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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창업' 연구, 중2에게 맡기고 벌어진 일

[마을카페 '나무'의 6년] 중학생과 함께 하는 마을카페 연구

등록 2019.11.03 19:30수정 2019.11.0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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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신곡동의 마을 북카페 '나무'가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설사 지금의 공간이 없어지더라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땀과 눈물로 일궈왔던 역사만큼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마을카페 '나무'의 6년을 기록합니다.[편집자말]
처음 우리의 욕구는 단순했다. 마을에서 카페하기. 하지만 운영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와 운영비에 비해 들어오는 수입은 불규칙했다. 마을카페를 연 뒤 3년 사이 청약 통장, 태아보험과 암보험 약관대출을 받았다. 함께 만들고 운영하는 주민커뮤니티 공간이지만 재정에 대한 책임은 카페지기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재정적인 압박에 시달리는 동안 마음이 많이 피폐해졌다. 그즈음 운 좋게도 경기도로부터 공간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받았다. 그리고 시작된 다양한 연대활동. 몸은 바빠졌지만 숨통이 트였다. 여유를 밑천삼아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에서 공모하는 작은연구과제사업에 지원했다. 주제는 경기도 마을카페 사례 연구.


"대체 다른 마을카페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걸까?"

카페를 운영하는 내내 궁금하던 주제였다.

2016년 8월, 연구 주제를 발표하는 심사가 진행됐다. 앞선 참가자들이 심사를 위해 띄워놓은 PPT 화면을 밖에서 흘깃거리며 순서를 기다렸다.

"마을북카페 나무, 안은성님."

따로 출력해 온 발표자료를 들고 심사장 안으로 들어가니 너댓 명의 심사위원이 자리에 앉아 서류를 훑어보는 중이었다. 진행자가 마이크를 건네준다. 생전 연구라고는 해본 적 없는 초짜가 연구 프리젠테이션을 하려니 어찌나 긴장되던지.


마을카페 운영을 통해 겪은 현장의 필요와 욕구가 담긴 연구임을 설명하고 정신없이 발표를 마쳤다. 몇 개의 질문을 받았으나 뭐라고 답했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건 다른 마을카페들의 사례들을 잘 정리해서 우리처럼 맨땅에 헤딩하며 어려움을 겪을 공동체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거였다.
 

경기도의 마을카페 운영 사례를 수집하여 정리한 연구 '우리도 카페 만들어볼까?" ⓒ 안은성

 
여름이 가기 전, 연구 사업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연구 기간은 3개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빠르게 연구팀을 꾸렸다. 처음 과제를 고민할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이들은 여름에 함께 방학대책위원회 활동으로 연대의 물꼬를 튼 꿈틀자유학교 학생들이었다.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준비해 둔 기획안을 학교에 보냈다. 중등 과정의 프로젝트 수업으로 매주 카페에 와서 함께 연구를 진행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이렇게 마을에서 살아가는 방식도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꿈꾸는 마을카페의 모습도 궁금했다. 당연히 연구비도 지급할 예정이었다.

꿈틀의 답변은 이랬다.

"갓 입학한 7학년(중1)은 어리고, 9학년(중3)은 졸업을 앞둔 2학기라 어렵겠다. 연구를 함께 할 학년으로 8학년(중2)을 추천한다. 연구비는 학생 개개인에게 지급하기보단 가을 학기에 갈 7박 8일간의 들살이 수업 비용에 보태 쓰는 것이 좋겠다."

얘들아, 함께 연구해 볼까?

이렇게 해서 연구팀에 여덟 명의 중2 연구원이 영입됐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인원이었다. 사례 탐방을 위해 연구팀을 나눈다 해도 최소한 승합차 수준의 차량이 필요했다. 12인승 차량을 몰던 나무 카페 운영위원을 섭외했다. 탐방은 함께 하지 않지만, 꿈틀 학생들의 담당 학년 교사가 수업에 참여하기로 하면서 연구진이 무려 열한 명으로 늘어났다.
 

매주 카페에 모여 연구 모임을 진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 안은성

 
'우리도 카페 만들어볼까?' 연구를 위해 카페에서 첫 미팅을 가졌다. 연구의 의도를 설명하고 진행방식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꿈틀 아이들이 수업의 형태로 참여하는 방식이었기에 연구책임자의 역할과 준비가 많이 필요했다.

예상은 했지만, 벅찼다. 이렇게 연구를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의문도 끊임없이 들었다. 매주 연구와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일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일이 많았고 시간은 빠듯했다. 연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과 결과물에 대한 부담때문에 일을 제대로 나누지 않은 탓이었다.  

두 번쯤 모임을 하고 나니 아차 싶었다. 많은 연구진을 뽑아놓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전문가만큼 연구를 잘 수행하진 못하더라도 합동 연구라는 연대의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 성장하리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탐방할 마을카페의 자료를 찾는 아이들. ⓒ 안은성

 
마을카페 탐방을 위한 자료조사를 과감하게 아이들에게 맡겼다. 정부나 지자체, 기관의 후원을 받거나 직영으로 운영하는 카페들은 빼자는 가이드 라인만 제시해주었다. 자율적으로 주민이 운영하는 마을카페의 운영사례가 우리의 연구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준비한 자료를 바탕으로 탐방지를 물색했다. 운영에 대한 기초자료를 모을 설문조사지 초안도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다. 추가 세부 운영에 대한 질문은 우리의 운영사례를 참고해 덧붙였다. 
   

컴퓨터 작업이 익숙치 않은 아이들이 먼저 종이에 칸을 그려서 손으로 설문지 샘플을 만들고 있다. ⓒ 안은성

   
이메일로 설문을 실시한 후 돌아온 답변을 가지고 최종 네 곳의 마을카페 탐방을 확정지었다. 안산의 마을카페 '마실'과 용인의 '파지사유', 부천의 '달나라떡토끼 카페', 그리고 과천의 '마을카페 통'이었다. 3년 정도의 유의미한 운영 사례를 간직한 카페들로 모두 경기남부 지역이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설립한 카페들이어서 비교하기가 좋았다.

가을이 무르익는 10월. 탐방이 시작됐다. 아이들과 네 명씩 조를 짜고 두 곳씩 방문하는 일정이었다. 인터뷰와 기록, 사진촬영, 녹취록 정리 등 일을 나눈 후 첫 탐방지인 안산으로 출발했다.
 
(* 다음 회에 계속)
#마을카페 #마을북카페 #공유공간 #마을공동체 #경기도마을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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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간 주민들과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해오던 마을카페가 2021년 재개발 철거로 사라진 후 집 근처에 개인 작업실을 얻어 읽고, 쓰고, 공부합니다. 도시사회학 박사과정생으로 공간에 대한 관심과 경험을 실천과 연구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현재 지역자산화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으며 매주 전라남도의 작은 섬마을로 출근하여 주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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