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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지기가 스스로 털어놓은 민낯

[마음을 읽는 책] 강민선 지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등록 2019.10.21 15:57수정 2019.10.21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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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 임시제본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강민선
 임시제본소
 2018.10.26.

 
너무 기본적인 사항이라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은 것 같은데, 말해 주지 않은 것을 내가 어떻게 알고 하나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렇게 기본적인 건 말해 주지 않아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말을 해 줘야 아느냐 말하지 않아도 아느냐가 그 직원의 역량이었고 …… (40∼41쪽)

나라 곳곳에서 도서관을 꾸리는 이웃님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틀림없이 '도서관'을 꾸리지만, 도서관법에 따라 '작은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써야 한다는군요. 도서관법으로 따지면 '사서자격증'을 갖추고 꽤 널찍한 자리를 따로 꾸릴 수 있으면서 '도서관위원회'를 열기도 해야 비로소 '도서관'이란 이름을 쓸 수 있다고 못박습니다.

마을에서 조그맣게 꾸려도 도서관이요, 나라에서 커다랗게 이끌어도 도서관이겠지요. 그런데 왜 법은 굳이 '도서관·작은도서관'을 갈라야 할까요? 작은도서관일 적에는 사서자격증을 안 갖추어도 '봐준다'고 하는 법인데, 왜 사서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도서관을 열거나 꾸릴 수 있어야 할까요?
 
나는 여태까지 그 아이에게 어떤 책을 골라서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 나는 내가 보내준 책을 얌전히 읽고 다음 책을 조용히 기다렸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서관 사서에게 아이의 부음을 전하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에게 너무 죄송했다. (52쪽)

밥집을 꾸리려 한다면 다른 얘기가 될 테지만, 글·책을 쓰거나 읽고 나누는 길에서는 틀에 가두지 않아도 되리라 느껴요. 문예창작학과를 나오지 않더라도 글이건 시이건 소설이건 수필이건 누구나 쓸 수 있어요.


대학교라든지 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오지 않더라도 책마을 일꾼이 되거나 책을 쓰는 길을 갈 수 있어요. 대학교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안 마쳤어도 새책집이건 헌책집이건 열어서 꾸릴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도서관만큼은 '대학교 졸업장 + 자격증'이라는 문턱을 세우려 할까요?

늦깎이로 사서자격증을 따서 사설기관이 꾸리는 공공도서관에서 일한 삶길을 찬찬히 옮겨 적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강민선, 임시제본소, 2018)를 읽었습니다.

글쓴이는 처음부터 도서관 사서가 될 생각이 있지는 않았다고 해요. 글쓰기란 길을 가고 싶었다는군요. 이러다가 어찌저찌 늦깎이로 사서자격증을 땄고, 이 자격증을 땄대서 사서가 되는 길은 매우 좁다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사서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도서관 책지기라는 자리를 맡아서 일을 하려고 보니, 이 일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알려주거나 들려주는 분이 없었다고 해요. '자격증을 따서 들어왔'으니 알아서 하리라 여기고, 이밖에 포토샵이나 여러 풀그림을 다룰 줄 알기를 바랐다더군요.

손님으로 드나들던 도서관에서는 까맣게 모르던 일이었답니다. 일꾼이란 자리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박이로 지내는 도서관으로 바뀌니, 어쩌면 이렇게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가 많은지 놀랐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알퐁스 도데가 책이름인지 사람이름인지를 묻는 이용자를 순간 내려다보았던 것이다. (57쪽)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동네 책방에서 정가에 책을 사는 것이다. (139쪽)
 

우리는 어떤 도서관을 가꾸며 누리면 좋을까요? ⓒ 최종규/숲노래

 
도서관이기에 겪거나 누릴 수 있는 기쁜 보람이 무척 크다고 해요. 이에 못지않게 도서관에서 왜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할까 싶은 아리송한 일거리가 참으로 크다고 합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한 자락이 우리네 도서관 민낯을 모두 밝히지는 않습니다. 또 글쓴이 스스로 '너무 세다' 싶은 대목은 되도록 잘라냈다고 이야기해요.


아무래도 아직 이 나라 책살림이 덜 아름답기에 갖가지 안타까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제 겨우 싹트려고 하는 책살림이니, 이런 잘못이나 저런 구멍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습니다.

언젠가 도서관 책지기를 뵈던 날 그분들이 '수서(收書)'라고 하는, 사전에도 없는 일본 한자말을 쓰시기에 그 말이 무엇을 가리키느냐고 여쭈었더니 그분들도 제대로 풀어내어 알려주지 못하시더군요. 그러나 가만히 듣고 보니, 또 도서관을 다룬 여러 가지 책을 찾아서 읽고 보니, 일본 한자말 '수서'는 '책들임'을 나타내더군요.

곰곰이 보면 '도서관'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쓸 수 있습니다. 사서자격증을 따서 일하는 분으로서는 그냥 익숙한 이름일 테지만, 처음으로 책을 만나려고 나들이를 가는 어린이한테는 참으로 낯선 이름이거든요.

책을 아름드리로 갖춘 그곳, 숲에서 온 종이로 지은 책을 고루 갖추어 어느 곳에서나 푸르며 싱그러운 마음이 되도록 푸르게 돌보려는 그곳, 이런 그곳이라면 '책 + 숲' 또는 '책 + 숲 + 집'이란 얼개로 '책숲'이나 '책숲집'이란 이름을 새로 지어서 쓸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책으로 이룬 숲이요, 책으로 이룬 숲이면서 포근한 집 같은 곳이라면 말이지요.
내부고발이 있고 나서 지금까지 초과한 근무수당을 지급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고 하는데 많은 산하기관들 중 일부만 돌려받았을 뿐 도서관 직원들은 받지 못했다. 고발한 사람은 일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36쪽)

글쓴이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란 책을 써내어 스스로 펴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고서 얼마쯤 뒤 도서관 사서란 자리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이 책 때문에 그만두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봅니다.

책숲에서 책지기 노릇을 맡은 분들이 싱그러운 숲바람 같은 책을 사람들한테 잇는 그곳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이야기는 '서로서로 알려주는 사랑스러운 숲살림'으로 거듭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뒷이야기가 스러질 수 있도록 아름다운 마을살림으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글쓴이 누리집(https://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마음을 읽는 책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강민선 #도서관 #책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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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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