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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에서 4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나올까?

한센인과 평생을 함께 보낸 ‘파란 눈의 천사’ 마리안느와 마가렛

등록 2019.10.26 18:08수정 2019.10.26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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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다녔던 소록도1번지 성당. 한센인들과 함께 했던 소록도병원의 직원들이 다녔던 성당이다. 직원거주지역에 있다. ⓒ 이돈삼

 
천사를 만나러 간다. 피부색과 종교를 떠나 버림받은 땅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돌봤던 천사다. 그것도 머나먼 이국땅에서.

소록도다. 일제강점기에 한센인들이 사회에서 격리돼 살았던 곳이다. 한센인은 뭉개진 손과 주저앉은 코, 피부가 두꺼비등처럼 갈라지는 나병(癩病)에 걸린 사람을 일컫는다. 속된 말로 '문둥이'로 불렸다. 나병은 피부와 말초 신경에 병변을 일으키는 만성감염성 질환이었다. 당시엔 유전병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천벌처럼 여겼다. 지금은 전염성이 거의 없고, 감염이 되더라도 완치되는 병이다.


소록도는 섬의 형상이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작을 소(小), 사슴 록(鹿) 자를 쓴다.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섬이지만, 지금은 치유의 섬으로 거듭나고 있다.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여행객들에게 쉼까지 주는 섬이다.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에 속한다.
  

소록도해수욕장 전경. 한센인들과 따로 살았던, 직원들이 거주했던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소록도 중앙공원. 일제강점기에 한센인들이 강제 동원돼 맨손으로 만들었다. 소록도병원 뒤쪽에 자리하고 있다. ⓒ 이돈삼

 
소록도에 중앙공원이 있다. 사철 푸른 종려나무와 편백, 등나무와 향나무, 삼나무, 동백나무가 우람한 자태를 뽐내는 공원이다. 국내에 흔치 않은 나무들이 많아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곳이다.

공원은 한센인들이 맨손으로 만들었다.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격리 수용돼 죽임까지 당했던 그들이었다. 암석은 섬 밖에서 들여왔다. 나무는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가져다 심었다. 연인원 6만 명이 강제 동원됐다. 3년 4개월이 밤낮없이 피땀을 흘렸다.

공원에 커다란 바위 하나가 있다. 한센인 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진 바위다. 한센인들이 이것을 옮길 때, 일본인 스오 원장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호령을 했다. 너무나 힘이 들어 잠시라도 쉬려고 하면, 바로 채찍을 가했다.

손발이 성치 않았던 한센인들이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막노동에 동원된 그들이었다. 힘에 부치는 건 당연지사. 오죽하면 한센인들은 옮겨도 죽고, 옮기지 않아도 죽는다고, 이 바위를 '죽어도 놓고 바위'라 불렀다.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가 새겨진 바위. 중앙공원을 조성하던 당시, 한센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 이돈삼

   

중앙공원에 세워져 있는 세마공적비.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안느와 마가렛, 마리아 등 3명에 대한 고마움이 새겨져 있다. ⓒ 이돈삼

 
공원에 비석이 몇 기 세워져 있다. '보리피리'가 새겨진 바위 옆에 소록도병원 개원 40주년 기념비가 있다. 당시 폭압을 일삼다가 한센인 이춘상에게 죽임을 당한 스오 원장의 동상이 있던 자리다. 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표현한 구라탑(救癩塔)도 있다. 나병을 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념비와 구라탑 사이에 공적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이른바 '세마비', '세마공적비'다. 소록도에서 사랑으로 한센인을 보살핀 오스트리아 출신 간호사에 대한 고마움을 새긴 비석이다. 마리안느(85)와 마가렛(84) 그리고 또 한 명 마리아를 더해 3명의 M(마)이라고, 세마비로 이름 붙여져 있다.
  

소록도 사택에 남아있는 마리안느의 옛 사진. 마리안느는 1962년부터 43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며 자원봉사자로 살았다. ⓒ 이돈삼

   

소록도 사택의 방에 남아있는 마가렛의 옛 사진. 마가렛은 1966년부터 39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며 자원봉사를 했다. ⓒ 이돈삼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1962년과 66년 20대의 나이에 오스트리아의 다미안재단에서 파견돼 왔다. 이후 40여 년 동안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돌본 간호사이면서 자원봉사자로 살았다.


환자들을 대하는 그녀들의 태도가 남달랐다. 모두가 꺼려하던, 의사와 간호사들까지도 멀찌감치 앉아서 환자들한테 자신의 상처를 직접 찔러보라고 하면서 진료를 하던 시절이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위생장갑도 끼지 않은 채 환자의 상처를 맨손으로 만졌다. 상처 부위의 냄새를 맡고, 피고름을 짜냈다.

그들은 일상에서도 한센인과 한 가족으로 지냈다. 함께 눈물을 흘리고, 밥을 같이 먹었다. 한센인들이 낳은 아이들의 부모 역할을 대신 해줬다. 환자들을 집으로 불러 우유와 빵을 만들어주고, 취향에 맞춰 음악도 틀어줬다. 오스트리아에서 들여온 비싼 치료약을 나눠주기도 했다. 한센인들의 생활비까지도 보태줬다. 자신들한테는 한없이 검소했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었지만, 한센인들한테는 끝없는 사랑을 베풀며 응원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룩에서 간호학교를 졸업한 간호사였다. 그들의 사랑과 희생을 가까이서 지켜본 한센인들이 언제부턴가 '수녀님'이라 부르면서, 우리에게도 수녀로 알려졌다. 20대 꽃다운 나이에 소록도에 와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40여 년 동안 한센인을 돌보면서도 대한민국에서 월급 한 푼 받지 않은 자원봉사자였다.
 

소록도 중앙공원에 세워져 있는 구라탑. 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아래에 '한센병은 낫는다'는 글귀가 보인다. ⓒ 이돈삼

   

지난 2005년 소록도에서 홀연히 떠나 자신들의 고향 오스트리아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마가렛(왼쪽)과 마리안느(오른쪽). 지난 9월의 모습이다. ⓒ 이돈삼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죽어서도 소록도에 묻히고 싶어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쇠약해지자 생각이 바뀌었다. '이제 도움을 주기 힘들겠다, 외려 소록도 사람들한테 부담만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홀연히 편지 한 장만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소록도에 올 때 들고 왔던 가방 하나만 들고서. 편지의 내용도 감동이었다. 감사, 감사 모든 게 감사였다.

'당신에게 많은 사랑과 신뢰를 받아서 하늘만큼 감사하다. 부족한 외국인이었는데, 큰사랑과 존경을 받아서 대단히 감사하다. 같이 지내면서 부족한 탓에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 미안하고 용서를 빈다. 소록도사람들한테 감사하는 마음 크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노벨평화상추천위원회가 구성돼 100만 명 추천 서명운동과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추천위원회는 내년에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추천할 예정이다. 내년은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나이팅게일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살았던 소록도의 사택. 지난 2005년 그녀들이 떠난 당시의 모습 그대로 직원거주지역에 보존되고 있다. ⓒ 이돈삼

   

소록도 사택의 마가렛 방. 자신들에게 한없이 검소했던 그녀의 모습이 방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이돈삼

 
소록도에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택이 직원거주지역에, 생활용품은 마리안느·마가렛 연수원에 보존돼 있다. 사택은 전형적인 빨간색 벽돌집이다. 그들이 떠난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그들이 생활했던 방도, 한센인들에게 음악을 들려줬던 카세트테이프도 그 자리에 있다. 아무것도 없이 검소하게 살았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두 천사는 지금 떠나고 없지만, 그들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다. 소록도에서 만나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흔적이고, 그들이 우리한테 남기고 간 귀한 선물이다.
  

소록도 사람들의 자치기구가 들어서 있는 빨간벽돌의 건물. 소록도는 한국근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 이돈삼

   

검시실 안의 한센인 사체 해부실. 한센인들이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 이돈삼

 
'파란 눈의 천사'들이 살았던 소록도는 한국근현대사에서 가슴 아픈 곳 가운데 한 곳이다. 1916년 일제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섬에 격리했던 한센인 수용소였다. 치료는커녕 건물을 짓고, 도로를 넓히고, 공원을 만드는 일에 강제 동원해 노동력을 착취했다.

뿐만 아니다. 한센인들에 대한 고문과 불임시술, 생체실험 등 인권유린도 무차별하게 자행됐다. 한센인들에게는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 오죽하면 세 번 죽는다고 했다. 한센병에 걸려서 죽고, 죽은 뒤에 강제 해부돼서 또 죽고, 화장을 당해서 한 번 더 죽었다.

소록도에는 한센인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생각만으로도 절로 숙연해지는 섬이다. 소록도에 가면 가슴 먹먹해진다고, 방문을 꺼리기도 한다. '소록도에서 참 행복했다'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흔적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소록도와 한센인에 대한 편견을 희석시키면 어떨까.
  

고흥 녹동과 소록도를 연결해주는 소록대교. 10여 년 전 소록대교가 개통되면서 소록도를 찾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마리안느 #한센인 #소록도 #소록도천사 #마가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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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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