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비단옷에 고급수레, 현악기... 2천년 전 광주사람들

역사의 블랙박스, 광주 신창동 유적'

등록 2019.10.18 15:51수정 2019.10.18 15:51
0
원고료로 응원
 

2천 년 전, 광주 극락강변에서 현악기를 타던 여인은 누구였을까 ⓒ 임영열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교수는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라고 했다. 또한 "역사는 유물과 함께 기억해야 명확한 이미지를 갖게 되고, 지리와 함께 익혀야 현장감을 갖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백 퍼센트 공감이 가는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은 문서로 기록된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선사시대(先史時代)였다. 역사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록의 공백기, 삼한(三韓)시대 광주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먼 옛날 광주사람들의 삶과 죽음, 문화·예술을 문서가 아닌 유물과 함께 명확한 이미지로 현장감 있게 증언하고 있는 곳이 있다. 2천년 전 고대 마한(馬韓)시대, 광주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역사의 블랙박스, '광주 신창동 유적'이 그곳이다.

역사의 블랙박스
 

1992년 국가사적 제375호로 지정된 신창동 유적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위치한다. 운암산 기슭의 월봉과 황우봉 사이로 뚫린 호남고속도로와 광주-장성간 국도 1호선이 유적지를 관통하고 있다 ⓒ 임영열

  
국가사적 제375호로 지정된 신창동 유적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위치한다. 운암산 기슭의 월봉과 황우봉 사이로 뚫린 호남고속도로와 광주-장성간 국도 1호선이 유적지를 관통하고 있다. 전남 담양의 가마골 용소에서 발원하여 광주의 북서쪽을 가로지르는 호남의 젖줄, 영산강은 이곳에 이르러 '극락강(極樂江)'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는다. 유적은 극락강변의 나지막한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신창동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초기 철기시대 거대한 농경 복합유적이다. 인류가 모든 도구를 돌로 만들어 쓰던 석기시대에서 청동기를 거쳐 쇠를 사용하기 시작한 철기 문화가 중국을 통하여 기원전 1세기경에는 한반도 남부 지역까지 유입된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광주 문화·예술의 원형'을 생생한 이미지로 말해주고 있다.

기원전 1세기, 신창동 유적이 형성될 즈음 광주는 54개의 부족 국가로 이루어진 정치 연합체, '마한(馬韓)'문화권에 속했다. 이후 3세기 후반 패권이 백제국으로 넘어갈 때까지 당시 광주 신창동 사람들은 극락강의 물줄기를 젖줄 삼아 마한의 찬란한 농경문화를 꽃피웠음을 출토된 유물이 증언하고 있다.
 

신창동 유적에서 발견된 각종 토기 ⓒ 임영열

   
극락강변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던 2천년 전의 타임캡슐이 열리게 된 계기는 향토사학자 양회채로부터 비롯됐다. 1960년 어느 봄날이었다. 신창동 도로의 절개지에 거꾸로 박혀있는 항아리 같은 것을 발견한 양회채는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 김원룡(1922~1993) 교수에게 사진과 함께 보고서를 보냈다.

'한국 고고학의 아버지', 김원룡 교수팀의 발굴 결과는 놀라웠다. 마한(馬韓) 시대 어린아이들의 공동묘지가 발견된 것이다. 53기의 옹관묘와 철편, 유경석촉, 숫돌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세상으로 밖으로 나와 이곳이 농업을 기반으로 한 집단 마을이었음을 세상에 알리고 더 많은 유물의 존재를 암시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지난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의 조현종 학예사를 비롯한 발굴팀이 현장을 다시 찾았다. 53기의 옹관묘가 출토된 역사의 현장이 추가 조사도 없이 국도 1호선 직선화 공사로 마구 파헤쳐지고 있었다. 관계 기관에 강력히 항의해 가까스로 공사는 중단됐고 발굴이 시작됐다.
 

신창동 유적에서 발견된 각종 농기구 ⓒ 임영열

     
몇 군데 지점을 선정해 발굴했다. 결과는 어마어마 했다. 단단한 흙 밑을 파내려 가자 다른 발굴 현장과는 달리 저습지의 부드러운 펄층이 나왔다. 조심스럽게 펄을 걷어내자 보존 상태가 완벽한 칼자루, 괭이, 나무로 만든 머리빗, 싸리비, 불에 탄 흔적이 있는 쌀과 벼 껍질, 검은 토기 등이 발견됐다. 유적은 곧바로 국가사적으로 지정됐고, 국도 1호선 도로는 우회했다.

비단옷에 고급 수레 타고 현악기 연주하던 광주 사람들

현장은 보존되고, 소중한 유물을 찾았음에도 발굴팀은 한 편으로 걱정이 앞섰다. 저습지에 밀봉된 상태의 유물을 제대로 수습해서 보존 처리할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창동 유적은 우리나라 유적 발굴 사상 초초의 저습지 발굴이었다.

경험이 없는 발굴은 자칫 유적 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발굴은 잠시 중단되었고, 광주박물관 조현종 학예사가 일본으로 날아갔다. 일본의 저습지 발굴 사례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일본 '나라문화재연구소'에서 저습지 유적 발굴 기법을 공부하고 돌아온 다음 1995년부터 발굴은 연차적으로 진행됐다.
 

1997년에 발굴된 수레 부속구를 토대로 재현한 수레바퀴. 크기는 직경 160㎝로 추정된다 ⓒ 임영열

 

2천 년 전 신창동 수레 모형도. 이 같은 수레는 이 지역에 수장급 실력자가 존재했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 임영열

   
철저한 준비 끝에 진행된 1997년까지의 3차례의 발굴 결과는 한국 고고학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원형 상태의 옻칠이 된 칼자루와 수레 부품, 현악기, 비단 조각, 신발골, 부채 자루, 각종 농기구, 활과 발화구 등등. 2천 년 전 마한시대, 신창동 사람들의 보물 창고에서 마치 타임캡슐이 열리듯 새로운 유물들이 마구 쏟아졌다. 발굴된 대부분의 유물들은 국내 최초, 국내 최고의 것들로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 중에서 마한시대 신창동 사람들의 문화·예술과 생활수준을 알려주는 귀중한 유물이 있다. 이른바 '신창동 유적의 빅3'로 불리는 현악기와 타악기, 비단천을 짜는 베틀 부속구와 수레바퀴 부품이 그것이다.
 

베를 촘촘하게 짜기 위해 사용하는 베틀 부속구 바디(베를 짤 때 위쪽에서 밑으로 당기는 도구) ⓒ 임영열

신창동에서 발견된 현악기는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현악기, '슬(瑟)'로 밝혀졌다. 반쪽으로 발견된 악기는 옻칠이 되어 있고 소리를 내는 울림통과 줄을 거는 현공을 갖추고 있다. 복원한 결과 10현으로 이루어졌음이 확인됐다.

중국 진나라때 역사서 '삼국지 위지 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傳)'에 따르면 "삼한 사람들이 노래 부르고 춤을 출때 '슬(瑟)'을 사용 했는데 그 모양이 중국의 현악기인 '축(筑)'과 같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창동에서 출토된 현악기는 이 기록을 뒷받침 하고 있다.
 

신창동 유적에서 발견된 ‘슬(瑟’)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현악기이다. 반쪽 상태로 출토 됐으며 길이 77.2㎝, 폭 28.2㎝로 옻칠이 되어 있다 ⓒ 임영열

  
비단천을 짤 때 쓰는 베틀 부속구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단 천조각은 마한 사람들의 패션을 짐작 해볼수 있는 단서다. 직경 160cm의 수레바퀴 부속품은 당시의 교통 체계와 다른 부족들과의 활발한 물자교류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2천년 전 극락강변의 야트막한 언덕에 모여 살던 신창동 사람들은 벼농사를 짓고, 비단 옻에 수레를 타고 현악기를 연주하며 고급스럽게 살았다.
 

오늘날 광주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는 수준 높은 문화·예술의 DNA는 2천 년 전 신창동 사람들로부터 유전된 것이라고 한다면, 과한 해석 일까 ⓒ 임영열

   
오늘날 광주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는 수준 높은 문화·예술의 DNA는 마한 시대 신창동 사람들로부터 유전된 것이라고 한다면, 과한 해석일까. 그 답은 광주광역시 매곡동에 있는 <국립광주박물관>에 가보면 알 수 있다. 1963년 시작된 조사는 현재 까지도 진행 중이며, 발굴된 유물은 박물관 1층 농경실에 전시하고 있다.
#신창동 유적 #국가사적 375호 #우리나라 최초 현악기 #광주문화의 원형 #2000년 전 타임캡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2. 2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