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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네덜란드의 자기반성... 일본이 공부해야 할 판결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강제징용에 사과 않는 일본... 마우마우 재판·라와게대 판결 살펴보니

등록 2019.10.30 19:45수정 2019.10.3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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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는 전범기업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을 명령했다. 이를 두고 일본은 비상식적인 판결이라도 나온 듯이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2년 5월 24일에 나온 대법원 민사2부(주심 김능환)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2012년 대법원 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부인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는 내용이었다. 이 환송 판결에 따라 서울고법이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자 전범기업이 대법원에 재상고한 결과로 2018년 판결이 나오게 됐다. 두 개의 대법원 판결 사이에 6년이란 긴 시간이 소요됐던 이유는 박근혜와 양승태라는 두 이름에서 찾을 수 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의 거부감은 지난 24일 이낙연-아베 회담에서도 나타났다.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이날 회담에서 아베 신조 총리는 "국가 간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대법원 판결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위반된다는 종전 입장을 되풀이했던 것이다.

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 당시 한국인이 일본 안에서 갖고 있었던 재산상 권리와, 일본인이 식민지 한국 안에서 갖고 있었던 재산상 권리에 대해 양국 정부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하는 협정이었다. 강제징용·강제징병·위안부 문제 등과는 무관한 협정이었다. 그런데도 아베 신조는 그 협정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전제 하에 "국가 간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발언했다.

일본의 완강한 태도는 이낙연-아베 회담 이후의 분위기에서도 느낄 수 있다. 28일자 <교도통신>는 "일·한 양국 정부가 전 징용공 문제를 둘러싸고 사태 수습을 위한 합의안의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28일 밝혀졌다"면서 "한국 정부 및 기업이 경제협력 명목의 기금을 창설하고 일본 기업이 참가하는 안이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그런 뒤 "(이것은) 1965년 일·한 청구권협정으로 배상문제가 모두 끝났다는 일본정부의 입장에 근거로 한 사고방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이 강제징용 손해배상을 추가로 해야 할 법적 책임이 없다는 전제 하에 경제협력기금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한 제국주의 시대의 흔적
 

<야후 재팬>에 실린 <교도통신> 기사. ⓒ 야후 재팬


배상금이 아니라 경제협력기금으로 식민지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는 점에서 <교도통신> 보도 내용은 한국이 수용할 수 없다. 29일자 국내 언론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함께 그런 방안을 검토한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29일 정례회견 자리에서 해당 보도와 관련해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반박했다.


<교도통신> 보도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꿀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이 보도는 한국 측 반응을 떠보기 위한 보도일 가능성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보도가 나오는 사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적어도 현재까지는 일본 정부가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배상하는 것이 세계적 대세가 되어 있지는 않다. 1830년부터 132년간 알제리를 식민지배하면서 30만(프랑스 주장) 혹은 150만(알제리 주장)의 알제리인들을 학살한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2012년 알제리를 방문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재임 2012~2017년)은 "식민통치가 알제리인들에게 끼친 고통을 인정한다"면서도 "사과하러 온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은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사과하면서도, 1884년부터 31년간 나미비아를 식민통치하면서 7만5000여 명을 학살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배상하지 않았다. 사죄 방침을 밝혀놓고도 여전히 미적대고 있다.

그런 독일이 유대인 학살에 대해서는 신속히 사과한 것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유대인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으니, 나미비아는 무시할 수 있어도 유대인은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뿐 아니라 프랑스·독일 등도 식민지배 청산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제국주의 시대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그 후예들이 여전히 세계질서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 중에서 중국을 뺀 나머지는 예전에 제국주의 세계침략에 참여했던 나라들이다. 러시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에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에 섰지만, 그 전에는 영국·독일·프랑스와 다름없는 제국주의 국가였다. 미국 역시 1898년 이후로는 제국주의 침략에 가세했다.

그런 제국주의 후예들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으니, 그들이 잘못을 사과하고 배상할 필요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니, 오로지 일본 하나만 파렴치하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2010년대 들어, 의미 있는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 대법원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선언한 이 시기에, 제국주의 세계 침략의 본거지였던 유럽 국가들에서 식민지배를 반성하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조선에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한 1895년, 아프리카 케냐는 영국 보호령으로 전락했다. 케냐가 독립한 것은 1963년 12월 12일이다. 이 68년 중 가장 인상적인 독립투쟁은 1952년 10월 개시된 '마우마우' 투쟁이다. 마우마우라는 단체가 주도한 이 투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영국군은 1만1000명(영국 주장) 혹은 9만 명의 케냐인을 학살했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 진보적 판결들
 

마우마우 봉기 당시, 순찰 중인 영국군. ⓒ 위키백과 영문판(퍼블릭 도메인)


한국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고령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처럼, 마우마우 투쟁의 한을 평생 간직한 피해자들이 2009년 영국으로 건너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정희라 경희대 교수의 글 '마우마우 재판의 교훈: 영국의 과거사 반성과 보상'은 이들이 겪은 참혹한 일들을 이렇게 소개한다.
 
"원고 중 가장 연장자인 파울로 느즐리는 영국군에게 가축들에게 쓰는 펜치로 거세를 당했고, 움부구닌기는 죽도록 맞고 주검들 가운데 버려졌었다. 그리고 여성인 제인 마라는 당시 15세의 나이에 끓는 물이 담긴 병을 질 속에 넣는 성고문을 당했던 피해자였다."

-이주사학회가 2013년 발행한 <호모 미그란스> 제8호.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러 영국까지 건너온 이들 앞에서, 영국 고등법원은 대영제국의 잘못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한국 대법원 민사2부 판결이 나온 지 4개월 보름 뒤인 2012년 10월 5일 영국 고등법원은 영국 정부가 배상 의무가 있다고 선고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2013년 6월 윌리엄 헤이그 외교장관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피해자에 대한 금전 지급 및 기념관 건립 등을 약속했다.

이 같은 영국 정부의 태도와 관련해 염운옥 고려대 역사연구소 연구교수는 2015년 <영국 연구> 제34호에 실린 '식민지 폭력 피해와 배상 - 케냐 마우마우의 사례'라는 논문에서 "마우마우 사건으로부터 약 60년이 흐른 뒤 영국 정부는 케냐인 식민지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받아들였다"며 "식민통치 시기에 고문 피해에 대한 개인 배상에 합의한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16년 기준으로 소송에 나서는 마우마우 피해자는 4만1000명이 넘는다. 상당한 액수의 배상금 지급이 수반되어야 하는 사안인 것이다. 그런데도 영국 법원이 그것을 각오하고 배상 판결을 내린 점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흐름이, 인도네시아를 350년 이상 식민지배한 네덜란드의 법원에서도 나왔다. 네덜란드는 1946년과 1947년에 인도네시아 라와게데 등에서 발생한 독립투쟁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이때 참혹한 경험을 겪은 피해자들이 2008년 네덜란드로 건너가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헤이그 지방법원은 네덜란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법원은 소멸시효의 경과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피해자 구제에 적극적이었다. 강병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네덜란드의 인도네시아 식민지배 배상판결에 관한 연구'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라와게데 판결은 법과 역사 양쪽에 모두 걸쳐 있으며, 네덜란드 국가와 사회에 대해서 그동안 외면했었던 과거를 직시하도록 촉구하는 면이 있다. 라와게데 판결은 라와게데 사건보다 더 넓은 견지에서 네덜란드 국가와 사회가 자신의 식민통치시대를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국제법평론회가 2014년 발행한 <국제법 평론> 제40호.
 
물론 영국 고등법원과 네덜란드 지방법원의 과거사 판결이 제국주의 후예 국가들의 일반적인 태도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일본의 태도가 잘 반영하듯이, 과거의 제국주의 국가들은 지금도 여전히 사과와 반성에 소극적이다.

또 영국·네덜란드 법원의 판결은 아시아·아프리카의 국력 상승에 부응하는 것인 측면도 없지 않다. 경제력과 정치력이 상승하는 이 지역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판결이 나온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영국·네덜란드 법원의 판결은 한국 대법원 판결이 갖지 못한 중요한 의의를 담고 있다. 식민지배를 당한 피해자 국가가 아니라 가해자 국가가 자기 반성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영향을 받는 데다가 일본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 강한 나라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상당히 용감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청산을 추동하는 한국인들의 에너지가 대법원을 용감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2010년대 들어 한국을 비롯한 세계 일부 국가에서 제국주의 침략을 단죄하는 판결들이 나오는 것은 세계의 미래를 밝게 하는 징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이 대세를 이룬다면, 일본 정부도 지금의 태도를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일본이 그런 흐름을 쉽게 따를 것 같지 않다. 국가 간의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느니 경제협력기금으로 처리하는 방안이 있다느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은, 일본 정부가 세계사의 최신 흐름에 뒤처져 있음을 느끼게 하고도 남는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진보적 판결들이 일본 같은 '후진국가'를 탈바꿈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강제징용 #청구권협정 #식민지배 청산 #마우마우 #라와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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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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