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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 갑론을박... 진짜 가혹한 것은

[추모] 설리를 둘러싼 소문의 굴레,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19.10.21 18:35최종업데이트19.10.21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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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리 ⓒ SM엔터테인먼트

   
"다음에 나같은 사람이 또 나더라도 할 수 있는 대로 학대해보거라.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근대 최초의 여성작가 김명순의 시 '유언'의 일부다. 당대 여성문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김명순 또한 '소문'으로 인해 비극적 결말을 맞았다. '기생의 딸'이라는 편견이 그를 평생 따라다녔고, 성폭력 피해 경험은 '문란한 여성'이라는 소문으로 돌아왔다. 동시대 남성 문인 김동인은 김명순의 필명인 '탄실'을 연상케 하는 <김연실전>이라는 소설을 써 그 소문을 실체화했다.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은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는 사회에서 토해내듯 쓴 시가 바로 '유언'이다.
 
지난 14일 저녁, 연예인 설리(본명 최진리)의 사망 소식이 알려졌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의 '클릭 수' 장사도 시작되었다. 일부 기자들은 갑작스럽게 고인의 생전 논란을 보도하거나 자극적 사진을 기사에 실었다. 비밀리에 장례 절차를 진행하고 싶다는 유가족들의 바람을 무시하듯 장례식장 위치를 공개하는 기자도 있었다. 마지막까지 세상은, 그에게 너무 가혹했다.
 
네티즌 사이에선 또 다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같은 질문에 제각각 다르게 대답했다. 과연 '누가' 설리를 죽였는가. 혹자는 그를 놓고 성희롱을 일삼던 사람들 때문이라 답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설리를 비난하던 사람들 때문이라 말했다. 그런데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16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한 이후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아니 지금까지 설리는 너무나도 많은 논란들에 시달려왔다. 수많은 논란들이 정말 그녀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일까.
 
생각을 달리 해야 한다. 최진리를 죽인 범인은 없다. 죄인만 있을 뿐이다.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 인권을 퇴보시키는 주범'이라고 말하던 일부 사람들이 이제는 그녀를 '여성 해방에 앞장섰던 운동가'라 말한다. 아무렇지 않게 그를 성적 대상화하던 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설리를 죽였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죄인은 되고 싶지 않은 탓이리라. 그녀의 이름을 딴 법을 제정하겠다는 국회의원의 말에도, 그녀를 기억한다는 수많은 이들의 말에도 마음이 무거운 이유를 우리, 이제는 인정하자. 그녀를 아는 사람 중 그녀의 죽음에 책임 없는 사람이 없다.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이런 논의들이 왜 그가 살아있을 때는 이루어지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이 안타깝고 슬픈 일들은 왜 벌어지고 있는지. 아이돌 문화의 잘못인지, 어떤 의견이든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이 시장이 문제인건지, 그렇다면 아예 이 산업이 없어져야 하는 건지. 왜 우리는 서로에게 조금만 더 관대할 수는 없었는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논쟁들이 안타까운 또 다른 이유는, 다시는 그녀의 죽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다." 과거 우리 사회가 죽인 또 다른 사람, 김명순이 남긴 말이다. 안타까운 일들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할지도 모른다. 이 자유로운 사람을 그냥 그대로 바라보는 것. 뭐가 옳으니 그르니 하는 잣대를 조금은 거두는 것. 이제는 그 이름을 가리고 있는 수많은 소문을 지워내고, 인간 최진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가 SNS에 남긴 시인 이장근의 시 '왜 몰라'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더러운 물에서 연꽃이 피었다고 연꽃만 칭찬하지만 연꽃을 피울 만큼 내가 더럽지 않다는 걸 왜 몰라. 내가 연꽃이 사는 집이라는 걸 왜 몰라."
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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