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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다니며 부업으로 카페 연 후배, 1년 후

[내 인생의 하프타임] 예쁜 동네 카페 속 복잡한 사연

등록 2019.10.16 15:23수정 2019.10.16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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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삶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지난 9월 어느 산 아래 동네로 이사했다. 여기로 이사한 이유 중 하나는 맘에 드는 카페가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카페에서 글 쓰는 걸 좋아하는 나는 지난 여름 집을 보러 다닐 때마다 그 동네 카페도 들러 보았다.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카페와 동네 분위기를 살폈다.    
 

동네 카페들 분당 어느 산 아래 우리 동네에는 크고 작은 카페들이 많다 ⓒ 강대호

     
새로 이사한 동네에는 카페가 많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약 15분 동안 크고 작은 카페 다섯 개를 지난다. 다른 길에도 카페가 여럿 있다. 난 그곳 모두에서 커피 맛도 보고 글도 써봤다. 모든 곳이 나름 분위기도 좋았고 커피 맛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았다.

하지만 카페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이 너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통계청 '서비스업조사'에 의하면, 2017년 12월 현재 전국에 5만6928곳의 커피전문점이 있다. 또한, 국세청 '생활밀접업종 신규사업자 현황'에 따르면, 2017년에만 전국에서 1만7030곳의 커피음료점이 새로 생겼다. 통계 집계 주체가 다르긴 하지만 숫자로만 보면 한 해에 전체의 30%를 웃도는 새로운 카페가 생긴 거다.

직장인이나 주부들이 제일 하고픈 부업으로 카페가 떠오른 지 오래다. 작고 예쁜 카페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낭만으로 자리 잡았다. 내 남자 후배(52세)도 그랬다.

후배는 대학을 졸업한 후 금융회사에서 오래 근무했다. 큰 기업에서 재무 담당 임원으로도 일했다. 그의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이다. 집에 좋은 오디오를 갖춘 음악감상실과 장서를 갖춘 서재가 있을 정도다. 그런 그가 좋아한 게 커피다. 정확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거였다.

후배는 시간이 날 때면 카페를 순례하며 커피와 음악과 독서를 즐기며 머리를 식히곤 했다. 나와는 입소문난 카페를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후배는 "형, 여기는 다 좋은데 음악이 별로네" 혹은 "이 커피잔과 카페 분위기가 맞는다고 생각해? 이 카페 사장 취향 독특하네"라는 말을 하곤 했다.

후배는 맘에 드는 카페를 찾게 되면 아이처럼 즐거워했고 그 카페 주인과 안면을 텄다. 그런 그에게 카페를 열어볼 생각이 든 건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을 테다. 후배는 기회 있을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카페를 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곤 했다.


"맘에 드는 카페에 가면 난 그냥 맘이 편해. 커피가 날 그렇게 만드는지 분위기가 그렇게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도 사람들이 맘 편하게 찾아오는 곳을 만들고 싶어. 친한 사람들에게 사랑방이 되면 더 좋고."
 

동네 카페 우리 동네 카페를 내가 좋아하는 건 무엇보다 조용하기 때문이다. ⓒ 강대호

 
꿈은 낭만스러웠지만 시작은 금융맨 출신답게 신중했다. 그 첫걸음은 지분투자였다. 후배는 어느 커피 로스팅 업체와 동업을 협의했다. 커피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과 물자를 모두 댔고, 후배는 돈을 댔다. 서로 가진 걸 투자한 완벽해 보이는 그림이었다. 그가 4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달려가던 시기였다.

하지만 동업의 길은 멀고 험했다. 그는 직장이 있었고 매장에 전념할 수 없었다. 카페를 비우는 시간이 많으니 신뢰가 무너지는 일들이 자꾸 생겼다. 갈등은 점점 커갔고 끝내는 결별했다. 어쩔 수 없이 후배는 카페 운영에 직접 깊숙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나이 오십 즈음이었다.

"우리 카페 50m 반경에 15개의 크고 작은 카페가 생겼다고."

1년여 만에 만난 후배는 무척 지쳐 보였다. 카페도 예전의 활기찬 모습은 아니었다. 근처에 카페가 늘어나서인지 극성수기라던 지난 여름에도 전년도 매출의 80%에도 못 미쳤단다. 하는 수없이 직원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직접 하는 일이 더 늘어나게 됐다고. 카페 외에 원래 하던 일은 오래전에 그만두었다.

"카페를 하면 느긋하게 커피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그럴 줄 알았는데 영 아니야.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후배의 카페는 사무실 밀집 지역에 있어서 출근 시간이 시작되는 오전 8시쯤 문을 연다. 하지만 그는 준비를 위해 한 시간 일찍 나온다고. 영업을 마쳐도 금방 퇴근하는 건 아니다. 설거지와 청소를 마치는 밤 10시 30분이 넘어야 퇴근할 수 있다.

일요일은 휴일이지만 후배는 오후에 매장에 나온다. 주방 대청소도 하고 각종 장비 소독도 해야 해서 휴일에 나와야 한다. 후배가 왜 지쳐 보이는지 이해가 됐다. 그는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가게를 시작할 때는 커피와 분위기와 서비스만 좋다면 승부가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상권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커피로 승부 낼 생각은 하지 않고 다들 가격으로만 승부를 보려고 해."

카페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가격이 조금씩 내려갔다. 후배 카페는 원래 비싼 곳이 아니었는데 다른 곳보다 비싸다며 불평하는 손님이 있다고. 그리고 가끔이지만 진상 손님도 있다고 했다. 자주는 아니라지만 한 번 겪으면 그 영향이 오래 간다고.

"육체의 피로야 잠을 잔다거나 쉬거나 하면 가신다지만, 마음의 상처와 피로는 풀 방법이 없더라고."

오랜만에 만난 후배에게서 카페라는 장소의 다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카페는 멋져 보이지만 종사자들에게는 고된 노동의 현장이었다. 주로 평범한 사람들이 찾지만 무례한 손님도 간혹 접하게 되는 감정 노동의 현장이기도 했다. 힘든 데다 매출도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극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우리 동네 카페들을 보면서 궁금했다. 크지 않은 동네에 카페가 이미 여럿 있었는데 왜 그 근처에다 새로 차렸을까. 그 카페들과는 다른 어떤 차별점을 가졌기에 열기로 마음먹었을까. 투자 대비 만족스러운 수입은 얻고 있을까.

카페를 운영하는 친한 후배에게 그런 속마음을 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준비한 질문들은 꺼내지 못했다. 힘들어 보이는 후배에게 "카페를 열고 싶어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마디 조언을"과 같은 판에 박힌 질문들을 꺼낼 수는 없었다. 카메라를 들이댈 수도 없었다. 그의 표정과 카페 분위기가 이미 많은 걸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문 닫은 카페 우리 동네에는 문을 닫고 방치 된 카페도 여럿 있다. ⓒ 강대호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리 동네에는 유동 인구에 비해 카페가 많은 편이다. 산 아래에 예쁜 카페가 모여있다지만 모든 카페가 손님으로 넘치는 모습은 아니다. 영업을 관두었는지 지저분하게 방치된 카페도 여럿 보인다.

"좀 더 무리해서라도 브랜드 커피 전문점을 할 걸 그랬나 봐."
 

후배의 말이 계속 생각났다. 예쁜 카페에서 아름답지만은 않은 카페의 뒤안을 엿보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 #동네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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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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