그녀다. 올리브는 아들의 초대를 받아 뉴욕으로 갔다가 수가 틀려 대판 싸운 뒤 집으로 돌아온다. 떠나오기 전, 아들은 엄마에게 전에 없이 폭발적으로 화를 냈다. 엄마는 늘 내 기분을 망쳐 왔다고. 엄마는 아빠에게도 그랬다고.

아들과 다신 안 볼 것처럼 싸우고 돌아온 올리브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올리브는 어떤 생각을 떠올려도 그 생각을 나눌 사람이 곁에 없다는 사실에 처참해진다. 그녀는 아침마다 산책을 나섰다. 산책만이 그녀를 견딜 수 있게 했다. 걱정이 되기도 했다. 혹시 산책이 그녀를 오래 살게 하면 어쩌나. 오래 살고 싶지는 않은데. 그녀의 요즘 바람은 죽을 땐 제발 빨리 숨이 끊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헨리처럼 그런 식으로 죽고 싶진 않았다.

그런 그녀 앞에 잭 케니슨이 나타난다. 쓰러져 있는 그를 그녀가 발견했다. 잭 케니슨은 얼마 전에 아내를 잃은 재수탱이 영감이다. 공화당 지지자에다가 밥맛 없는 인간. 그나마 아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던 편협한 노인이 이젠 혼자 세상을 버텨내고 있었다. 올리브는 그를 병원으로 데려다 놓고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기분좋은 만족감을 느낀다. 그녀는 실로 오랜만에 이 세상에도 자신의 자리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살아 있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한다. 가끔 만나 밥을 먹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올리브는 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잭이라고 해서 그녀가 마음에 들진 않는다는 걸 그녀도 알았다. 둘 다 젊었을 때라면 상대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구라도 필요하니까.

같이 밥을 먹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 서로를 안쓰러워해 줄 누군가. 올리브는 이 세상을 살아내기가 버거웠다. 하지만 올리브는 아직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아파서 누워 있는 그의 곁에 함께 눕는다. 그녀는 오늘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올리브가 잭 옆에 눕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지혜의 의미를 협소하게 이해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한 건 물론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하게 지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 세상을 견디기 위해, 여전히 모자란 나 자신인 채로 이 쓸쓸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그런 의미에서 올리브는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발휘해 그녀 자신을 혼자 두지 않기로 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올리브키터리지 #엘리자베스스트라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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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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