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간단하게 했다고 공무원 '잡는' 정치인들

등록 2019.10.21 12:26수정 2019.10.2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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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시만평, 르봉 ⓒ 은평시민신문



'시민이 주인이다' 모든 정치인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어떤 정치인도 '시민은 들러리고 내가 주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상식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정치인은 없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떤 행사에 가도 시민보다는 정치인이 주인공이다. 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정치인들의 인사는 끝도 없이 이어진다. 정치인들의 인사가 끝날 때쯤 본행사가 시작된다. 그리고 어느새 행사 중간도 못 채우고 정치인들은 바쁘다며 사라진다. 시민들은 바쁘지 않은가?

실제 있었던 이야기다. 한 지역행사에서 정치인들의 인사를 생략하고 간단한 소개로 대처하기로 하고 이런 사실을 정치인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행사에 참여한 정치인 A는 마이크를 요구했고 주최 측은 원칙대로 간단한 소개로 마무리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마이크를 넘겨받지 못한 정치인 A는 지역행사를 담당했던 공무원을 쥐 잡듯이 잡았다. 정치인에게 대들어봐야 남는 장사를 하기 어려운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또 다른 지역행사 장면. 정치인 B가 정치인 C를 나무란다. 정치인 B가 무대에 올라서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해야 하는데 정치인 C가 그 장면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치인 B는 정치인 C에게 '이럴 거면 부르지 마라'고 싸늘하게 말한다. 정치인 C는 정치인 B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행사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닦달한다. 

그리고 또 다른 지역행사. 정치인과 지역인사들의 인사시간을 줄이겠다고 화면에 이름을 띄우는 방식을 택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이름이 끝없이 이어진다. 현장에 참석하지도 않은 이들의 이름도 이어진다. 저런 소개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정치인 A,B,C의 모습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본인을 제대로 인사시키지 않았다고 화를 냈다는 소식은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 서로 간의 권력관계에 의해 챙겨주고 밀어주고 적당히 넘어가주는 건 아무렇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지역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문구 중 하나가 '시민이 주인'이라는 말이다. 더 튼튼한 민주주의, 내용이 꽉 찬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겠다며 여기저기서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시민이 주도한다, 시민이 만든다, 제도로 보장한다, 자치를 실현한다'는 문구가 난무한다. 

하지만 시민 주도, 참여, 민관협력 등의 말로 꽉 찬 공간에서도 관행이라는 이름의 정치인 인사는 이어진다. 두 시간 행사에 길면 한 시간, 짧으면 삼십 분 동안 인사가 이어진다. 모인 김에 정책을 홍보하고 모인 김에 인사를 늘어놓는다. 그러는 동안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의 하품이 이어진다.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꺼낸다. 시민이 주인이라던 행사는 점점 시민을 소외시킨다. 

은평구는 지난 1월 행사의전을 간소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과도한 내빈소개와 축사인원을 최소화하하고 과도한 의전으로 행사 본연의 목적이 퇴색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의전 간소화가 계획대로 되고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 

의전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의전이 행사의 취지에 맞게 합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과한 의전으로 행사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행사의 앞시간과 앞자리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정치인의 의전이 더 이상 시민을 소외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정치인의전 #시민소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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