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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행동 조심해, 치마가 짧잖아" 아빠의 말은 상처가 됐다

[리뷰] 우리 모두의 이야기, 영화 < 82년생 김지영 >

19.10.25 18:34최종업데이트19.10.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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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2년생 김지영>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은 주인공 김지영(정유미)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서 각자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남편 대현(공유)과 아이 한 명을 낳아 기르는 지영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이를 깨워 밥을 먹이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잠시 다른 아이 엄마들과 차를 마시는 등, 현재 주부로서 생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왠지 지쳐 보인다. 영화는 그가 베란다에서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는 뒷모습과 아내가 걱정되어 정신과를 찾아가 아내와 관련해 상담받는 남편 대현의 모습을 교차로 그린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지영의 어린 시절 역시 간간이 보여주는데, 지영의 친정집은 남아선호가 뿌리 박힌 집이었다. 지영의 엄마 미숙(김미경)은 젊은 시절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집에서 아들은 친가에서 대접받지만, 딸들은 늘 후순위로 밀린다. 사실 영화 속 지영의 아버지가 결코 지영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과거에 해오던 관습대로 아들만 챙긴 것이다. 몇십 년을 아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지냈던 아버지는 습관처럼 아들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딸이 잘 되길 바라면서도 몸은 어느새 아들을 향해있다. 그렇게 뿌리 박힌 습관은 무섭게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영화는 그렇게 지영의 현재 삶과 과거 삶을 교차로 보여주면서 과거의 문제가 여전히 현재에도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으로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한다는 것은 현재에도 무척 어려운 일이다.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여성들은 휴직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회사 여러 사람들의 눈초리를 감당해야 하고 휴직 후 다시 복직을 하기도 쉽지 않다. 아이를 맡길 사람을 찾아야 하고, 그마저도 찾지 못하면 복직을 포기해야 한다. 또한 남자가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것에도 여러 불이익이 따른다. 영화에서 남편 대현은 아내의 육아를 도우려고 하지만 사회생활이라는 장벽 앞에 도움의 손길은 희미해진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과거 여성에 대한 시각

출산을 결심하기 전, 남편 대현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많이 도와주겠다고 지영을 설득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아니 대현은 끊임없이 아내를 도우려 부단히도 노력하지만 그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 가만히 앉아 아내를 바라보는 대현의 얼굴도 근심과 걱정, 그리고 미안함이 가득하다.

아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해주고 싶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그것을 가로막는다. 대현과 지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출산 후 육아를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바로 지금 현재 겪고 있는 고민들이다. 이런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또한 남편의 입장에서 영화를 바라본다.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상처로 돌아가는 이상한 일들이 계속 반복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 직장인들은 부모님 세대에 비해 늘어났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한다. 하지만 출산 후 여성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여전히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영화 내 등장하는 성공한 김 팀장(박성연)은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여성들의 동경을 받지만, 가정 내에서 좋은 엄마의 아이덴티티를 얻지 못했다. 직장 내에서는 끊임없이 여성 비하 발언을 듣고도 모른 척 하거나 싸워야 했다.

그래서 남는 건 독하다는 이미지뿐이다. 또한 일을 그만 둔 여성은 경력단절로 그저 주부로 남기도 한다. 그런 시선은 남성들에게 던져지지 않는다. 성공한 남성 직장인에게 센 남자라는 딱지를 붙이지도 않으며, 남성 직장인들이 육아 때문에 휴직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성 육아휴직 등 제도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어도 여전히 사람들의 인식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성추행이나 몰카 등에 대한 시각도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러 있다. 영화 속 지영은 고교시절 버스에서 따라오던 남학생 때문에 아버지에게 문자를 보냈을 때, 지영을 데리러 온 아빠는 이야기한다. 

"너 행동 조심해. 치마가 너무 짧잖아. 돌이 굴러오면 잘 피해야 되는 거야. 보고도 못 피한 사람이 잘못한 거야. 알겠어?"

극중에서 화장실이나 탈의실을 이용할 때 몰래카메라를 살펴보는 사람들 역시 피해자인 여성들이다. 무의식적으로 결국 당하는 사람들이 더 조심해서 행동하는 것으로 해결방법을 찾는다. 아마도 피해자가 더 조심해야 한다는 그 인식은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울 때 더욱 쉽게 빠질 수 있는 사회적 오류일 것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전투 속에 빠진 82년생 김지영

그런 모든 상황들은 지영을 전투로 몰아넣는다. 육아 전투, 경력 단절과의 전투, 가족과의 전투. 본인이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던 전투 상황으로 몰아넣은 건 사회 제도와 통념이다. 그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가끔 정신을 잃는 지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부분은 동정심과 안타까움이다.

그나마도 영화 속 시어머니는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서 줄곧 그의 곁에 있는 건 남편 대현이다. 그는 본의 아니게 혼자 전투를 하고 있는 지영의 옆에서 그를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갑자기 지영을 안아주고 출근하는 그의 뒷모습에서 지금 아내를 걱정하는 무수한 남편들의 모습이 보인다. 대현이 아내의 경력을 살릴 기회를 주기 위해 자신의 경력이 희생됨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쓰려고 하는 모습은 아마도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희망인지도 모른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제시하는 지영이 여성으로서 겪는 경험들과 대현이 남편의 시선에서 겪는 고민들은 현재를 살고 있고 육아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많은 부부들이 공감하게 만든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겪는 일들 중 적어도 한두 가지는 그들이 이미 경험했거나 겪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특히나 중심이 되는 육아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으면 직장에 갈 수가 없다. 영화 속 상황처럼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을 향하는 최악의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상황들이 겹쳐지면 결국 경력 포기라는 선택으로 자꾸만 발걸음이 옮겨진다. 영화는 그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왜 젊은 층들이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를 아주 명확히 보여준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사회 통념의 변화다. 그것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 시대의 김지영은 계속 나타날 것이다.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은 배우 정유미와 공유의 얼굴로 우리 시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정 내 문제를 오롯이 드러내 보인다. 그들이 영화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과 대화들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 충분하다. 왜 원작 소설이 그토록 사랑을 받았고, 또 논쟁이 되었는지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보여준다. 현재 같은 상황에 처해있는 아내와 남편들은 이 영화를 보며 공감하며 위로를 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그들의 고민과 감정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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