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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편지썼다 징역 산 전경, 38년 만에 '재심'

서울동부지법 "헌정파괴 범행 반대한 것"... 17일 첫 공판 예정

등록 2019.10.15 18:38수정 2019.10.15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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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 ⓒ 권우성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투경찰 신분으로 광주 상황을 편지에 담았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상회(62)씨가 38년 만에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12부(민철기 부장판사)는 지난달 6일 김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고 오는 17일 첫 공판을 열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범죄사실은 5.18민주화운동 직후에 이뤄진 정부의 조치에 대한 청구인(김씨)의 의견을 표명한 행위로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에 해당한다"며 재심 개시를 확정했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아래 5.18민주화운동법)' 제4조 제1항, 제2조에서는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사람은 형사소송법 제 420조 및 군사법원법 제469조에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심대상판결의 범죄사실은 5.18민주화운동 직후에 이루어진 정부의 조치에 대한 청구인의 의견을 표명한 행위로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행위 또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에 해당하므로 5.18민주화운동법 제4조 제5항, 형사소송법 제424조에 따라 청구인(김씨)은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재심청구는 이유 있으므로 5.18민주화운동법 제4조 제5항, 형사소송법 제435조 제1항에 따라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개시하기로 한다."


"무죄 판결 난다면, 오랜 짐 벗을 수 있을 것"
 

김상회씨의 전교사보통군법회의 판결문(1980년 8월 8일). 1980년 5월, 당시 광주 상황을 편지에 쓴 전투경찰 김씨는 포고령, 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 소중한

 
김씨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 통화에서 "재심을 결정해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이어 "당시 시대상황에 눌려 사법부가 유죄판단을 내린 것에 제 나름대로 부당하다는 감정을 갖고 있다"라며 "오늘날 이 시점에 와서 '시대의 희생양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야 또 버틸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또 그는 "당시 재판을 할 때부터 무죄를 주장했고 당시 신군부에 저항한 것을 떳떳하게 생각했다"라며 "재심을 통해 만약 무죄 판결이 난다면 제 나름대로 갖고 있던 오랜 짐을 벗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군검찰이나 군판사들도 전두환을 비롯한 실권을 잡은 보안사령부 명령에 따라 움직였을 것이다"라며 "그들도 시대의 피해자일 수 있다. (재심 무죄 판결을 통해) 그들 역시 어느 정도 갖고 있을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여전히 무릎이 아프고 안면마비 증세를 겪고 있다. 당시 눈물로 옥바라지를 하셨던 부모님은 87세, 86세로 고령에 접어들었고 특히 어머니는 인지장애, 아버지는 보행불편을 겪고 계시다"라며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마음이 흔들리실까봐 재심 결정 사실을 아직 알리지 못했다. 무죄 판결을 받아 오랜 세월 눈물로 고생하신 부모님의 고통을 치유해드리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1980년 5월 전북 전주에서 전투경찰로 복무하던 김씨는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광주 상황을 적었다가 같은 해 6월 5일 전북도경 대공분실로 불법 연행됐다. 이후 김씨는 전북계엄합수단, 육군 35사단 헌병대, 광주 상무대 등에서 폭행·가혹행위가 동반된 조사를 받았고, 1980년 8월 8일 1심(전투교육사령부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2심(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은 1980년 12월 2일 김씨의 항소를 기각했고, 대법원 역시 1981년 4월 14일 그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불법 연행 기간과 인정받지 못한 미결구금일수를 포함해 총 1년 100일(1980년 6월 5일~1981년 9월 12일)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이번 재심 결정으로 김씨는 대법원 확정 판결 후 38년 만에 다시 법원의 판단을 받게 됐다.
 
이러한 김씨의 과거는 2016년 5월 <오마이뉴스> 인터뷰로 처음 알려졌다. 35년 동안 과거를 가슴에 묻고 살았던 김씨는 2016년 2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7차 보상신청)'에 신청서를 제출했고, 위원회는 약 1년 동안의 심의를 거쳐 김씨를 보상 대상자로 확정했다. 김씨는 이러한 사실을 2017년 3월 서울지방보훈청에 알렸고, 서울지방보훈청은 한 달 후 그를 '5.18민주유공자'로 인정했다.
 
이후 김씨는 지난 8월 5일 법원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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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전경으로 광주 소식을 편지로 알리려다가 포고령·반공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산 김상회씨. ⓒ 이희훈

   
[관련기사]
1980년 5월, 전경인 내가 대공분실에 끌려갔다
편지 두 통 때문에 끌려온 영창, 조사관은 곡괭이 들고 '쪼인트'
'5·18은 월요일'에 불과하던 어느날, 잊었던 남자가 왔다
5.18 전투경찰 피해자, 37년 만에 국가유공자 됐다
#5.18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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