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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시설 소녀들의 높은 사망률, 이유 추적해봤더니

[서평] 니콜라스 터프스트라 지음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

등록 2019.10.16 07:56수정 2019.10.1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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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중세시대가 끝나고 유럽 문화의 문을 열어젖힌 것은 르네상스 문화였다. 이탈리아 북부를 중심으로 발흥한 르네상스 문화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 대한 재인식에 초점을 두었다. 이는 곧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퍼져 나갔고, 문화, 예술을 비롯하여 고전에 대한 해석, 인본주의적 사고 등을 발전시켰다.

이런 르네상스 문화의 후원자로 자처한 도시가 바로 피렌체다. 피렌체의 부유한 권력자들은 예술가나 학자를 후원했고, 그들이 마음껏 문화 발흥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왔다. 덕분에 오늘날 우리들은 이탈리아의 수많은 예술 작품을 교과서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대의 도시들이 문화를 꽃피웠다고 해서, 그 시대를 살아갔던 사람들도 모두 밝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시절에도 고통을 받고 더러운 환경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죽어나갔던 보호시설이 있었다.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 ⓒ 글항아리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는 피에타의 집이라는 보호시설에 대해 연구한 책이다. 피에타의 집은 1550년대 무렵 이탈리아 피렌체에 존재했던 여성 보호시설이다. 부모나 이웃, 후견인들이 소녀들을 두고 가면 피에타의 집에서는 소녀들을 기거하게 했다. 나중에는 수녀원으로 그 기능이 변화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냥 평범한 보호시설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원제는 'Lost Girls: Sex And Death In Renaissance Florence'이다. 이 시설에 들어온 소녀들은 그냥은 사회로 돌아가지 못했다. 우리는 저자가 펼쳐놓은 수백년 전의 기록에서 소녀들이 사회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에 대한 미스터리를 파헤치게 된다.

저자인 니콜라스 터프스트라는 토론토대 사학과 교수로, 르네상스기와 근대 초 이탈리아의 사회문화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번역자인 임병철 신라대 교수 역시 이탈리아의 사회문화사에 관심이 많은 학자이다. 저자와 번역자가 모두 관심분야가 같고 책의 테마도 확실하다. 

이 책의 목적은 "무엇이 피에타의 집 소녀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곳에 들어온 여성들은 유달리도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1550년대에서 1560년대를 거치면서 엄청난 수의 여성이 죽음을 맞이했다. 처음 입소한 52명의 소녀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피에타의 집에서 사망했다. 14년 동안에는 526명중 2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아무리 열악한 사람을 보호하는 곳이라 해도 10대 소녀의 사망률로는 지나치게 높은 수치였다. 근대 이전에는 위생 수준이 낮고 의술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망률이 높았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보호시설에서의 사망률은 이를 훨씬 밑돌았다. 유독 피에타의 집에서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것이다. 대체 왜 이곳에서는 수많은 소녀들이 죽음을 맞이한 걸까?


저자는 서류로 남아있는 기록들을 꺼내서 이들의 삶을 추적한다. 직물 제조에 대한 기록, 재정을 기록한 문서, 처방서를 바탕으로 그들의 삶이 어떠하였는지를 재구성한다. 책에 따르면, 피에타의 집의 근본적인 목적은 매춘부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는 소녀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고아가 된 소녀들은 사회의 위협에 취약했고, 피에타의 집 소녀들은 3분의 2가 도시 외부 출신으로 그들을 보호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보호를 위해 운영된 피에타의 집에선 많은 소녀들이 죽었다. 소녀들이 죽은 이유를 찾아서, 저자는 다양한 원인을 따라간다. 원인 중 하나로 추측되는 것은 노동이다. 현대의 시설과는 달리 강한 수준의 노동이 부과되었기 때문에 소녀들은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다.

책에 따르면, 피에타의 집 소녀들은 피렌체 산업 구조에서 최하위의 위계를 담당하였으며, 먹고 살아갈 돈을 벌기 위해 제조업에 종사했다. 바로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는 직물 산업이었다. 고치에서 실을 뽑아내기 위해 따뜻한 물을 담아놓은 그릇을 향해 여러 시간 굽은 자세로 일했고, 쉽게 호흡기 질환에 걸렸다. 또한 소녀들의 방은 언제나 습기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저자는 매우 강한 낙태약 사용과 당시 널리 퍼진 질병이었던 매독 역시 죽음의 원인일 수 있음을 말한다. 책에 따르면 16세기 중반에는 많은 사생아가 태어났고, 하녀로 고용된 소녀나 노예에 대한 폭행의 결과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한다. 하녀로 일하기 위해 피에타의 집을 떠났던 소녀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어떤 한 원인으로 인해 소녀들이 모두 죽었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원인을 설명하면서 피에타의 집에서 살아간 소녀들의 짧은 삶의 일부를 추측하고 누가 그녀들을 어떻게 도왔는지 이해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당시 이탈리아 도시 내의 여성이 살아간 불행한 삶의 모습이 그려져 나간다.
 
우리는 여성이나 어린이와 같은 르네상스기의 사회적 하위 계층도 생득권을 소유한 개인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근대적 관념을 제거해야만 한다. 성적 불평등은 피렌체의 법에 명기된 사실 자체였다. 과부, 결혼한 여성, 혹은 존경할 만한 가문의 처녀를 강간한 남성은 500리라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린 하녀를 겁탈했다면, 그에게는 단지 25리라의 벌금만이 부과되었다. -205P
 
이 책은 역사의 파편과 같은 기록을 바탕으로 버려진 여성들의 삶을 추측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당시 여성이 얼마나 비참한 환경 속에서 버려지고, 다른 이에 의해 운명이 조종당했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 사람들이 그런 환경 속에서도 살아가기 위해 고통을 감수했다는 사실조차도 깨닫게 된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역사 속에는 영웅이나 황제뿐만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죽을 힘을 다했던 버려진 사람들이 있었다. 이 책은 문화의 황금기 시대의 사람들이 살아간 우울한 매일을 들춰낸다.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 - 피렌체의 사라진 소녀들을 둘러싼 미스터리

니콜라스 터프스트라 (지은이), 임병철 (옮긴이),
글항아리, 2015


#자선 #자비 #여성 #이탈리아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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