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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사-회식... 내가 싸워야 할 건 남편이 아니었다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한 노력

등록 2019.10.23 17:39수정 2019.10.2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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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더 익숙해집니다. 엄마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요? '나다운' 엄마, 이름을 지키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경력 단절되어 주부로... 우울하지 않았던 비결

어느 책에서 누군가가 그랬다. '넓은 세상을 경험한 후로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2018년의 마지막 날. 우리 가족은 밴쿠버의 집을 전부 비웠다. 한국으로 보내고 남은 짐들을 자동차에 실었다. 캐나다에서의 마지막 보름은 그렇게 자동차를 타고 추억이 깃든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마무리했다.

남편과 나는 여행 중 새해 카드를 주고받으면서 약속했다. 이곳에서 배운 것들, 그러니까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와 평등한 관계를 위한 노력을 한국에 가서도 계속 이어 가자고. 그런 마음으로 아쉬움과 설렘을 모두 안고 지난 1월 17일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변화의 걸림돌

대구에서 우리가 살던 집은 이것저것 수리가 필요한 상태였다. 다시 입주하기 전에 손을 보아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귀국하자마자 우리 집이 아닌 대전의 시가로 향했다. 공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보름 정도 머물며 한국에서의 일상을 준비했다.

밴쿠버에서 남편과 '평등'을 추구해왔던 내게 귀국 후 곧바로 시가로 가야 하는 일은 묘한 긴장감을 유발했다. 나는 비행기에 오르면서부터 '시가에서도 며느리로서만 행동하지 말고 내가 나 스스로를 존중하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가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의식하지도 못한 채 '며느리'로서의 정체감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시차 적응 때문에 피곤한데도 주방에서 소리만 나면 자동으로 눈이 떠졌고, "들어가서 쉬어라"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에도 "괜찮아요"만 연발하며 시가의 일들을 거들었다.

반면에 남편은 시가에서 '아들'이 됐다. 시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 세탁, 이부자리 서비스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나는 이런 남편을 지켜보며 '자신의 본가에서 남편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데, 한 다리 건넌 내가 먼저 시가의 일에 나서지 말자'고 다짐하곤 방에서 휴식을 취하려 노력해봤다.

그러나 시가의 주인인 시아버지를 비롯해 아무도 거들지 않는 집안일을 혼자 감당하시는 시어머니를 지켜보는 것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나는 다시 시어머니와 함께 앞치마를 두르곤 했다.

동시에 남편의 회식이 재개됐다. 시가는 대전이었고 남편의 직장은 대구에 있었지만, 귀국 보고가 들어가자마자 남편의 직장에서는 환영회를 연이어 열어줬다. 업무 복귀는 2월 중순으로 예정돼 있었으니, 일보다도 먼저 회식에 복귀한 셈이었다.

남편은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에 거의 매일 오후 대구까지 회식을 하러 갔고, 술에 취해 대전 시가로 돌아왔다. 나는 시가에서 지내느라 친구와 동료, 지인들에게 귀국했다는 전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만의 공간 만들기
 

왜 집 안에 '엄마의 공간'은 잘 만들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 unsplah


나는 위협을 느꼈다. 캐나다에서 애써서 일궈온 '나답다'는 느낌이 시가에 있는 동안엔 전혀 들지 않았다. 시가에서 나는 여전히 가족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었다. 회식이 업무만큼 중요한 남편의 직장문화도 우리가 캐나다에서 일궈온 '함께 하는' 일상에 흠집을 낼 것이 분명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다움'을 지켜갈 무엇인가가 절실했다.

나는 대구의 우리 집을 정비하면서 작은 방 하나를 오롯한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책상과 책장을 넣고,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작은 소파와 테이블을 배치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책장을 채우고, 작은 소파엔 포근한 무릎담요 하나도 가져다 두었다. 내 공간을 꾸미면서 나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내 방을 가졌을 때처럼 설렜다. 결혼 후 13년 만에 처음 가져보는 나만의 공간이었다.

귀국 후 우리 집을 처음 방문한 이웃들은 이 방을 보고선 당연한 듯 물었다. "여긴 남편 서재지?" 내가 "아뇨, 제 방이에요"라고 대답하면 다들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많은 집에서 서재는 '남편' 혹은 '아빠'의 공간이다. 설령 남편이 종일 밖에서 일하고 집에선 TV를 보거나 잠만 잔다 할지라도, 남편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권리를 누린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엄마가 집안에 자신의 공간을 마련한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웃들의 당황한 표정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런 '관행'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의아하기만 했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이 방은 내게 글을 쓰고 상담 사례를 정리하는 일터이자, 공부를 하고 책을 보며 바쁜 일상에서 '온전한 나'를 만나는 공간이 되어 주었다. 비록, 바로 옆 주방의 설거짓감과 세탁실의 세탁기 소리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내 안의 가부장'을 거부하기

나만의 공간을 만든 후, 끊긴 경력을 잇기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넣었다. 다행히 3월부터 한 대학의 학생상담센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었다. 글쓰기와 상담, 사례연구와 대학원 공부까지 병행했다. 엄마, 아내, 그리고 상담사와 심리학도로서 다중역할을 수행하는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캐나다에서 그토록 애써 실천했던 가치들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가장 큰 원인은 남편의 직장문화였다. 회식이 업무의 연장인 직장문화 속에서 남편에게 집은 숙소가 되어갔다. 캐나다에서는 아이의 방과 후 스케줄에 늘 함께했지만, 귀국 후에는 저녁에 돌아와 아이가 없으면 "오늘은 우리 아들 어디 가는 날이야?"를 연신 물었다. 가끔은 아이가 몇 반인지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귀가가 늦거나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엔 다시 예전처럼 아무 곳에나 옷을 던져 놓기도 했다.
 

한국의 회식문화는 여전히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 unsplash

  
나 역시 다시 시작한 일들로 바빴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집안일과 육아가 오롯이 내 몫으로 돌아왔다. 남편과 가사와 육아를 함께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캐나다보다 훨씬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동안 잠자코 있었던 '내 안의 가부장'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댔다(책 <내 안의 가부장>의 제목. 오랜 가부장 문화의 영향을 받아 우리 자신 안에 내면화되어 버린 가부장적 사고의 잔재들을 뜻한다). 

아무 데나 벗어놓은 남편의 옷을 치우라고, 새벽에 좀 더 일찍 일어나 식구들의 옷가지도 챙기고, 식사 준비도 끝내놓으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했다. 집에서 일하는 네가 좀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밖에서 일하는 남편은 집에선 쉬게 내버려두라고 자꾸만 요구했다. 

오랫동안 내면화되어 있던 '내 안의 가부장'의 요구를 따르기 시작한다면, 지난 2년 간 캐나다에서 실천해왔던 노력은 한순간에 무너질 터였다.

나는 다시금 바싹 긴장했다. 집이 좀 지저분해도 옷을 정리하거나 자신의 방을 청소하는 것 같은, 남편과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엔 의도적으로 손을 대지 않았다. 

낮에도 불필요하게 주방에 있지 않고 나의 공간인 서재에서 일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게 집은 글을 쓰고 상담 사례들을 정리하고 공부하는 일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명심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의 가부장은 끊임없이 내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유발했지만, '이건 정당한 죄책감이 아니다'라고 반복해서 되새겼다.

나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우리 가족은 아직까지 캐나다 생활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고 있다. (캐나다에서만큼은 아니지만) 남편의 가사 참여가 자연스러워졌고, 아이 역시 스스로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학회나 집단상담을 위해 주말에 종일 집을 비워도, 남편과 아이는 별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밥도 해먹고 집안 청소도 하며 제 몫을 잘 해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안의 가부장은 내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주말에 집을 비우는 것은 '미안한 일'이라고. 그리고 이웃들은 내게 말한다. "당신 남편은 정말 대단해, 자긴 복 받은 거야"라고.

이럴 때마다 나는 내 안의 가부장에게 이렇게 속삭여준다. "내가 나의 삶을 사는 건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일 수 없다"고. 그리고 남편만을 추켜세우는 사회를 향해 속으로 이렇게 말하곤 한다. "남편의 가사참여는 대단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넓은 세상을 경험한 후로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어느 책의 구절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예전 같은 환경에서 새롭게 알게 된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는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한다. 불필요한 미안함과 죄책감을 극복할 때까지, 가사에 함께 참여하는 남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이 긴장감을 늦추지 못할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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