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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 불법파견 판결받아도 개기면 된다는 선례 남겨"

김두현 변호사, 요금수납원 불법파견 판결의 의미 지적

등록 2019.10.24 09:56수정 2019.10.2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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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9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톨게이트 직접고용 시민사회공동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열어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의 직접고용과 자회사 정책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한국도로공사 불법파견 판결은 한마디로 도로공사 영업소 비정규직은 모두 불법파견 노동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민간기업도 아닌 공기업인 한국도로공사가 사법질서를 정면으로 무시하고 판결 취지를 왜곡하며 오히려 비정규직들을 떼쟁이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도로공사의 이번 대처는 우리나라 모든 민간기업에 '불법파견 판결을 받아도 개기면 된다'는 매우 잘못된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김두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고속도로 요금소(톨게이트) 수납원 전체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있는 한국도로공사에 대해 이같이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24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대강당에서 열리는 '하청노동자 권리찾기 토론회'에서 "한국도로공사 요금수납원 불법파견 판결의 의미"에 대해 발제한다.

대법원은 지난 8월 29일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을 불법파견이라 판결했다. 이는 요금수납원을 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대법원에서 승소한 요금수납원만 직접 고용하겠다고 했다. 이에 나머지 요금수납원들이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지붕(캐노피) 고공농성에 이어 지금은 김천 도로공사 본사 농성과 청와대 앞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비정규직은 모두 도로공사의 파견근로자에 해당한다"


김두현 변호사는 미리 낸 발제문을 통해 "노동관계에서의 계약은 원칙적으로 민법이 아닌 노동법에 따라 바라보아야 함이 당연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요금수납원에 대해 도로공사로부터 '상당한 업무지시'를 받은 것으로 봤다. 도로공사는 전국 영업소를 통일적으로 운영·관리할 필요성이 있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상호 유기적으로 업무를 수행했고, 도로공사의 업무 관련 매뉴얼 등은 비정규직들의 업무방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정규직 업무에 비정규직 업무에 대한 감독을 임무 중 하나로 정하고 있고, 하청업체 사장이 비정규직들에게 행한 업무지시는 도로공사의 결정 사항을 단순히 전달하거나 기존 업무방침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 대법원은 "비정규직들은 도로공사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같은 공간에서 업무를 수행했고, 비정규직들은 정규직과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수납업무와 체납차량 단속업무 등을 수행했다"고 봤다.

채용이나 교육, 근태 등에 대해, 대법원은 "업체는 도로공사가 결정한 과업인원에 따라 비정규직을 채용했고, 도로공사는 업체를 위해 영업소 노무관리 가이드를 배포하였고 교육도 실시했으며, 도로공사는 업체로부터 비정규직들의 근무편성표와 인사발령 등을 보고받기도 했다"고 판단했다.

또 대법원은 "용역계약의 내용은 도로공사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업무인 영업소 운영업무이고, 도로공사는 용역계약을 통해 포괄적인 지시 내지 관여에 관한 권한을 다수 두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업체는 대체로 도로공사 직원이었던 사람이 운영했고, 업체는 별다른 자본 투자가 없었고, 도로공사가 사전에 정한 인원수를 투입하여 임금을 지급하면 되므로 사업경영상 특별한 위험을 부담하지도 않는다"고 봤던 것이다.

김두현 변호사는 "비정규직들은 모두 도로공사의 파견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결의 요지"라며 "파견 인정의 요소들은 말 그대로 '요소'이지 '요건'이 아니므로, 여러 요소 중 몇 가지가 달라지거나 없다고 하여 파견이던 것이 파견이 아니게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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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권리찾기 토론회’. ⓒ 민주노총 경남본부

 
"도로공사의 대응방식이 심각하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도로공사의 대응방식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지 않고 있다. 도로공사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들 외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거나 "특히 2015년 이후에는 업무방식 변경으로 파견요소가 해소되었으므로 그 이후 입사자는 파견근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확정판결이 없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법적 의무가 없는가"에 대해, 김 변호사는 "판결의 내용대로라면 도로공사 영업소에서 동일한 업무를 하는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파견 근로자라는 것"이라고 했다.

"소송을 해서 확정판결을 받은 비정규직과 그렇지 않은 비정규직의 차이는 무엇일까"에 대해, 김 변호사는 "법원을 통해서 강제집행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뿐"이라며 "확정 판결을 받은 비정규직들은 정규직이었을 때의 임금차액을 당장 추심을 통해 받을 수 있지만, 확정판결이 없는 비정규직은 압류·추심은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당연하게도 압류·추심을 할 권리가 아직은 없다고 하여 이들이 불법파견 근로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며 "이는 퇴직금을 못 받은 노동자가 확정판결을 받아 압류·추심을 하지 못하는 상태라고 하여, 퇴직금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지금 도로공사의 주장은 실컷 일은 시켜 놓고는 '민사소송으로 확정판결을 받아오기 전에는 임금 줄 의무는 없다'고 하는 얼빠진 사장의 궤변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이어 "강제집행을 당할 수도 있는 의무와 강제집행을 '아직은' 당하지 않을 수 있는 의무, 둘 다 파견법상 의무, 그러니까 '법적의무'임은 동일하다"며 "도로공사의 주장은 법원 집행관에 의해 힘으로 강제되기 전까지는 법을 끝까지, 계속해서 어기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선언이나 다름 아니다"고 덧붙였다.

"도로공사의 조치는 호박에 줄 긋는 행위에 불과"

"2015년 이후 파견요소가 해소되었으니 더 이상 파견이 아닌가"에 대해서도 김두현 변호사는 반박했다.

도로공사는 "2015년경 영업소에 근무하던 공사 소속 관리자를 지사로 전환배치하고, 용역계약 특수조건과 과업지시서를 전면 개정하였으며, 용역관리 체계를 상시감독에서 간헐적 순회검증으로 바꿨다"며 "이로써 파견의 요소가 해소되었으니 더 이상 파견근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계약내용이 도로공사의 필수적·상시적 업무이고, 애초 고속도로 영업소 업무가 도로공사의 지휘․감독 없이는 독립적으로 수행이 불가능하다"고 해 "영업소 업무 시스템 자체에 대해 본질적으로 도급에 적합하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변호사는 "도로공사가 주장하는 감독횟수를 줄였다던가, 정규직 관리자가 영업소에서 직접지시를 하지는 않는다던가 하는 변화는 그저 여러 파견 인정의 요소 중 일부를 변경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따라서 이런 조치는 호박에 줄 긋는 행위에 불과하여, 이로써 기존에 파견이던 것이 파견이 아니게 판단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보인다"고 했다.

김두현 변호사는 "도로공사 사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의 임명제청을 거쳐 청와대가 임명재가를 한다"며 "도로공사의 이번 행위는 사실상 정부가 사법부 판단을 정면으로 무시한 것으로 보아도 과하지 않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도로공사의 이번 대처는 불법파견을 단속하고 처벌해야 할 노동부 공무원들에게도 불법파견은 적극적으로 단속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로 비춰질까 심히 우려된다"고 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는 "최근 도로공사, 한국지엠(GM), 현대자동차 등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불법파견 판정 등 하청노동자들의 직접고용 법원판결과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며 "사내하청 위법성과 노동권 실태, 하청노동자 투쟁과 조직화를 위한 과제와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를 연다"고 했다.

이성희 민주노총 경남본부 사무처장, 김진경 공공운수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장, 이동성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토론한다.
#한국도로공사 #불법파견 #대법원 #금속노조 법률원 #민주노총 경남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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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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