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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의 즉위와 아베의 '계획'... 일왕의 운명은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헌법9조 개정 노리는 일 우익... 일왕 지위 급변 가능성도

등록 2019.10.22 11:29수정 2019.10.2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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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德仁) 일왕이 22일 오전 도쿄의 왕궁 규추산덴(宮中三殿) 중 가시코도코로(賢所)에서 즉위 예식을 끝낸 뒤 걸어가고 있다. 가시코도코로는 일본 왕위의 상징인 삼종신기(거울·검·굽은구슬) 중 야타노카가미(八咫鏡)라는 거울을 모셔둔 곳이다. ⓒ 아사히신문 대표 촬영=연합뉴스

 
'레이와'(令和) 연호를 쓰는 나루히토 일왕(천황)의 즉위식이 오늘(22일) 열린다. 지난 4월 30일 퇴위한 아버지 아키히토를 이어 5월 1일 왕위에 오른 그가 즉위 사실을 국내외에 공식적으로 알리는 것.

실권 없는 왕족은 일반 귀족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왕세자(황태자) 시절의 나루히토 역시 그랬다. 1960년에 출생한 그는 낭만적인 귀족처럼 살아왔다. 바이올린과 함께 비올라를 잘 연주하는 그는 44세 때인 2004년 도쿄에서 열린 '한일 우호 특별기념 음악회'에서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비올라를 연주했다. 2007년에는 도쿄에서 개최된 '한중일 합동 실내악 콘서트'에서 한국과 중국의 음악인들과 협연했다. 

또 지극히 가정적이다. 7년에 걸쳐 구애했던 평민 외교관 마사코(1963년생)에게 "전력을 다해 당신을 지키겠습니다"라는 유명한 프러포즈로 1993년(33세)에 혼인했다. 그는 프러포즈 때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했다. 마사코 세자빈과 마찰을 빚는 궁내청(왕실 사무처)을 겨냥해 지난 2004년 "마사코의 경력이나 이에 기초한 인격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는 폭탄 발언을 해서 배우자를 보호하려 한 적도 있다.

안온하게 살았던 나루히토
 

나루히토 일왕이 마사코 왕후와 함께 지난 9월 24일 고령자센터를 방문하는 모습. ⓒ 일본 궁내청 홈페이지

  
이렇게 낭만적이고 가정적인 그이지만, 앞으로는 상당히 거친 인생 역정 속으로 빨려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왕 자리에 올랐기 때문만은 아니다. 객관적 상황이 그를 그런 방향으로 끌어가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등장한 2001년 이후, 일본은 급격한 우경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제1기 아베 신조 내각이 출범한 2006년부터는 더욱 그렇다.

아베 신조는 전쟁을 금지한 헌법 제9조를 개정해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려고 한다. 그는 1964년에 이어 두 번째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을 기해 그 목표를 성취하고자 한다. 우익이 득세하는 지금 정국 상황을 볼 때, 꼭 2020년이 아니라도 이 목표는 계속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한 정치 불안정은 국제정치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나루히토와 왕실의 운명에도 파급력을 끼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우익이 바꾸고자 하는 국가체제가 이른바 천황제의 운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아베의 '군사대국화'가 일본 왕실에 끼치는 영향

패망 이듬해인 1946년 제정된 현행 일본국헌법 전문(서문)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한다고 명시해 놨다. 그러면서도 헌법 제1조에서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라고 규정했다. 주권재민을 선언하면서도 기존 천황제를 존치시킨 것이다.

그리고 제3조는 "천황의 국정에 관한 모든 행위는 내각의 조언과 승인을 필요로 하며 내각이 그 책임을 진다"라고 함으로써 정부 형태를 내각책임제로 규정했다. 과거와 달리 일왕은 국가주권도 없고 행정 실권도 없다는 점에서, 현행 일왕제도는 헌법 제1조의 문구를 따서 '상징 천황제'로 불린다.

이 같은 일왕의 지위는 패망 이전의 대일본제국헌법 때와 현저히 다르다. 제국헌법 제1조에서는 통치권이 일왕에게 있다고 선언했다. 제4조에서는 일왕이 국가원수로서 통치권을 총괄한다고 규정했다. 현행 헌법과 달리, 국민 주권이 인정되지도 않고 총리책임제가 인정되지도 않았다.

당시의 일왕은 여느 황제보다도 강력했다. 청일전쟁·러일전쟁·태평양전쟁을 지휘한 총사령부인 대본영은 총리의 명을 받지 않았다. 오로지 일왕의 명령만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일왕은 내각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군대를 운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일왕이 막강했다는 점에서, 패망 전의 일왕제는 '절대 천황제'로 불린다. 백운룡 계명대 국제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2007년 <동북아 문화연구> 제13집에 실린 '일본 천황제의 역사적 변모 과정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절대 천황제는 통치원리 자체가 국민의 주체적인 정치참여를 배제하고 천황에 대한 한결 같은 충성과 일체감을 요청하는 시스템"이었다면서 "천황제 내부에서는 입헌적 기구에 의한 민주 정치의 담보가 원래부터 예정되어 있지 않았다"라고 진단한다.

한국 역사에서도 증명되는 것처럼, 귀족 출신 신하들은 왕권이 강력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왕권이 세지면 신권(신하 권력)이나 귀족권이 약해지기 때문이다.

'절대 천황제'를 좋아하는 일본 우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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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사진은 지난 10월 1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간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그런데 패망 이전의 일본 지배층은 달랐다. 이들은 '절대 천황제'를 적극 지지했다. 외형상 일왕의 권력이 극대화된 것 같았지만, 일본 우익의 계산은 달랐다. 일왕만 자기 편으로 만들 수 있으면, 내각의 통제조차 받지 않고 군부를 장악하고 국가 전체를 통제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일본 우익은 그렇게 해 역대 최강의 국가권력을 구축했다. 일본 군국주의가 기승을 부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각은 대중이 투표하는 총선거의 영향을 받는다. 내각의 간섭을 받지 않고 군대를 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국민의 여론을 신경쓰지 않고 군대를 장악할 수 있음을 뜻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연합국인 중국·미국·영국은 1945년 7월 26일 포츠담선언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권유하고 향후의 일본문제 처리방침을 밝혔다. 뒤이어 미국은 8월 6일 히로시마와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떨어트렸다.

이런 긴박한 시기에 일본 지배층이 가장 염려한 것은 '천황제를 과연 유지할 수 있을까?'였다. 절대 천황제를 그 정도로 열렬히 좋아했던 것. 고토 야스시 전 리쓰메이칸대학 교수를 비롯한 7인이 함께 쓰고 이남희 원광대 교수가 번역한 <천황의 나라 일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의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당시 일본 지배층이 마지막까지 걱정했던 유일한 것은 국민생활과 안전의 확보가 아니라 포츠담선언 하에서 국체(천황주권)가 유지될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패망 당시의 지배층이 절대 천황제에 애착을 가진 것은 왕실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 아니었다. 패전하게 되더라도 천황제를 지켜야 그 위에 구축된 자신들의 기득권을 일정 정도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절대 천황제'를 지지하지 않았다. 일본여론조사연구소가 1945년 12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3/4 정도의 일본 국민들이 '상징 천황제'를 지지했다. 기존 체제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비교적 적었다.

일본의 운명을 쥐고 있던 미국 역시 '절대 천황제'를 싫어했다.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할 위험성이 있다는 이유 때문. 그러면서도 미국은 천황제를 폐지하지 않았다. 동북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팽창을 견제하려면, 일본의 기존 체제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상징 천황제를 담은 현행 헌법을 만들어냈다. 
  
59세로 왕위에 오르는 나루히토, 그가 마주할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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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德仁) 일왕이 22일 오전 8시9분께 거처인 도쿄 아카사카 고쇼(赤坂御所)를 나서 즉위식이 열리는 왕궁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우익이 현행 헌법을 바꾸고 군사대국화를 이루려 하는 것은 1945년 이후의 정치체제가 불만스럽기 때문이다. 상징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국가 시스템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패망 당시의 지배층이 그랬던 것처럼, 군사대국화를 꿈꾸는 지금의 일본 우익에게는 '절대 천황제'가 그리울 수밖에 없다. 유능하고 강력한 일왕이 등장해 자신들을 억누른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않다면 자신들이 '절대 천황제'를 이용해 무소불위의 국가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절대 천황제'가 존재한 1868~1945년 일본의 대외팽창이 역사상 최고의 정점에 올랐던 실제 사례가 있기 때문에, 우익은 '절대 천황제'에 대한 향수를 느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물론 아베 신조를 비롯한 일본 우익이 1945년 이전의 '절대 천황제'를 그대로 복원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다 득세할 경우에는, 적어도 지금의 '상징 천황제'에 어느 정도의 변경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패망 이전의 군국주의로 회귀하자면, 천황의 위상도 어느 정도 높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로 인한 풍파를 직접적으로 맞게 되는 곳은 다름아닌 일본 왕실이다. 그중에서도 나루히토 일왕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반 귀족처럼 안온하게 살아온 그가 정치적 풍파에 휩쓸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아베 신조가 시도하든, 그 후임이 시도하든, 헌법이 바뀌고 천황제가 영향을 받는 정치적 격동은 나루히토의 재임 중에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올해 59세인 나루히토의 신상에 사고가 생겨 동생인 후미히토 왕세자(황태자)의 지위가 변경된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나루히토의 재위 중에 그 모든 격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실권은 총리한테 있다 하더라도, 일왕의 지위와 직결되는 정치적 파동이 벌어진다면 나루히토로서는 편안한 삶을 보내기 힘들 수밖에 없다. 나루히토 시대의 연호 '레이와'가 갖고 있는 '질서, 평화, 조화'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이야기다. 배우자를 사랑하고 비올라를 사랑하는 그가 험난한 정치의 격랑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 나루히토의 즉위식은 그가 그런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커지는 일이라고 하겠다. 적어도 지금 정국 상황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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