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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상태에서 외신기자에 환호한 광주민중항쟁 시민군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30회] 한국 언론사에서 광주항쟁 기간은 가장 낯부끄러운 시기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등록 2019.10.23 18:37수정 2019.10.2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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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당시 정규 언론들은 광주 시민들을‘폭도'로 매도했다. 신군부의 삼엄한 검열 하에 어느 언론에서도 진실을 접할 수 없었다. ⓒ 5.18 기록관

해방 후 한국 언론사에서 광주항쟁 10일 동안과 그 이후는 가장 낯부끄러운 시기로 기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간 광주KBS와 광주MBC가 시민들에 의해 불타고, 지역과 전국의 언론(인)이 저주와 불신을 받게 되었다. 전두환 일당의 언론통제 조처와 계엄령이라는 비상사태라고 핑계 삼을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백주에 다수의 국민이 계엄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그 대신 외신들이 특파원을 광주에 파견하여 신속히 보도했다.
외지(外紙)들은 계엄사 검열로 대부분 가위질이나 먹칠을 당했지만, 그런 속에서도 독자들은 전후 문맥을 통해 내용을 헤아릴 수 있었다.

국내 신문은 5월 21일에야 처음으로 "지난 18일 광주일원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아직 수습되지 않고 있다"는 뜬구름 잡는 식의, 계엄사가 발표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그 대신 김대중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라고 해서 "학원사태의 치밀한 배후 조종자"라고 보도했다.

학원사태와 광주사태의 책임을 김대중에게 되집어 씌운 것이다. 이같은 발표는 광주시민들의 분기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시민들은 시위에서 "김대중을 석방하라!"고 더욱 거세게 외쳤다.

『뉴욕타임스』 서울주재 기자로 5ㆍ18 현장을 취재했던 심재훈의 기록이다. 그가 어렵게 광주에 도착했을 때 한 시민이 그를 소개해주었다.

"광주 시민 여러분, 여기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프랑스 르몽드지 기자가 광주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드디어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자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도로변의 군중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우리를 환영했다. 우리는 마치 개선장군 같은 환영을 받았다. 그들에게 우리가 구세주인 것처럼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광주는 무질서와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여자ㆍ노약자ㆍ어린이 가리지 않고 김밥과 각종 과일 등 음식물을 차에다 올려주거나 양동이로 물을 길러 시민군들에게 제공했다.

광주시민들에게서 느낀 첫 인상은 폭동(Violence)이 아니라 봉기(Insurrection)였다. 나의 판단은 광주시내를 여기저기 돌아보면서 더욱 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들이 왜 우리를 구세주처럼 환영하는 지 이유도 알게 됐다.

그들의 봉기는 철저히 외부 세계와 단절돼 있었다. 서울 등 외부세계는 그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의 실상을 전혀 알지 못했다. 우리의 등장이야말로 외부 세계에 광주의 실상을 알릴 수 있는 통로였다. (주석 7)

 

거리에 나선 광주시민들 ⓒ 5.18 기념재단

 
돌멩이와 화염병 밖에 없는 시민ㆍ학생들이 공수부대의 만행에 대결하는 길은 다중의 힘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은밀히 제작된 유인물과 벽보가 5월 21일 시내 각지에 살포되거나 부착되었다. 그나마 항쟁과 살육의 소식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었으며,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방법이었다.

'전남 민주인' 명의로 살포된 〈전남민주회보〉는 다음과 같다.

전남 민주회보

 아! 슬프다.
 오백만 전남도민은 무얼하고 있느냐?
 밤새 내렸던 하늘의 서러운 빗물도 피바다를 이룬 우리의 민주, 자유의 뜨거운 피를 씻어내지 않았드냐!

 민주인사들아!
 자유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나고 피를 먹고 열매를 맺는단다.
 그도 뜨겁고 힘찬 젊음만의 피를 말이다.…

사상자 및 부상자 : 5월 18일 0시를 기해서 현재까지 사상자 600여 명에 이르고 부상자는 수천 명에 달한다.

주요 참혹상 : 어떤 임산부를 칼로 찔러 태아까지 튀어 나오는 만행을 저질렀다.
 ○○○에서는 5세 어린애 2명을 개머리판으로 골통을 때려 부셨다.

공용터미널에서는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 거리에 널려 놓아 시민의 분노를 샀다. 양동 복개상가 다리 밑에 여고생의 시체 27구가 처참하게 내버려져 있었다.

○○○에서는 어떤 여교사를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옷을 벗겨 난도질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시체를 거리에 방치해 두거나 쓰레기차에 실어 함부로 처리해 그들의 잔악성과 잔인무도한 행동을 재확인시켰다.

연행자에 대한 처우 : 수많은 학생과 민주시민을 거의 반 실신상태로 연행하여 돼지우리 같은 곳에 수용하여 인간 이하의 처우를 했다.

전남 민주인의 방향 : 애국 시민이여! 애국 근로자여! 애국 농민이여!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지역감정에 사로잡혀 우리의 목표를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무분별한 파괴가 아니라,  민주 정신에 입각한 자율적 행동임을 깊이 명심하고 민주화투쟁에 적극 나섭시다. (주석 8)


주석
7> 한국기자협회 외 엮음, 『5ㆍ18특파원리포트』, 66쪽, 풀빛, 1997.
8> 『5ㆍ18 광주 민주화운동자료총서(2)』, 3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5ㆍ18광주혈사 #5.18광주민주화운동40주년 #전남민주회보 #심재훈 #뉴욕타임스_심재훈_서울주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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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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