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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을 '폭도'로 몰아부친 신군부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28회] "계엄군이 시민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있으니 모두 나서달라"

등록 2019.10.21 17:43수정 2019.10.21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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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확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전국 모든 대학교의 요구사항이었다. 5.18 광주항쟁이 일어나기 직전 대학교수가 앞서고 대학생들이 뒤따르는 평화시위 모습이다 ⓒ 5.18재단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오월은 바람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오지도 않았고
오월은 풀잎처럼 그렇게 서정적으로 눕지도 않았다.

오월은 왔다 피 묻은 야수의 발톱과 함께
오월은 왔다 피에 주린 미친개의 이빨과 함께
오월은 왔다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가르는 대검의 병사와 함께
오월은 왔다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오월은 왔다 자유의 숨통을 깔아뭉개는 미제 탱크와 함께 왔다.


민중시인 김남주의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의 앞부분 두 연이다. 이 시는 10연, 124행에 이르는 장시이다.

"피에 주린 미친개"들이 설치는, 광주의 넷째 날이 밝았다. 5월 21일이다.

이날은 음력으로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이다. 부처님의 어록 8만대장경을 압축하면 '자비'일 것이다. 그런데 광주에서는 자비와는 너무 동떨어진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 5.18기념재단

 
4월 초파일은 계엄사령관 육군대장 이희성의 공갈과 협박으로 시종한 「경고문」이 신문과 방송으로 도배질하면서 열렸다. 엄격하게 말하면 광주의 20일과 21일에는 시간의 구분이 별 의미를 찾지 못한다. 시민들의 저항이 새벽까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경고문'이다.

1. 지난 18일에 발생한 광주지역 난동은 치안유지를 매우 어렵게 하고 있으며 계엄군은 폭력으로 국내치안을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하여는 부득이 자위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을 경고합니다.

2. 지금 광주지역에서 야기되고 있는 상황을 볼 때 법을 어기고 난동을 부리는 폭도는 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다수의 주민 여러분은 애국심을 가진 선한 국민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량한 시민 여러분께서는 가능한한 난폭한 폭도들로 인해 불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거리로 나오지 말고 집 안에 꼭 계실 것을 권고합니다.

3. 또한 여러분이 아끼는 고장이 황폐화되어 여러분의 생업과 가정이 파탄되지 않도록 자중자애하시고 과단성있는 태도로 폭도와 분리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계엄군의 치안회복을 위한 노력에 최대의 협조있기를 기대합니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반란군에 저항하면서 민주회복의 항쟁에 나선 시민들을 '폭도'라 매도하면서 아끼는 고장을 위해 자중자애하라는 헛소리를 떠들고 있었다. 그동안 계엄군에 의해 자행된 살인ㆍ구타 등 학살에는 한마디의 사과나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날도 시내에서는 시민항쟁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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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적십자병원 영안실에 시위 중 사망한 시민들의 유해가 드라이아이스와 비닐로 쌓여있다 ⓒ 5.18기념재단

 
5월 21일, 이날은 음력 사월 초파일로서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그러나 광주에는 저주와 분노, 끔찍한 살육과 총성만이 난무했다. 지금도 광주시민들은 이날의 참상을 '초파일의 유혈극'이라고 부르고 있다.

계엄군의 발포가 개시된 후 광주시내 전역의 병원이란 병원은 대검에 찔리고 총에 맞은 총상 입은 환자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운전자들은 앞장서서 부상자와 사망자들을 병원에다 날랐다.

병원마다 총상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넘쳤으며, 분주한 모습으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의사와 간호원들에게 시민들은 경의를 표했다. 병원 앞엔 미처 들어서지 못한 부상자들이 줄을 이었고, 헌혈자들의 눈물겨운 행렬이 상처받은 시민들의 마음을 그나마 위무해주었다. 특히 적십자병원에는 인근의 속칭 '황금동 술집' 아가씨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헌혈을 자청하기도 했다.

새벽 4시까지 계속된 '신역전투'를 지나 9시 30분쯤에 이르자 외곽지역의 시위군중들은 금남로의 시내중심가를 향해 몰려들었다. 10시경엔 이미 시위대들은 군납방위산업체인 아세아자동차공장에 진입, 대형버스 22대, 장갑차 3대, 군용트럭 33대, 민간트럭 20대를 몰고와 도청으로 진격하거나 외곽으로 몰려 시민들을 실어 날랐다. (주석 1)


밤새껏 이어진 시위는 새벽 5시경 광주역전파출소와 KBS 방송국이 불타고, 5시 5분 광주역에서 출발한 학생ㆍ시민 1천여 명이 곤봉ㆍ쇠파이프 등을 들고 광주은행 본점 앞에서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시위대는 간밤에 사망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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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역사왜곡 규탄, 자유한국당 해체 3차 촛불문화제'가 9일 오후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열렸다. 문화제에 참석한 전옥주씨는 5.18 당시 가두방송을 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인물이다. ⓒ 소중한

 
21일 아침 가두방송을 하던 중에 시체 2구가 광주역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갔다. 광주역 입구에 대검에 찔려 눈알이 튀어나온 남자 시체 2구가 있었다. 나는 리어카에 시신을 싣고 태극기로 덮어 도청으로 갔다. 금남로에 모여 있던 시민들은 그 시신을 보고 분노를 금치 못했다. 나는 리어카를 끌고 도청 앞에 주둔해 있던 계엄군 중령에게 가서 시체를 보여주며 따졌다. 그는 우리들이 죽인 것이 아니라 간첩이 나타나서 그런 것이라고 발뺌했다. (구술 : 전옥주) (주석 2)

19일 밤부터 광주시내에서는 젊은 여자가 차량에 마이크를 달고 가두방송을 하여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전옥주(본명 전춘심, 31살)였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모습. ⓒ 5.18기념재단

 
"계엄군이 시민들을 처참하게 죽이고 있으니 모두 나서달라"고 호소하면서 시내를 누볐다.

"나는 공산당이 아닙니다. 난동자도 아닙니다. 단지 선량한 광주시민의 일원일 뿐입니다. 아무 죄없이 우리 학생ㆍ시민들이 죽어가는 것을 더 이상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나섭시다. 학생들을 살립시다. 계엄군을 물리치고 우리 스스로 광주를 지킵시다."

차량에 탑승한 청년들도 차량 옆면에 광목으로 만든 플래카드를 붙이고 각목으로 차체를 두들기며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불렀다. 일부 차량은 전남 각지에 소식을 알리고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광주를 빠져나갔다. 이들의 구호들은 당시 광주시민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전두환이 반란을 일으켰다."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
 "김대중 석방하라!"
 "광주시민의 피를 보상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구속 학생ㆍ시민을 석방하라!"
 "우리는 죽음으로 광주를 사수한다."

오전 10시경에는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금남로를 가득 메우고 가톨릭센타 앞에서 불과 30m의 거리를 두고 공수부대와 맞섰다. 당시 상황을 담은 녹음 테이프에 의하면 일부 시민들이 공수부대 지휘관들 앞으로 다가가 격렬한 항의를 했다.

"동족으로서 이렇게 무자비한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느냐!"
"공수부대는 당장 광주를 떠나라!" (주석 3)


주석
1> 윤재걸, 앞의 책, 108쪽.
2> 『5월광주항쟁사전집』, 54쪽.
3> 정상용 외, 앞의 책, 21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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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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