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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동성애 반대'라는 낡은 혐오를 멈춰라

[주장] 정치권의 성소수자 혐오 선동, 정치개혁으로 뿌리 뽑아야

등록 2019.10.30 14:00수정 2019.10.30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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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8일 오전 제주도청에서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중략) 국회의원 정수 줄이자고 했더니 늘리자고 하고, 군대 내 항문성교를 허용하자는 게 정의당"
 

지난 27일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선거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의원 정수 확대 문제가 당연히 논의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에 대해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본인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남긴 문장이다.

앞서 정의당 국회의원 6명을 비롯한 국회의원 10명이 합의 하에 이루어진 동성 군인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이른바 '동성애 처벌법' 폐지안을 발의한 것을 가리켜 '군대 내 항문성교 허용' 따위의 저급한 혐오표현을 남발한 것이다.

그러나 민경욱 의원의 표현과 달리, 군형법 92조의6은 동성 간 성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당사자 합의 여부에 관계 없이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는 법으로서, 국제사회와 국내외 인권단체로부터 수차례 폐지를 권고받은 낡아빠진 동성애 혐오의 산물이다.

지난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도 당해 조항이 사생활의 자유와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히면서 '동성애 처벌법' 폐지에 의견을 모았댜. 하지만 국회에서 입법 논의가 지지부진하면서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성애 처벌법'은 그 효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국회의 직무유기로 인해 2017년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장준규에 의한 육군 성소수자 군인 색출 사건이 벌어졌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하며 성실히 복무하던 많은 성소수자 군인들이 단순히 동성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부대 밖으로 불명예스럽게 내쫓기는 사태가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의당이 '동성애 처벌법' 폐지안을 발의한 것은 '군대 내 항문성교'를 허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성애 처벌법' 피해자의 존엄을 되찾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국회는 합리적 이유 없이 시민을 차별하거나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는 법률을 개정할 의무를 갖는다.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와 열망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지금, 우리는 국회가 그러한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혐오 선동 아니면 태업으로 점철된 한국 의회 정치를 개혁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논의는 의원 정수를 몇 퍼센트 확대 또는 축소한다거나,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을 각 몇 대 몇으로 정하는가에 그치지 않는다. 

'동성애 반대'만 외치면서 정작 해당 의제에 대한 정책적 고민이나 대안은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정치인의 언행을 심판하고, 옳은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 힘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이자 논의의 주제다. 확언컨대 이 일은 오직 민의의 주체인 시민만이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비단 성소수자 시민에게만 맡겨진 과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동성애 반대'의 끝없는 반복으로 인해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의 궤도에 오르지조차 못하고 사라진 법안의 상당수는 여성, 노동자, 난민과 이주민, 아동과 장애인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성애 반대'를 주창하는 '무자격 정치인'들에 맞서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내야 한다고 본다. 보다 힘 없고 소외된 시민의 삶을 바꾸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딛고 발의된 법안이 '동성애 반대' 한 마디에 폐기되는 엉망진창인 국회를 바꿀 수 있는 첫걸음이 될 테니 말이다.
#민경욱 #군형법 92조의6 #성소수자 #선거법 개정 #정치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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