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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에게 비밀을 속삭인 아이, 그 순간 기적이 왔다

[리뷰]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그려낸 아트버스터 <텔 잇 투 더 비즈>

19.10.19 18:14최종업데이트19.10.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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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잇 투 더 비즈> 포스터 ⓒ (주) 라이크 콘텐츠

 
한때 유럽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는 '인간동물원'이란 게 있었다. 사회 진화론과 인종차별, 식민지주의에 기인해 아프리카 원주민들을 마치 동물처럼 관람했던 이 역사의 마지막은 1958년 벨기에에서였다. 지금으로부터 겨우 61년 전이다. 사회의 진보는 기술과 과학의 발전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그 사회가 지닌 모습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에 기인한다. 이 변화는 차별과 억압에서 벗어나 사랑으로 나아가는 데에서 시작된다.
 
피오나 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텔 잇 투 더 비즈>는 퀴어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가 바라보는 관점은 두 주인공의 금지된 사랑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1952년 스코틀랜드의 작은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에 대해 서술한다. 이 시골 마을 사람들은 서로 가깝게 지내지만, 그만큼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소문 또한 빠르게 퍼져 나간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라디아는 집을 나간 남편 로버트 때문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남편의 부재로 인해 라디아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마을에 퍼지고, 이로 인해 아들 찰리마저 아이들에게 놀림과 폭행을 당한다. 동네 아이들과 싸운 찰리는 상처를 입고 고모를 따라 동네에 새로 온 의사 진으로부터 진료를 받는다. 취미로 양봉을 하는 진과 벌에 관심이 많은 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텔 잇 투 더 비즈> 스틸컷 ⓒ (주) 라이크 콘텐츠

 
진은 찰리에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벌에게 말하는 거라고 알려준다. 찰리는 자신이 겪고 있는 불행과 어머니의 고통을 벌에게 말한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린 라디아에게 기적이 온 건 그 순간이다. 진이 그들 모자에게 자신의 집에 머물어도 좋다고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이 만남은 예기치 못한 위험으로 이어진다.
 
오래 전 진이 이 마을을 떠난 이유는 그녀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부담스러웠던 아버지는 그녀를 도시로 보낸다. 아버지가 죽은 후 진은 이 편견과 맞서기 위해 다시 마을을 찾아온다. 그리고 라디아는 그런 진의 마음을 빼앗는다. 두 사람의 사랑의 바탕에는 동정과 애정이 함께 서려있다. 진은 아들과 홀로 살아가야만 하는 연약한 라디아에게 동정심을 느낀다. 동시에 춤을 사랑하고 항상 흥이 넘치는 그녀의 모습에 애정을 느낀다.
 
라디아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성정체성 때문에 외롭게 살아와야 했던 진에게 동정을 느낀다. 이 감정에 애정이 함께 자리 잡은 이유는 타인을 향한 진의 따스한 마음 때문이다. 진은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던 마을 사람들을 위해 병원을 개업했고 그들을 정성스레 돌본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당시 사회에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고 이 사랑 때문에 두 사람과 찰리는 갈등을 겪게 된다.
  

<텔 잇 투 더 비즈> 스틸컷 ⓒ (주) 라이크 콘텐츠

 
이 작품은 사회의 다양한 차별을 통해 더 넓은 단위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작품의 큰 줄기는 라디아와 진의 동성간 사랑, 그리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당시 사회의 차별된 시선을 그리고 있지만, 다른 한 쪽에선 또 다른 차별을 그린다. 바로 어린 아이라는 이유로 어른들, 특히 아버지 로버트에게 무시 당하는 찰리의 모습을 통해서다.  자신을 보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몰아치는 로버트에게 찰리는 "어머니는 나를 사랑하고 존중해 준다"는 말로 응수한다. 더불어 임신한 딸의 낙태 수술을 강제로 진행하려는 한 어머니의 에피소드를 통해 개인의 가치와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행복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사랑에는 차별도 억압도 존재해선 안 된다. 남을 차별하고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찰리와 벌의 관계는 이런 사랑에서 비롯된다. 찰리는 곤충인 벌을 사랑하고 마치 친구처럼 아낀다. 이런 찰리의 마음은 사회의 질서와 관습을 이유로 남을 차별하고 선택을 강압하는 어른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며 진정한 사랑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든다.
 
<텔 잇 투 더 비즈>는 시대적 편견과 차별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두 여인의 사랑에 담긴 감성적인 아름다움을 판타지의 형태로 표현한다. <캐롤>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말로는 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적인 아름다움을 분위기로 표현했다면 이 영화는 장면적인 아름다움과 어린아이의 순수함, 상상력을 통해 판타지적인 매력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그려낸 이 영화는 올해 극장가를 감성으로 물들일 아트버스터라 할 수 있다. 

10월 31일 개봉.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텔 잇 투 더 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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