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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장소라도 알아야..." 학살 피해 유가족의 증언

경남작가회의, 사화집 <잊을 수 없는 아픔, 밝혀야 할 진실> 펴내

등록 2019.10.29 09:27수정 2019.10.2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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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창원유족회는 2018년 6월 23일 오후 천주교 마산교구청 강당에서 "제68주년 창원지역 합동추모제"를 열었다. ⓒ 윤성효

 
"전쟁이 휩쓸고 간 지역은 어느 곳이든 아픈 역사의 흔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피할 수 없는 불행이었지만, 그 아픔이 내 편이었던 국가가 행사한 폭력이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묻고, 정당한 보상과 치유가 함께 따라야 하는 것이 역사의 정의다.

그러나 그 책임을 피해자에게 씌우고 죽음도 억울한데 자손들마저도 연좌제의 사슬에 묶어 원한의 삶을 살아오게 한 부당한 역사, 규명되지 못한 역사는 바로 잡지 않으면 끝없이 계속되고, 자손만대 평화를 깨는 갈등의 불씨로 남는다."


박덕선 경남작가회의 회장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들의 '증언'을 정리하면서 "그러므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문단의 행보는 지극히 당연하다"며 한 말이다.

경남작가회의는 최근 <잊을 수 없는 아픔, 밝혀야 할 진실>이란 제목의 '사화집'을 냈다. 작가들이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 그 아픔을 채록한 것이다.

노치수 창원유족회장은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 중에 69년 전 국가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부모를 잃고 사회의 냉대와 연좌제의 굴레에서 엄청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유족들이 털어놓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김아무개(마산)씨는 "아버지가 같은 사건으로 두 번의 재판을 받고 죽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사부재리원칙은 법을 모르는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법제도의 기본 원리 아니냐"고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는 2009년 2월 결정문을 통해 김씨의 아버지에 대해 "동일 사건으로 두 번 재판을 받았다"고 밝혀냈다.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했던 김씨 아버지는 민간인인데도 군법회의 재판을 통해 학살되었던 것이다.

김아무개씨는 "어머니가 1992년 72살에 마산에서 돌아가셨을 때 자식들에게 유언을 했다. '아버지 무덤도 없는데 나도 무덤을 안 하겠다. 그냥 화장해서 산에 뿌려라'고. 마산진동 화장장에서 화장해 인근 산에 뿌려드렸다"고 구술했다.

"한 젊은이가 단지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김아무개(창원)씨는 큰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26살이었던 큰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가 끌려갔고, 끝내 바다에 수장되었던 것이다.

그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의식 있는 한 젊은이가 단지 사회주의 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남겨두고 끌려가, 차디찬 바다에 수장 당한, 이 무자비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고 했다.

그 뒤 큰아버지 가족의 어려움은 이만저만 아니었다는 것. 그는 "남겨진 이들, 아직 어린 두 아이와 졸지에 청상이 된 아내, 후일 큰 아들은 신산한 삶을 살다 아버지가 끌려가 죽임을 당한 그 나이쯤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끌려갈 즈음에 태어나 아버지 얼굴도 모른 채 자랐다"고 했다.

가슴 아픈 큰아버지 가족의 이야기를 한 그는 "이 참혹한 현실이 그냥 우리 가족만의 비극이란 말인가. 이제 국가와 살아남은 자들이 답해야 한다"며 "국가는 진상을 밝히고 죽은 넋을 위무하고, 남은 가족들에게 완전한 사죄와 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버지를 잃은 노아무개(창원)씨는 "민간인 학살이 일어난 당시, 돌아가신 장소라도 알아야, 최소한 자식 된 도리로 술이라도 한 잔 바치고 싶다. 진실을 밝혀내고 싶다"고 했다.

박아무개(창원)씨는 29살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오빠 이야기를 했다. 오빠는 당시 마산 산호동에서 돼지도 키우면서 간장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오빠는 회사 반장이 장부를 가져와 보도연맹에 가입하라고 해서 했다.

그는 "오빠는 죄도 없는데 끌려가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남겨진 딸이 고아로 크면서 고생한 것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며 "오빠가 너무 억울하게 죽어서 맨날 한이 많아 우리가 어디 가서 말할 때도 없었다. 정부에서 조사를 해서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아버지를 잃은 신아무개(창원)씨는 "엄마한테 전해 들었다. 아버지는 대구형무소에서 재판을 받으려고 하는데 6‧25가 터져 재판도 못 받고, 그 길로 어떻게 되었는지 행방을 몰랐다고 한다"고 했다.

안아무개(마산)씨는 아버지가 학살당하면서 오랫동안 '딸이 아닌 아버지의 동생'으로 살았던 기막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안씨는 '유복자'로 태어났고, 오빠가 있었다.

나중에 오빠가 군대를 가야 하기에 동생이 있으면 안된다고 해서, 할아버지는 안씨를 호적에 '아버지의 딸'이 아닌 '동생'으로 올려놓았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그가 결혼할 때까지 몰랐다고 한다.

안씨는 "할아버지의 손녀라고 중매로 결혼을 했는데, 혼인신고 하려고 보니까 할아버지의 손녀가 아닌 딸로 되어 있었다. 그런 걸 누가 이해하겠느냐. 그래서 사기라는 말까지 나왔다"고 했다.

안씨는 "아버지의 동생이 아닌 딸로 남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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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작가회의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사건을 다룬 사화집 <잊을 수 없는 아픔, 밝혀야 할 진실>을 펴냈다. ⓒ 윤성효

 
창원 '세병이골 집단학살' 관련 증언도 나와

창원 '세병이골 집단학살' 관련 증언도 나왔다. 한국전쟁 당시 창원군 상남면 퇴촌리에 살았던 마을 청년 다수가 세병이골로 끌려가 학살당했던 것이다.

안아무개(창원)씨는 당시 27살과 17살이던 두 형을 잃었다. 그는 "두 형은 보도연맹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지서에서 나온 순경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그냥 청년들이 보이기만 하면 잡아갔다"며 "어떤 마크가 찍혀 있는 트럭에 20~30여명이 실려 있었다"고 했다.

그는 "졸지에 온 동네가 초상집이 됐다. 다음 날 아버지, 어머니 등과 함께 지게를 지고 세병이골로 갔더니, 피투성이 시체들이 많았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가족 시체를 찾고 있었다. 순경이 있을까봐 밤에 갔는데, 처음에는 찾지를 못했고 형수가 허리띠를 보고 형님을 알아보았다"고 했다.

그는 "작은 형님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당시 마을 사람들 중에 세병이골에서 시신을 찾아온 유족들이 많았다"며 "이때부터 부모님은 속병이 났다. 어머니는 숯불 다리미를 배 위에 올려놓고 화를 가라앉히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아버지를 잃은 정아무개(창원)씨는 2017년 괭이바다에서 지낸 위령제에 참석했던 이야기를 하면서 "참가자 모두는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허공에 날려 보냈다. 그런데 유독 제가 만든 종이비행기는 멀리 날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맺힌 원한이 풀리지 않아서 갈 수가 없는 것 같았다"고 했다.

사회집에는 추모시도 실려 있다. 이규석 시인은 시 "아직도 산은 말이 없고"에서 "… 연민과 용서와 화해라는 부드러운 말을 생각한다/굳게 입을 닫은 저 말 없는 능선들 앞에/아직도 무거운 바람소리 쟁쟁한/아득한 절벽을 본다"고 했다.

이상호 시인은 피학살자들이 수장된 괭이바다를 떠올리면 쓴 시 "바다는"에서 "바다는 기억한다/그날 그 죽음을/바다는 알고 있다/피 터지는 함성들을/거칠 것 없는 열망들을//그래서/바다는 그 자리를 지키고/늘 그 자리를 맴돌고…"라고 했다.

진실화해위는 2009년 2월 창원지역 민간인 학살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마산형무소에 구금되어 있다 학살당한 358명의 '잘못된 죽음'을 비롯해 '최소 717명 이상이 학살당했다'고 진상규명 결정했다.

이후 결성된 창원유족회는 해마다 합동위령제를 지내고 있으며, 유족 24명은 2015년 12월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가를 상대로 '형사재심소송'을 냈고, 이 재심사건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허성무 창원시장은 책에 실린 축사를 통해 "사화집이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과, 한 마디 하소연도 하지 못하고 고통의 세월을 살아온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뒤길 바란다"며 "국가폭력으로 얼룩진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교훈을 새기는 산교육의 자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진실화해위원회 #창원유족회 #경남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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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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