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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면 묘지에 간다는 소설가 김영하, 이래서구나

[버락킴의 파리 여행기 15] 무덤 사이를, 죽음 사이를 걸을 수 있는 '페르 라세즈'

등록 2019.11.02 18:58수정 2019.11.0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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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 라셰즈의 입구 ⓒ 김종성

       
"전 여행 가면 그 도시의 묘지를 꼭 한 번씩 가봐요."
"왜요?"
"일단 조용해요. 고요합니다. 산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

어느덧 파리가 세 번째다. 같은 장소를 세 차례나 여행한 건 파리가 유일하다. 지난 9월 하순경 이번에 파리에 와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페르 라셰즈(Père Lachaise Cemetery)'였다. 파리 20구에 위치한 페르 라셰즈는 공동묘지이다. 굳이 여행까지 가서 묘지에 왜 가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익숙한 관점에서 생각하면 공동묘지란 '전설의 고향'의 으스스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간, 격리되고 배제돼야 마땅한 곳이니까.

페르 라셰즈는 파리에 있는 공동묘지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클 뿐더러 산책을 하기에도 좋은 아름다운 공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짐 모리슨(Jim Morrison), 쇼팽(Chopin),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들라크루아(Delacroix) 등 유명인사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다시 말해서 여행의 명소이자 추모의 공간인 셈이다. 실제로 페르 라셰즈에서 단체 여행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페르 라세즈 내부의 무덤들 ⓒ 김종성

   

페르 라세즈 내부의 무덤들 ⓒ 김종성

 
흔히 '추모(追慕)'라고 하면 엄숙한 분위기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왠지 웃으면 큰일 날 것만 같고, 몸을 꼿꼿하게 세운 채 잔뜩 무게를 잡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페르 라셰즈는 달랐다. 그곳의 공기는 (가볍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죽음의 무게에 짓눌려 있지 않았다. 추모의 공간이 여행의 명소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은 그 자체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죽음을 대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태도를 엿볼 수 있기도 했다.

페르 라세즈를 찾게 된 계기는 여행을 할 때마다 각 나라의 묘지를 찾곤 한다는 소설가 김영하의 영향이었다. 그가 페르 라셰즈에서 찾았던 휴식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또, 파리 여행이 세 번째라는 점도 한몫했다. 무언가를 봐야 한다는 조급함이 상당히 사라져 있었다. 파리가 처음이었다면 분명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테니까(실제로도 그러했다). 이렇게 조금씩 비껴가는 흐름이 좋다. 이제야 여행에 대해 조금 알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짐 모리슨의 무덤에는 그의 팬들이 놓아둔 꽃들이 가득하다 ⓒ 김종성

   

쇼팽의 무덤 ⓒ 김종성

 
폐르 라셰즈의 묘미는 바로 무덤을 찾는 일이다. 무덤을 찾는다고?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무덤을 찾아(헤매)야 할 만큼 페르 라세즈는 정말 넓었다. 그저 넓다는 말로는 그 크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방대(厖大)하다는 단어를 써야 마땅했다. 파리 최대 규모의 공동묘지답게 숫자로 구역이 매개져 있었는데, 그 숫자가 무려 97까지 올라갔다. 각각의 구역에 수많은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안에 우리가 찾아야 할 묘지가 숨겨져 있었으니 '보물찾기'와 다를 게 없었다.

이 묘지 찾기를 굳이 '묘미'라고 표현한 까닭은 그 '보물찾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혼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넓디넓은 공동묘지 속에서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동료가 된다. 그래서 페르 라셰즈에서 펼쳐지는 보물찾기는 그저 즐거운 놀이가 된다. 물론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무덤들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그랬다간 하루종일 폐르 라셰즈를 헤매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굳이 그럴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앵그르의 무덤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들어가야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 김종성

 
"혹시 앵그르의 묘가 어딘지 아세요?"
"미안해요. 우리도 길을 잃었어요." 

짐 모리슨과 쇼팽의 무덤을 찾는 건 그나마 쉬웠다. 찾는 사람이 많기도 했고, 무덤 주변에 무수히 많은 꽃들이 놓여 있었으니까. 그런데 도미니크 앵그르(프랑스 신고전주의 회화를 이끈 19세기 프랑스 화가)의 무덤은 지도에 표시된 지역보다 훨씬 구석에 있어 찾기가 어려웠다. 모를 땐 묻는 게 최고라고 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노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들은 웃으며 자신들도 길을 잃은 상태라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여기야, 여기! 이쪽으로 와요!
"와우, 고마워요! 여기 숨어 있었네."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던 남자는 자신도 앵그르의 무덤을 찾는 중이라며 지도를 보며 고심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지도에 표기가 잘못돼 있는 게 분명하다고 여기고 다른 무덤을 찾으러 가려던 순간 남자는 큰 손짓을 해가며 나를 불렀다. 기쁜 마음에 후다닥 달려갔더니 무덤 사이사이에 앵그르의 묘가 숨겨져 있었다. 도움이 없었다면 분명 포기했을 테고, 앵그르의 묘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도움(협업)은 앞으로의 보물찾기를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모딜리아니의 무덤은 모딜리아니의 삶을 고스란히 닮아있는 듯 보였다. ⓒ 김종성

 
앵그르 이후부터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어쨌든 (지도에 표시된 구역의 근처에) 무덤은 실존했고, 더불어 함께 찾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위기가 찾아왔다. 모딜리아니의 무덤을 찾느라 무려 1시간 가까이 헤맸다. 그저 이름 정도만 새겨져 있을 뿐 특별한 표식이 없어 더욱 찾기 어려웠다. 언제부터였을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도 모딜리아니의 무덤을 찾고 있었다. "당신도 모딜리아니(의 무덤) 찾는 거죠?" 우리는 함께 찾아보기로 했다. 

앵그르의 무덤을 찾는 과정에서 고마운 빚을 졌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눈이 빠져라 찾던 중에 드디어 모딜리아니의 무덤을 발견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한 사진에서 힌트를 얻었다. 무덤 한쪽 옆에 수풀이 있는 것을 보고 위치를 추정했던 것이다.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찾았어! 모딜리아니!" 주변에서 무덤에 코를 박아가며 살피고 있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기 있었네?", "왜 못 보고 지나쳤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힘겹게 찾아낸 모딜리아니의 무덤은 생각보다 단출했다. 한쪽 구석에 별다른 치장도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러니 쉽게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의 삶만큼이나 쓸쓸해 보였다. 바로 옆 구역에 위치한 프랑스의 대중 가수 에디프 피아프의 무덤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조금이나마 덜 외롭지 않았을까. 오직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무덤을 찾아내기 위해 국적도 성별로 나이도 천차만별인 사람들이 함께 했던 시간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은 외관이 독특해 그 자체로 예슬 작품 같았다. ⓒ 김종성

   

다비드의 무덤 ⓒ 김종성

   

가을 햇살이 가득했던 페르 라셰즈 ⓒ 김종성

 
모딜리아니 그 다음부터는 한결 수월했다. 오스카 와일드의 무덤은 예술 작품처럼 독특해 눈길을 사로잡았고, 들라크루아의 무덤은 이름이 큼직하게 새겨져 있어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얼굴이 새겨져 있는 다비드의 무덤도 금세 찾았다. 그 외에도 여러 유명인사들의 무덤들이 있지만, 궁금했던 무덤들은 웬만큼 봤으니 그쯤하면 됐다 싶었다. 보물찾기를 내려놓자 가을 햇살이 쏟아지는 예쁜 산책길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덤 사이를, 죽음 사이를 걷고 또 걸었다. 

보물찾기의 즐거움과 파리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었던 페르 라세즈에서의 추억은 이번 파리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김영하가 왜 여행을 가면 그 도시의 묘지를 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곳에서 생(生)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더 찬란히 빛난다. 그래서일까. 죽음과 멀어질 이유가 전혀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그리고 '너의길을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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