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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마다 탁탁탁... 현관 밖 목탁 소리의 정체

[옥상집 일기 5] 우리 집에는 딱따구리가 찾아온다

등록 2019.11.03 19:32수정 2019.11.0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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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첫째 주에 옥상집으로 이사했다. 비록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40년 넘는 아파트 생활에서 얻지 못한 경험을 맛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졌다. - 기자말

[이전 기사] 마트에서 산 시든 대파, 뿌리째 심었더니

잠결에 얼핏 목탁 소리를 들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새벽이었다. 나무를 때리는 낮고 깊은 소리가 들렸다 안 들렸다 했다. 처음에는 집 바로 옆이 산이니 암자가 있는가 보다 했는데 다른 소리도 들렸다. 작은 목탁이었는지 높고 탁한 소리였다.

나무를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 울렸다. 이곳저곳에서 울리더니 푸드덕,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그 소리가 멈췄다. 목탁이 아니라 새였다. 눈으로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딱따구리였다. 분당 영장산이나 불곡산에서 오색딱따구리나 쇠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걸 본 적 있었지만 그렇게 크고 명징하게 나무 쪼는 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우리 집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만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사 초기에 우리 가족은 새소리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잠을 깨곤 했다. 시계를 보면 새벽 다섯 시를 겨우 넘긴 시각이었다. 알람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요란했다. 산 옆으로 이사 온 대가였다.

옥상으로 나가면 산이 바로 보이고, 집 주변으로 솟은 나무들과 다른 집 지붕들도 보인다. 그리고 새들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큰 새들이 먼저 보인다. 까치와 까마귀들이 동네 지붕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러다 다른 지붕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치 "여기 우리도 있어요!" 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참새, 박새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노래를 하고 직박구리들은 화음을 보탠다. 딱따구리들도 나무를 두드리며 박자를 맞춘다.

새들이 찾아오는 집
 

청딱따구리 분당 어느 산 아래 우리 집에는 청딱따구리가 찾아온다. ⓒ 강대호

 
이렇듯 우리 집 옥상에서 많은 새를 만날 수 있다. 까마귀와 까치는 물론 직박구리, 참새처럼 분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들부터, 박새, 쇠박새, 딱새 그리고 붉은머리오목눈이처럼 작은 새들까지, 그리고 오색딱따구리, 쇠딱따구리, 청딱따구리 같은 딱따구리들도 볼 수 있다. 도시에선 흔치 않은 물까치와 어치도 볼 수 있고 간혹 맹금류가 하늘에 떠 있는 걸 볼 때도 있다.

내가 직접 눈으로, 그리고 새 도감으로 확인한 종류만 이 정도다. 어쩌면 더 많은 새가 찾아오는데 내가 미처 못 알아본 새들도 있을 것이다. 난 우리 집을 찾아오는 새들이 반갑다.

그런 난 어릴 적에는 새를 무서워했다. 우리 동네는 제비가 많았는데 녀석들이 골목을 낮고 빠르게 날 때면 내게 부닥칠까 봐 깜짝 놀라곤 했다. 학교 앞에서 팔던, 친구들이 귀엽다던 병아리도 난 징그러웠다.

그러다 새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분당 탄천을 산책하며 만난 물새들 덕분이었다. 그들이 어울려 사는 모습이 16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떠나 보낸 나를 위로해 주었다. 지난해에는 새끼 청둥오리 가족을 100여 일간 관찰한 내용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100일 이상을 오리 가족에게 푹 빠져 지낸 이야기).

그 후로 난 틈날 때마다 탄천에서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들을, 왜가리와 백로들을 만나고 녀석들이 사는 이야기를 글로 사진으로 담곤 한다. 우리 가족이 산 바로 아래로 이사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산새들 때문이기도 했다. 난 새들의 모습과 울음소리가 사랑스럽다.
 

산새들 우리 집 옆 나무에는 산새들이 찾아온다.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청딱따구리, 직박구리, 참새, 박새다. ⓒ 강대호

 
내가 지켜본 새들에게는 평화로운 질서가 있었다. 짝을 지어서 혹은 떼를 지어서 몰려다니긴 하지만 다른 종들과는 큰 시비가 붙지 않는 모습이었다.

우리 집 옥상 바로 옆에는 새들이 즐겨 찾는 나무와 나뭇가지가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나뭇가지에는 항상 새가 앉아 있었다. 직박구리일 때도 있고 박새일 때도 있고 때론 청딱따구리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머물다가 다른 새가 오면 자리를 슬쩍 비켜준다. 누구도 자기 자리라 주장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래서 새들은 사이가 좋은가 보다 했다. 어쩌면 먹이가 서로 다른 종이라서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다만 까치는 다르다. 까치는 먹이가 겹치는 까마귀와 사이가 좋지 않다. 덩치가 훨씬 큰 까마귀에게 까치는 무리를 지어 시비를 건다. 그런 까치가 다른 새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때도 있었다.

어느 휴일 오후 까치 소리로 밖이 요란했다. 옥상에 나가 보니 높은 하늘에서 까치 떼와 어떤 새 한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망원경으로 보니 종은 모르겠지만 맹금류가 분명했다. 숲에서는 작은 새들이 잔뜩 모여서 울고 있었다.
 

맹금류 우리 동네에서 간혹 맹금류가 떠 있는 걸 볼 수도 있다. ⓒ 강대호

 
치열한 공중전 끝에 까치들이 그 큰 새를 쫓아냈다. 그제야 숲에서 작은 새들이 노래를 부르며 나왔다. 까치는 잠재적 경쟁자를 쫓아낸 거였지만 작은 새들 관점에선 까치가 포식자를 쫓아낸 거였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새들이 각자 입장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것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새들이 옥상에서 하는 일들

작고 힘없어 보이는 새라고 해서 목소리까지 작진 않다. 어느 날 처음 들어 본 새 울음소리에 옥상으로 갔다. 바로 근처에서 들리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먼 나무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망원경으로 봐야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작은 딱새였다. 참새만 한 녀석이 목소리는 크고 낭랑했다. 참새, 박새, 쇠박새처럼 작은 새들이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크고 낭랑한 소리를 뽐내며 존재감을 발휘하곤 했다.

그런 작은 새들이 옥상 가까이 날아온다. 덩치 큰 까치나 까마귀는 조금 멀리 머문다. 얼마 전에는 딱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옥상 바닥에서 뭔가를 물고 날아갔다. 순식간이었다.

옥상에는 화분이 여럿 있고 화분에는 야생화가 피어 있다. 그리고 야생화를 찾아오는 나비와 곤충들이 있다. 작은 새들이 그런 곤충들을 노리곤 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이사 초기에는 옥상으로 나가는 미닫이만 열면 새들이 후드득 날아가는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미닫이를 열어도 우리 집 옥상 근처 나무나 지붕에 앉은 새들은 하던 일을 계속한다. 예전에는 카메라만 들이대면 화들짝 날아갔는데 지금은 포즈(?)까지 잡아준다.

그래도 아주 가까이는 가지 않는다. 그게 자연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몸가짐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새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눈과 귀에다 담는 거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로 찍더라도 자연에서 살아 있는 새만큼 아름답진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좋은 마이크로 녹음하더라도 자연에서 듣는 새소리만큼 맑게 울리진 않는 것 같다.

새를 가까이하고 싶다면 다가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다가오게 해야 한다고 느꼈다. 물론 산새를 가까이 오게 만드는 어렵지 않은 비법이 있다. 물과 먹이로 유인하는 거다.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지만 참았다. 옥상을 녀석들이 자연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가꾸며 놔둘 것이다.
 

청설모 서재 책상 옆 창문 밖으로 본 모습이다. ⓒ 강대호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연히 다가오는 인연이 반갑긴 하지만 기어이 다가오는 인연 때문에 사달이 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연처럼 상처 주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다가오길 기다리면 어떨까.

서재 책상 옆 창문으로 뭔가 어른거려서 밖을 내다보면 나무에 새들이 날아와 있다. 새들만이 아니다. 안쪽 나무에는 청설모도 들락날락한다. 관심 가지는 만큼 더 보이고 기다리는 만큼 다가오는 세상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대호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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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위해 하프타임을 보내는 50대 남자. 월간문학 등단 수필가이자 동화 공부 중인 작가.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 중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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