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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막는 황교안 보면서 '노회찬 에프킬라'가 떠올랐다"

[인터뷰] '언제나, 노회찬 어록' 펴낸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등록 2019.10.17 07:43수정 2019.10.17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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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노회찬 의원. 사진은 2017년 10월 19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노회찬이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떠났지만 그를 소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사퇴를 두고서는 유독 그랬다. 누군가는 '노회찬이 생각나는 밤'이라며 그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명되면서 터진 온갖 말들, 조국 전 장관의 가족을 둘러싸고 제기된 각종 의혹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의 잰걸음, 몇백만을 운운하며 서초동과 광화문에 모인 인파들, 그리고 조국의 장관직 사퇴 후 한국당의 기세등등한 반응을 보면서 더욱 고 노회찬 의원을 떠올렸다.

최근 '노회찬이라면?'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아래 <노회찬 어록>)이 바로 그것.

<노회찬 어록>은 노회찬과 진보정치의 길을 함께 걸었던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이 모은 '정치 언어의 기록'이다. 2003년부터 민주노동당에 몸담은 강 전 원장은 노회찬 의원이 2010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때 선거캠프에서 일했다. 노 의원이 진보신당 공동대표일 때는 당 기획실장을 맡았다. 정의당에서 중앙당 당직을 맡아왔던 그는 지난 4월 노 의원의 지역구였던 창원성산 보궐선거에서 여영국 후보 캠프의 유세단장으로 뛰었다. 내년 총선 출마 준비에 한창인 그를 지난 15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노회찬은 조국 사태에 뭐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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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언제나, 노회찬 어록' 표지. ⓒ 루아크

 
강상구 전 원장은 "노회찬의 말은 한국 정치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정의한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마음먹고 시작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노회찬의 말을 모아놓고 보니 중심을 관통하는 시대사적 의미와 맥락이 있었다고 한다.

"요새 한국 정치는 우리가 예전에 세웠던 기준이나 가치가 많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 있다고 봐요. <노회찬 어록>은 이럴 때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 힌트를 담은 책이에요. 막말, 무턱대고 비난하기, 무작정 공격하기, 이런 게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품격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의 선명한 사상을 대중적으로 말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정치인이 노회찬이었기 때문이에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만약 노회찬이 일명 '조국 사태'를 봤다면 뭐라고 말했을까. 그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노 의원의 현실적인 위치 때문에 굉장히 곤란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특권이 만연한 사회이고, 불공정·불평등의 문제가 촛불정국 이후에도 여전히 심각하다는 면에 대해서는 매우 깊이 있게 고심하셨을 거예요. 노 의원 필생의 과제가 불공정 특권을 없애는 것이었어요. 이번 국면에서도 가슴은 아프지만 정치개혁·사법개혁을 분명히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이 사회의 소외 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애쓰시지 않았을까요. 감히 추측해 봅니다."

노회찬이 정치의 목표로 삼았던 '6411번 버스 투명인간'들을 위한 목소리를 냈을 것이란 이야기다. 그런데,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전후로 정의당은 커다란 비판에 직면했다. 정확히 말하면, '조국 데스노트 등재 여부' 때문이었다. 한쪽에서는 '민주당 2중대'라고, 다른 한 쪽에서는 '진보 맞냐'고 날을 세웠다.

"조국 장관을 둘러싼 정의당의 선택, 뼈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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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펴냄)이란 이름의 책으로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을 집대성한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 김지현


"저는 정의당이 '청문회가 끝나고 나서 데스노트에 올릴지 말지 판단하겠다'고 했을 때 실기(失期)했다고 생각해요. 정의당이 언제나 청문회 결과를 보고 판단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당시 판단 보류는 신중한 선택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때를 놓친 거죠."

실기가 낳은 결과는 혹독했다.

"결국 지지율이 내려갔죠. 무엇보다 노회찬이 이야기했던 '투명인간'들, 그들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습니다. 게다가 당 안팎 청년들의 실망이 상당했죠."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과정에서 보여준 정의당의 입장이 모호했다는 말이다. 강상구 전 원장은 "뼈아프다"라는 말과 함께 설명을 이어갔다.

"'어떤 당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정의당 내 합의 부재가 문제였다고 봐요. 정체성, 그러니까 노선의 문제죠. 그런 합의가 없으면, 당장 지지율 하락이나 당원 감소 같은 것에 일희일비하게 됩니다. 촛불과 대선을 거치며 '노동이 당당한 나라' '얼굴 있는 민주주의' 등의 구호를 통해 정의당의 길이 정리되는 것으로 보여졌지만 아무래도 미흡했던 것 같아요. 이게 (조국 청문회 전) 빠른 입장 결정이 어려웠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봅니다.

결국 조국 정국 당시 정의당이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 거죠. 누가 퀴즈를 내면 O인지 X인지 단순히 적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에도 정의당의 의제로 '정의당의 정치'를 했어야 했다고 봐요. 가령 조국 후보자에게 세월호 사건 진상규명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든가, 노회찬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결국 이어진 삼성X파일의 미공개 테이프 280여 개 공개에 협조할 것을 요구한다든가."


"모기가 거의 죽을 뻔했는데, 살아날 기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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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조국 교수는 장관에 임명됐고, 업무를 수행했고, 전격 사퇴했다. 조 전 장관은 스스로를 검찰개혁의 불쏘시개였다고 평가했지만, '조국 사태'는 정치권에도 큰 불씨를 남겼다.  조국 장관이 사임 의사를 밝힌 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다음 국회로 미루자"고 제안했다. 말이 좋아 '미루자'이지, 정확히 말하면 '20대 국회 때 공수처법을 폐기하자'는 것이다. 임기가 끝나면 국회에 발의된 계류법안은 모두 폐기되니까.

"노회찬 의원은 20대 국회 들어 가장 먼저 공수처를 만들자면서 2016년에 법안 발의를 한 사람이었어요. 그때 한국당 의원들이 반대하자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라 안 삽니까?'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에요. 사실, 촛불정국과 패스트트랙 정국을 지나면서 '모기'들이 거의 죽을 뻔했거든요? 근데 지금 살아날 기회를 잡은 거예요. '살아야겠다' 하는 거죠. 그러니 당연히 '에프킬라' 좀 치우자고 하는 거고요.

희한하죠. 원래 공수처는 야당이 좋아할 만한 기구예요. 고위공직자 대부분이 여당 출신이니까, 정부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잖아요. 그런데 한국당은 반대하죠. 황교안 대표나 한국당이 공수처법 처리를 미루자고 하는 건 자기고백이라고 봐요. 이번에 조국 장관 주변이 어떻게 수사받는지 봤잖아요. '우리가 저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한 미루자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강상구 전 원장은 한국당 주장을 '액면가' 그대로 보지 말라고 첨언했다. 이면엔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

"올해 4월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합의한 게 있어요. '본회의에 올릴 때는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순으로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국당이 '공수처법 하지 말자'고 하는 건 사실 문재인 정부가 생각하는 최대의 개혁을 좌초시키겠다는 겁니다. 패스트트랙 자체를 없던 일로 하자는 거예요. 그럼 민주당은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일 이유가 없어져요."

그는 "양당제로 귀결됐던 한국 정치 질서를 바꾸자는 국민적 열망에 찬물을 끼얹자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이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자신있게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2020년 총선을 기점으로 해서.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한국당, 기반 흔들린 민주당... 정의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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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노회찬 어록'(루아크 펴냄)이란 이름의 책으로 고 노회찬 의원의 말을 집대성한 강상구 전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 김지현

 
"촛불정국과 대선 이후로 과거 70여 년 동안 굳건했던 한국당 계열의 보수 지지층이 붕괴됐었어요. 그 뒤 정치 지형은 ▲ 보수세력의 지리멸렬 ▲ 민주당 정당지지율 1위 고착 ▲ 정의당(진보정치)의 약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경향이 조국 이후로 다시 바뀌었어요. '보수 재결집' '민주당 지위 약화' '정의당 부진', 이 흐름이 총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아요. 물론 '다이내믹 코리아'라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강 전 원장은 최근 정당지지율 분포가 과거 20대 총선 전 양당 독주 체제 때와 비슷하다고 봤다. '조국 사태' 이후 민주당과 한국당은 각각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자신들의 지지세력을 확인했다. 바른미래당도 분당 위기를 겪고 있지만, 지지율 측면에서는 나름 반사이익을 취했다. 그 사이 정의당 지지율은 조국 사태 전과 비교해 봤을 때 답보 혹은 소폭 하락 국면에 처했다. 인터뷰 말미, 그는 다시 한 번 '정의당의 정치'를 강조했다.

"'조국 사태' 이후, 한국당의 부활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정의당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누구보다도 문재인 정부의 개혁 후퇴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새로운 의제를 던져야 합니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하겠다' 해놓고선 탄력근로제를 하겠다고 해요. 최저임금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요샌 재벌 개혁 이야기도 거의 안 나오죠. 개혁이 명백히 후퇴하고 있다는 건 촛불의 약속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9월 중순에 출범한 정의당 '그린뉴딜경제위원회'는 정의당만의 '새로운 의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분야 하나만 다루는 게 아닙니다. 기후변화 시대에 '녹색'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경제성장 전략을 만든다는 취지예요. 이 위원회의 목표 중엔 '불평등을 해소하고 서민 노동자, 중산층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것도 있어요. 확장적 재정정책을 펼 수 있게 공공펀드나 금융기관을 설치할 수 있다는 계획까지 넣고 있습니다. 

조국 사태로 드러났던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가 명백하게 답을 해야 하는 시간이 왔어요. 정의당은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절대 안 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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