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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가득 찬 '촛불대군'의 전진

[10월 26일 여의도 검찰개혁 촛불집회 참가기]

등록 2019.10.27 15:08수정 2019.10.27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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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여의대로를 가득 메운 검찰개혁 촛불집회 참가자들. ⓒ 김종성

  
약간 쌀쌀하다 할 수 있었던 지난 26일 늦은 오후부터 서울 여의도는 검찰개혁 촛불집회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이번 집회에서는 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국회의 조속한 입법 처리를 요구하는 전단과 함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촛불 계엄령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도드라졌다.

자원봉사자들이 각종 전단을 몇 장씩 배포하긴 하지만, 그중 어떤 전단을 들 것인가는 참가자들의 자유였다. 공수처 설치 및 관련 법안 국회 처리와 함께 계엄령 문건 논란이 대중의 손길을 그런 전단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국회의 신속한 반응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참가자들. ⓒ 김종성

   

공수처 설치를 요구하는 시민들. ⓒ 김종성

  
지난 19일에는 국회의사당 앞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국회대로와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동쪽으로뻗은 의사당대로에서 집회가 열렸다. 이번 26일에는 국회의사당 동남쪽 600미터인 여의도공원 옆 여의대로에서 집회가 열렸다. 열기는 19일 집회나 26일 집회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의도 내부만 기준으로 할 때 19일 집회가 열린 국회대로는 약 1킬로미터, 의사당대로는 약 0.5킬로미터이고, 26일 집회가 열린 여의대로는 약 1.5킬로미터다. 규모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19일과 달리 26일에는 국회의사당과 좀 떨어진 데서 집회가 열리긴 했지만, 국회가 느꼈을 압박은 19일이나 26일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9일 집회의 중심지인 서울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과 좀 떨어진 곳으로 장소가 변경되다 보니, 국회의사당역에서 여의도공원 쪽으로 부지런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관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걸음이 왠지 바빠 보였다. 밀린 빚이라도 받으러 가는 것처럼 왠지 급하고 바쁘게 느껴졌다. 
 

집회장으로 가는 시민들. ⓒ 김종성

   

집회장으로 가는 시민들. ⓒ 김종성

   

집회장으로 가는 시민들. ⓒ 김종성

  
급하고 바쁜 걸음에서 '사회를 우리의 힘으로 바꾸자'는 열의가 느껴졌다.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이 저렇게 단단한 각오로 무장한 사람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쳤다.

여의대로로 전진하는 '촛불 대군'의 발걸음은 힘차고 씩씩했지만, 이번 촛불집회를 둘러싼 대한민국 분위기 속에서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때와 좀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을 약간 힘들고 피로하게 만들 만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부 국가기관들의 반응이 그때와 좀 다르다. 2016년 촛불 때는 국회의원 300명 중 234명이 박근혜 탄핵소추에 찬성표를 던졌다. 새누리당에서도 적지 않은 의원들이 가담했다. 또 검찰 역시 좀 미진하기는 했어도 박근혜 쪽으로 칼끝을 겨누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국회가 그때처럼 뭉쳐 있지 않다. 검찰개혁에 대한 원론적인 공감대는 형성돼 있지만, 공수처 설치 같은 구체적 각론으로 들어가면 의견이 분분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예 노골적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 여론을 대표하지 못하는, 국민 여론과 겉도는 분위기가 국회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반응도 전과 다르다.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촛불이 타오르자,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체 개혁안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10월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 때도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결정을 충실하게 따르겠다" "어떠한 결론이 나더라도 저희는 개정된 법률이 아주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등의 발언을 했다. 

하지만 국정감사 며칠 뒤 그는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을 사실상 반대하는 입장을 표시했다. 검찰이 종전처럼 수사지휘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 한국당의 검찰개혁 반대투쟁이 거세지는 속에서 그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국회와 검찰뿐 아니라 보수정당의 태도도 확연히 다르다. 그때는 새누리당도 촛불집회의 대의를 거스르지 못했다. 그중 일부가 바른정당(바른미래당)으로 나가고, 잔존 세력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꾼 데서 느낄 수 있듯이, 그들은 박근혜 색채가 강한 새누리당이라는 틀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들은 박근혜를 비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검찰개혁 반대 집회에 힘을 실어주면서 개혁을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의 사퇴 이전만 해도 '사회 불공정' 쪽으로 이슈를 몰아가는 듯했던 그들은 조국 장관이 사퇴하자마자 '검찰개혁 반대' 쪽으로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말은 '사회 불공정'이 아니라 '검찰개혁 반대'였던 것이다.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플래카드. 국회 정문 앞에 걸려 있었다. ⓒ 김종성

  
공안검사 출신인 황교안 당 대표를 비롯해 검사 출신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기는 하지만, 한국당이 검사들의 정당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검찰이 곧 자신인양 개혁을 필사적으로 저지하고 있다.

2016년 촛불집회 때의 새누리당은 박근혜를 미련 없이 버렸다. 그때는 '제도 개혁'이 이슈가 되지 않고 '박근혜 하야 혹은 탄핵'이 이슈가 됐다. 박근혜 하나만 버리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그들은 촛불집회의 대의를 거역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이번에는 검찰제도 개혁이 부각되자, 결사적인 태도로 반대를 부르짓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검찰을 통한 국민 억압과 권력 유지에 익숙해온 보수세력의 입장에서는 검찰 권한의 상당부분이 경찰과 공수처로 분산되는 게 두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2016년과 달리 이번 촛불집회는 상대적으로 많은 난관에 직면해 있다. 일부 국가기관과 보수정당은 촛불의 명령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기도 하고, 촛불집회를 조국 일가를 비호하는 움직임 정도로 폄하하기도 한다. '촛불 대군'이 행진하는 길에 보수세력이 장애물도 깔아놓고 '지뢰'도 매설해놓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승산은 촛불집회 쪽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박근혜 탄핵 때 못지않게, 어쩌면 그 이상으로 이번에도 승산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검찰개혁 요구는 박근혜 탄핵 요구과 달리, 보수세력은 물론 극우세력도 결국에는 공감할 수밖에 없는 주제다. 검찰개혁 반대 집회나 친박집회에 참가한 이들이라고 해서 검찰을 마냥 좋게만 볼 리는 없다. 재벌이나 고위층이 아닌 이상, 그들 역시 검찰의 문제점을 경험했거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당이 검찰개혁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면 할수록 국민들이 이 문제에 더욱 더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검찰개혁에 대한 지지 여론이 아무래도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개혁 문제가 계속 거론되다 보면, 검찰에 대한 좋은 이야기보다는 나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슈를 '조국 반대'에서 '검찰개혁 반대'로 성급하게 전환한 한국당의 전략은 어쩌면 자충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개혁 반대 진영의 '최고사령관'이 패전 경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촛불 대군'에게는 힘이 될 만한 요인이다. 박근혜 탄핵 당시 황교안 대표는 대통령권한대행이 돼 보수세력을 대표했다. 그때 그는 박근혜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방법으로 촛불의 열기에 '살짝' 대항해봤다. 하지만 열기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국가권력이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박근혜뿐 아니라 그 역시 패장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검찰개혁 촛불 정국 아래서도 그가 보수세력을 대표하고 있다.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라는 <예비군의 노래> 가사처럼, 어제의 '패장'이 오늘도 보수진영 최고사령관이 돼 있다.

그런데 그의 '전투력'은 그때보다 현저히 위축돼 있어 보인다. 그때는 대통령권한대행이었지만, 지금은 보수정당 대표다. 그나마 원내가 아닌 원외에 있다. 국회 의석을 갖고 있는 나경원 원내대표와 공조하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놓여 있다. 게다가 최근 공개된 '계엄령 문건' 연루 의혹까지 터져 그의 입지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26일 촛불집회 때에서도 계엄령 사건의 특검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의 운명은 지금 위태한 지경에 놓여 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역사의 흐름에 맞서는 위치에 서게 됐으니, 그의 운명도 얄궂기만 하다. 
 

게엄령 문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구호들. ⓒ 김종성

  
패장인 데다가 권력마저 약해지고, 미래마저 불투명해진 장수가 보수 진영을 이끌고 있으니, 촛불 대군의 승산이 그때보다 높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밀린 빚이라도 받으려는 듯, 체불된 임금이라도 받으려는 듯, 쌀쌀한 날씨에도 여의도를 당당히 행군하는 촛불 국민들의 기세를 황교안 '최고사령관'이 지휘하는 보수 진영이 상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국회와 검찰, 그리고 한국당에서 삐거덕 하는 소리가 나서 지금의 촛불 정국은 2016년에 비해 좀더 힘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전망은 오히려 더 밝다.

촛불 국민들의 기세는 여전히 당당하다. 보수세력이 깔아놓은 지뢰도 짓눌러버리고 진격할 기세다. 검찰개혁이라는 이슈 자체도 불리하지 않다. 거기다가 패전 경력 있는 장수가 그때보다 약한 모습으로 다시 앞장서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의 승산도 매우 높다는 확신을 들게 하는 대목들이다.
#촛불집회 #검찰개혁 #공수처 #검경 수사권 #계엄령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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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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