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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투쟁 10년의 기록... "탄압보다 더 힘들었던 건"

[현장] 다큐멘터리 영화 <졸업>... 사학비리와의 정면승부, 처절하게 싸웠다

19.10.29 19:18최종업데이트19.10.2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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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졸업>의 주역들. 왼쪽부터 박주환 감독, 전종완 상지대 전 총학생회장, 박병섭 교수, 진광장 교직원. ⓒ 시네마달


'민주화의 성지 상지대학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사학비리의 온상'에서 '사학 자치의 상징'이 된 상지대학교는 입학식 등 학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위와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건다. 박정희 정권 시절 임시 이사로 파견된 김문기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사실상 족벌 경영, 공금횡령, 부정입학 등 온갖 불법 사례가 이어진 이 학교가 민주화 상징이 된 이유는 다름 아닌 학생들과 양심적 교수, 교직원의 저항 덕이었다.

29일 오전 서울 용산 CGV에서 언론에 선 공개된 다큐멘터리 <졸업>은 그 저항정신의 10년을 되새기는 작품이었다. 

시사회엔 상지대학교 졸업생이자 연출을 맡은 박주환 감독, 전종완 전 총학생회장, 박병섭 전 부총장, 상지대학교 1988학번인 진광장 교직원이 참석했다. 이들은 대학 구성원이 이뤄낸 성과의 의미를 나누고, 투쟁 당시 힘들었던 점을 토로했다.

<졸업>은 2009년, 그러니까 이미 한 차례 부정행위로 구속됐던 김문기씨가 이명박 정권을 등에 업고 다시 상지대학교로 들어오게 된 직후부터 물러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보통 학내투쟁이 학교 측과 학생 측으로 나뉘는 양상이지만 상지대학교는 달랐다. 김문기씨를 반대한 다수의 학생과 교수진, 김문기씨 편에 선 소수의 부역자 구도였던 것. 다만 보수 정권의 비호 아래 김문기씨는 교육자가 아닌 마치 황제처럼 군림했다.  

"학교가 정상화됐는데도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며 편집 작업을 했다. 스스로도 정리가 안 됐는데 이 과정을 세상에 공개해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던 박주환 감독이었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던 그는 순전히 동문이 처절하게 투쟁하는 영상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고 카메라를 들게 됐다고 한다. 

승리의 기억들
 

영화 <졸업> 출연자인 박병섭 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시네마달

 
총학생회가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저항정신은 바뀌지 않았다. 결국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총장 및 이사진이 정리되고 승리를 맛볼 수 있었다.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전종완씨는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해 부모님에게 제 이야길 하거나 (김문기 총장 옹호 교수 및 교직원에게) 주먹질 당하고 고소와 고발을 당해 경찰, 검찰 조사를 받기 일쑤였다"며 "무기정학을 당한 뒤 학생들 앞에 섰는데, 아무 것도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을 때가 제일 힘들었다"라고 고백했다.

"아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며 학교에서 부모님께 전화했을 때 부모님은 아들은 성인이니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는다고 답해주셨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선배들과 학생들은 격려해주고 곁에 있어 주었다. 그게 큰 힘이 됐다. (영화에서 난간에 올라가 외치는 장면에 대해) 그 당시엔 참담한 현실에서 그것밖에 할 수 없었고, 그것이라도 해야 했다. 지금의 결과는 8천 학우와 교직원 분들이 합심한 덕이다. 취업 등 각자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신념으로 뭉쳤었다." (전종완)

사실 지금 학생들의 투쟁심과 행동력은 처음 김문기에게 맞섰던 선배들의 정신이기도 했다. 1993년 김문기씨 구속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진광장씨는 "1988년 상지대에 입학해 김문기로부터 재적도 당했다. 총장실, 이사장실을 점거하는 등 격렬하게 싸웠다"며 "김문기가 구속돼 학교를 떠나는 걸 봤고, 그가 복귀하는 걸 봤으며, 다시 해임되고 쫓겨나는 걸 봤다. 전례 없는 일일 것"이라고 상지대 투쟁의 역사를 읊었다.

"지금은 대학 민주화 성지라는 현수막 걸고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 사립 대학들에 비리가 만연하고 있잖나. 어떻게 이겼냐고 많이들 물어본다. 싸우는 게 쉽지 않다. 교수, 학생, 직원이 뭉쳐야지. 그래야 싸울 수 있고, 대학자치를 이룰 수 있을 거라 답한다."

박병섭 교수 역시 "1993년 승리의 기억이 있기에 다시 이길 것이라 봤다. 저도 교수직에서 파면당하고 그랬지만 하나도 겁나지 않았다"며 "(김문기씨 측에 섰던) 동료 교수들을 보며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함께 투장하며 이 사회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얻었다. 허위의식을 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함께 공부하고, 얼굴 맞댄 구성원이 어느 순간 서로 미워하고 갈라지는 게 힘들었다고 박주환 감독은 고백했다. 영화 출연자들은 대부분 탄압보다 고립감, 외로움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박주환 감독은 "2011년 당시 10개 학교가 사학비리 연대 투쟁을 했는데 끝까지 싸운 건 상지대밖에 없었다"며 "집 앞마당을 망치는 가장 빠른 길은 방치하는 것이다. 감시는 당사자의 몫인 만큼 구성원들이 더욱 감시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검찰과 경찰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자기 자리에서 비리나 불의에 눈감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박병섭 교수)

"어떤 문제를 발견했을 경우 쉽게 지나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곧 내 일이고 우리의 일로 다가올 수 있다. 현재 사학 비리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많은 관심과 격려와 응원 부탁드린다." (전종완)


영화 <졸업>은 오는 11월 7일 개봉한다.
 

영화 <졸업>의 박주환 감독. ⓒ 시네마달

 
졸업 상지대학교 민주화 사학비리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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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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