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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보이는 놀이터? 여긴 좀 생각이 다릅니다

[노르웨이에서 만난 직장맘] 다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균형 있는 성장'

등록 2019.10.12 11:18수정 2019.10.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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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37세의 노르웨이 직장인, 이리아 씨가 세 아이를 키운 60세의 한국 직장인 아내와 노르웨이와 한국의 육아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 이안수

   
185km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송네 피오르의 지류인 에울란피오르(Aurlandsfjord)의 물길을 따라 달리는 시간은 아무리 좁은 차 속이라도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 만듭니다. 짧은 북유럽의 여름과 고별하려는 부드러운 햇살은 하늘과 숲과 협만의 좁은 바다를 하나로 아울러 길고 긴 한 폭의 풍경화로 만들어 놓습니다.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송네 피오르의 지류인 에울란피오르 ⓒ 이안수

 
플롬(Flam)에서 E16번 도로를 3시간쯤 달려 도착한 길의 끝에는 베르겐(Bergen)이 있었습니다. 노르웨이의 면적은 남한의 4배, 인구는 540만으로 1/10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관광객이 아닌 노르웨이 주민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베르겐에는 노르웨이에서 만나기 희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2세기부터 약 200년간 노르웨이의 수도이기도 했던 곳입니다.
  

노르웨이의 인구밀도는 우리나라의 1/40에 불과하다. 도시가 아닌 곳에서 관광객이 아닌, 노르웨이 주민을 만나기조차 쉽지 않다. ⓒ 이안수

 
복잡한 해안선을 따라 만들어진 이 도시를 한눈에 조망하기 위해 플뢰엔산(Floyfjellet) 중턱으로 오르기 전에 들어간 식당의 실내가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높은 아치의 천장, 화려한 벽화. 건물의 실내에 압도되어 배가 고팠던 사실도 잊어버렸습니다.
  

옛 증권거래소였던 곳은 현재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 이안수

 
바쁜 식당 주인이 짬이 나기를 기다려 얼른 말을 붙였습니다.

"이 건물이 애초 식당으로 지어졌을 리 없을 것 같은데요?"
"증권거래소였던 곳입니다."



계속 질문을 이어가기에 그는 너무 바빴습니다. 플뢰엔산 중턱의 전망대까지는 등산열차로 오를 수 있습니다. 불과 10여 분 만에 당도한 해발 320m에서 열차에서 내리면 베르겐의 눈부신 도시의 나신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플뢰엔산의 전망대로 오르는 푸니쿨라(등산열차) ⓒ 이안수

 
바다와 하늘 그 사이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도시는 바다에 떠있는 대형 크루즈선으로 인해 나른한 여유를 선물 받습니다.
  

해발 320m 플뢰엔산의 전망대에서 본 베르겐 전경 ⓒ 이안수

 
빗자루를 타면 이 도시를 떠도는 정령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이런 착각을 나 말고도 하는 이가 있었나 봅니다. 빗자루를 타고 절벽을 뛰어내려서는 안 된다는 팻말이 붙어있습니다.
  

낭떠러지를 조심하라는 친근한 사인 ⓒ 이안수

 
이 플뢰엔산은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흥미로운 방문지이겠지만 베르겐 사람들에게는 숲길을 오르는 하이킹 코스이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놀이터이기도 합니다.

전망대 뒤쪽에는 이 현기증 나는 풍경과 거대한 전나무 숲만으로는 지루한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습니다. 열심히 놀이터의 여러 기구들을 즐기고 있는 한 아이에 주목했습니다.
  

놀이터의 놀이기구는 아이의 성장에 대한 어른들의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 이안수

 
그 아이에 비해 놀이기구들은 너무 높았고, 손잡이 사이가 성글었습니다. 심지어 미끄럼틀은 바닥판이 없어서 손과 다리를 파이프에 걸쳐 매달려 미끄러져 내려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암장도 있어서 수직벽을 팔을 뻗어올라갔습니다.
  

놀이터의 어린이 암장시설 ⓒ 이안수

 
어떤 놀이기구도 중간에 안전망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바닥은 상당히 굵은 쇄석이거나 나무를 잘게 쪼갠 나무칩이었습니다.
  

상당한 높이의 놀이기구이지만 바닥은 쇄석으로 마무리했다. ⓒ 이안수

 
충격 흡수가 좋은 탄성포장재나 고무매트 같은 바닥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운 모래도 아닌 쇄석에 떨어진다면 돌에 상처가 날 만했습니다.

놀이터의 바닥이 충격 흡수가 잘 되는 재질인지, 미끄럼틀의 경사가 너무 가파르지 않은지, 그네의 줄에 아이의 손가락이 잘 끼지는 않을지 등을 점검토록 하는 내가 익숙했던 한국의 놀이터 안전수칙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였습니다.

환경 유해 요인이 높고 발암물질에 대한 시비가 잦은 인공바닥을 피하기 위해 어린이의 안전을 희생한 것인가?
  

뛰어내리고 있는 다섯 살 아이나의 키로 놀이시설의 높이를 짐작할 수 있다. ⓒ 이안수

 
5년 전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찌히(Gunter Beltzig)와 대화를 했던 기억이 새로워졌습니다.

"놀이터가 완벽하게 안전해서는 안 됩니다. 위험을 경험하는 곳이 되어야 해요. 떨어져도 안전하기만 놀이터는 오히려 현실의 위험상황에서 아이들을 위험하지 않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놀이터 디자이너의 말처럼 놀이터가 위험을 경험하는 곳으로 보면 이 놀이터의 시설들이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이 위험한 놀이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어린이 놀이터에 관심 있는 한국의 여행자입니다. 이 놀이터를 즐기고 있는 아이가 아들인가요?"
"그렇습니다. 5살 아이나(Eine)에요."

"놀이기구들이 상당히 위험해 보입니다. 5살에게는..."
"아니요. 떨어지면 신체의 어떤 부위가 부러질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죽지는 않을 거예요. 저 아이처럼 저렇게 오르고 건너고 하면서 신체발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도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놀이터 기준에 비해 상당히 위험하게 느껴지거든요. 바닥이 충격을 흡수할 만하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 쇄석도 큰 돌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부드러운 것이에요. 떨어진다면 밀리면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거든요."

"고무 같은 재질은 어때요?"
"아이들에게 너무 민감할 것 같아요."

"아이가 저렇게 높이 올라가는데 불안하지 않아요?"
"전 제 아들을 잘 알아요. 그리고 이 놀이터는 3살 이상의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키가 작은 아이들에게는 좀 힘들 수는 있지요. 아이나도 2년 전에는 오르는 데 좀 힘들어 했어요."

유모차에 태운 또 다른 아이를 둔 엄마 이리아 오프달(Irja Oppedal, 37세)씨는 아들의 능력과 놀이터 시설을 굳게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떨어져서 아이가 골절상을 입지 않기를 원하지만 다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균형 있는 성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인 이리아 씨는 직장과 육아의 병행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 이안수

 
"아이는 이 두 명인가요?"
"세 명이에요. 일바(Ylva)는 한 살된 딸이고요 7살 된 첫째 아들 임라(Imre)가 더 있어요."

"앞으로 자녀를 더 가질 생각은 없으세요?"
"하하하... 세 명이면 충분한 것 같아요."

"이리아씨는 베르겐사람인가요?"
"네.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자랐습니다."

"이렇게 멋진 풍광, 신선한 공기... 그것 외에 이곳에 사는 사람으로서 베르겐이 좋은 것은 무엇인가요?"
"멋진 자연이지요. 특히 산이 많아서 숲속 하이킹을 즐기거나 자전거와 스키 타기가 너무 좋아요."

"나쁜 것도 있을 텐데?"
"비가 좀 많이 와요."

"아이 세 명과 하이킹이나 스키, 자전거 타기에 무리는 없나요?"
"두 아들은 이미 자전거나 스키를 탈 줄 알아요. 지난주에도 가족이 함께 바다 건너 저 맞은편 아주 높은 산을 하이킹하고 왔어요."

"이 세 아들과 함께요?"
"물론이죠. 두 아들은 시종 함께 산을 올랐고 일바는 등에 메고 올랐죠."

"한국에서는 현재 출산율이 많이 떨어지고 있어요. 여성들도 대부분 일을 하고 있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을 힘들어 해요."
"저도 일을 해요. 의사입니다. 하지만 사회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육아에는 문제가 없어요. 산모는 약 1년간의 육아 휴직이 있어서 아이를 전념해서 돌볼 수 있고 남편에게도 15주의 육아휴직이 있어서 남편이 이어서 아이를 돌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더 휴가를 써서 아이와 보내고 1살 반 정도가 되어 저희 부부가 둘 다 회사에 나가야 할 때가 되면 유치원에 보내면 됩니다. 유치원이 아주 잘 되어서 아이를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르웨이는 1993년 노동당 정부에 의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 '아버지 할당제(father's quota)'가 시행되었습니다. 2005년 이후 이 쿼터는 몇 차례 변경되어 현재 15주로 정착되었습니다. 1995년에 스웨덴에도 이 제도가 도입되었고 아이슬란드에서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 나라에 '독박육아'라는 말은 없습니다. 육아에 친정엄마가 동원될 이유도 없습니다. 해서 아이는 엄마와 할머니 사이를 오가며 정서적 혼란을 겪을 이유도 없습니다.

노르웨이는 아동 구호 비정부기구(NGO)인 세이브더칠드런 (Save the Children)이 2015년 17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5년 어머니 보고서'에서 여성과 아동이 살기 가장 좋은 나라 1위를 차지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노르웨이 #베르겐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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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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