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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에게 '가족 같은 마음' 강조하는 회사의 본심

[쓸고 닦으면 보이는 세상 10] 나 한 사람 양보한다고 다 편해지는 건 아니다

등록 2019.11.04 10:28수정 2019.11.04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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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미화원의 일과에서 휴식시간에 나는 미화원 언니들의 수다에 자연스럽게 섞여들지는 못한다. 청소 일을 하기 전까지 60~70대 여성 노동자들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그런지 세대 차이를 느낀다. 그래서 주로 듣기만 한다. 매일 매일 주고받는 정보, 소문, 가십, 불평, 자랑, 개인사와 가족사들을 듣다보니, 안 지는 얼마 안 되었어도 그 분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모습을 웬만큼 파악하게 되었다.


어떤 분은 남편이 장남도 아닌데 결혼해서부터 이제껏 시어머니를 모시며 여름휴가 한 번 가본 적 없이 살아왔고, 어떤 분은 곱게 자라서 잘 살 줄만 알았는데 남편이 거듭 사업에 실패하고 병까지 얻어 대신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단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내 위에 군림하며 반찬 투정에 온갖 잔소리를 해대는 걸 참아내고 있다는 이야기. 또 어떤 분은 식당일에서 버스기사까지 안 해 본 일 없이 억척스럽게 번 돈을 남편과 자식들, 며느리와 손주들에게 끊임없이 퍼주면서 살고 있다.

사실 같은 연령대의 우리나라 여성들의 삶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짐작된다. 시부모를 견디고 남편을 참고 자식들을 위해 자기 몫을 희생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래서 자주 듣는 "나 한 사람 양보하면 모두가 편해"라는 이 말도 여기 언니들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크고 작은 갈등을 잠재우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의견과 생각, 주장과 욕구를 죽이면서 며느리, 아내, 어머니를 몸으로 살아낸 삶에서 결정체로 남은 지혜일 것이다. 그래서 비록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지라도 그 인내만큼은 존경스럽다.

"나 한 사람 양보하면 편해"라는 삶의 지혜가 일터에서 적용될 때
 

회사는 갈등의 성격이 어떠하든 일단 문제가 생기는 일 자체를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는다. ⓒ Pixabay

 
그래서인지 미화원 언니들은 그 삶의 지혜를 직장 생활에도 적용한다. 부당한 지시가 내려와도, '에이, 그냥 우리가 양보하지, 뭐'라며 순순히 따른다. 미화반 내에 뭔가 불합리한 방식이 있어도 '나 한 사람 양보하면 모두가 편해'라는 생각으로 참는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로 효과가 있다. 누군가 그렇게 양보하고 참으면 갈등은 생기지 않는다.

갈등을 반기는 회사는 없다는 사실을 미화원 언니들은 잘 알고 있다. 관리자들은 종종 직원들에게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자고 당부한다. 가족 간의 관계에서는 원칙이나 이성적 판단보다는 혈연으로 맺어진 끈끈한 정이 작용한다. 직장은 결코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같은 마음'을 강조하는 건 제발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달라는 뜻인 것 같다.


회사는 갈등의 성격이 어떠하든 일단 문제가 생기는 일 자체를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는다. 직장 내의 어떤 불합리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모범적인 사원으로 보지 않으며 오히려 말썽분자로 여긴다.

최근 우리 미화반 내에서도 반복된 갈등을 참다못한 어떤 분이 그 일을 윗선에 보고했다가, 혼자만 경위서를 쓰게 된 일이 있었다. 사실 문제의 원인은 각자의 청소 구역과 책임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일을 바꾸어 지시하고 강요해왔던 다른 사람에게 있었다. 하지만 관리자들은 갈등의 근본적 원인과 해결에는 관심이 없었고,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려 보고한 사람만을 문책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수많은 직장에서 문제와 갈등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개인들이 자신의 욕구와 의견과 생각을 포기하고 있을까 상상해 본다. 나의 한 친구는 과거에 방송국에서 일하며 상사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을 때 화장실 안쪽 문에 여직원회에서 붙인 스티커를 보게 되었다. 직장 안에서 겪는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고민 상담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친구는 자신이 거기 적힌 번호로 결코 전화할 수 없을 것임을 잘 알기에 그 친절한 글귀의 허망함에 가슴 아파하며 울었다고 했다.

눈물과 아픔을 삼켜가며 우리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적응해 나간다. 사회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란 나의 의견과 생각을 당당히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원만하게 어울리며 튀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웠기에 그 틀에 나를 맞추어 간다. 나의 가치관이나 양심, 나의 이성으로서 용납이 안 되는 일을 받아들여야 할 때는 '어떻게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겠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설득한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양보하고 참는 법을 터득하게 되어서 불화와 갈등의 위기를 잘 넘기게 되면 스스로 '성숙해졌다'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 미화반에서 청소 경력이 가장 오래된 분은 "일할 때는 오장육부를 집에 두고 와야 한다"라고 말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일할 때는 오장육부를 집에 두고" 오지 않아도 된다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양보가 높은 경지의 덕목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직장과 사회에서는 얘기가 좀 다르다. 노동자로서 내가 마땅히 가질 수 있는 어떤 권리를 양보할 때, 그것은 한 개인의 양보가 아니라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의 양보가 되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문제를 개선하고 싶어도 침묵하고, 공평하게 대우받고 싶지만 양보해버리고, 개인적 취향 같은 건 아예 포기하고, 내가 맡은 일에 대한 내 생각과 판단이 없는 척 한다면, 시끄러울 일 없고 갈등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누군가 양보하고 포기할 때마다 직장은 더욱 폐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으로 굳어질 것이고, 그 속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조금씩 더 불행해질 것이다.

개인의 불만과 이견을 '양보'라는 미덕으로 눌러서 유지되는 평화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표면적인 평화 아래서 불안은 자라난다. 사람은 자기 욕구가 계속해서 좌절되고 억압되면 엉뚱한 방향으로 타인을 억압하고 학대하게 된다. 

물론 참고 싶어서 참는 사람은 없다. 참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보편적인 억압은 쉽게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견고하다. 그 단단한 틀을 깨려는 사람은 해고와 퇴사 혹은 따돌림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 미화반의 문제를 제기했다가 경위서를 쓰게 된 분은 자신이 얼마나 더 일할 수 있을까 걱정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그 분은 따돌림 때문에 스스로 사표를 낼 수도 있고, 가까스로 버틴다 해도 내년에 고용 승계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불합리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작은 용기는 점점 자라나 언젠가는 의미 있는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 한 사람 양보하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한 사람이 아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나'일 수 있다.
#미화원 #청소원 #양보 #갈등 #사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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