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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녀린 여공'... 김경숙의 죽음은 왜 이렇게 기록됐나

신경아 한림대 교수 "여성의 눈으로 여성 노동운동 재해석 해야"

등록 2019.10.31 08:15수정 2019.10.3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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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김경숙 열사기념사업회가 김경숙 열사 40주기를 맞아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란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 정대희

 
민주화 운동의 도화선이 된 김경숙 열사를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더불어 여성 노동자를 '여공'과 '꽃송이', '아가씨'로 묘사됐던 과거와 달리 '자부심'과 '책임감', '저항'의 상징으로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30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 JU동교동에서 김경숙 열사 40주기를 맞아 ''여공, 기억에서 역사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 날 행사에서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2019년 YH무역 여성노동자 김경숙을 다시 생각하다'는 주제로 발제문을 발표했다. 그는 "여성노동자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한 서린 처녀의 삶을 끝낸'... 남성중심적 시각으로 김경숙 죽음 평가

이날 신 교수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노동 주체로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기회와 자원을 평생 누릴 수 있고, 이러한 권리와 책임은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가혹한 노동 억압을 토대로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한 박정희 정부 산업화 시대를 종식한 정치적 저항운동의 맥락에서, YH 무역 여성노동자의 투쟁과 김경숙 열사의 실천을 다시 조명해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경숙 열사는 지난 1979년 박정희 유신정권 때 'YH 무역'의 부당한 회사 폐업 조치에 항의하다가, 경찰의 강제 진압과정에서 추락사한 노동자다. 이 사건은 부마항쟁을 촉발했고, 이후 10.26 사건으로 결국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관련 기사: 박정희 몰락의 도화선, 김경숙 사망사건) 당시 김경숙 열사의 죽음은 '투신자살'이 원인인 것으로 보도됐으나, 뒤늦게 진실이 드러났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위원회가 국가 권력이 김경숙 열사의 사망 경위를 은폐했다고 밝힌 것이다.

신 교수는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을 바라보는 남성연구자들의 시선이 '연민'에 가깝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남성연구자들의 서술에 대해 "어린 나이에 취업해 공장 생활에서 가혹한 착취에 시달리다가 일으킨 강렬한 저항, 많이 배우지 못하고 자본에 맞설 기술도 없었던 어린 여성들의 '일시적 집단행동'으로 표현한다"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이런 70년대 어리고 가여운 여성노동자의 이미지는 '전태일의 신화'에서도 나타난다"라고 설명하며 "김경숙 열사의 삶과 죽음에 내포된 시대적 의미도 1979년 22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시점에 '박제화'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YH노동조합사(1984년)' 책 첫 부분에 실린 두 편의 글은 남성 지식인이 가진 여성노동자에 대한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라며 "고은 시인은 YH 여성노동자들을 '민족의 해당화'로, 김경숙을 '한 서린 처녀의 삶을 끝낸', '민족의 꽃송이'로 불렀다"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런 안타까운 해석은 20세기로 끝나지 않는다"라며 2016년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의 오픈아카이브에 수록된 김경숙 관련 자료를 지적했다. 이 자료에선 동일방직과 YH 무역 여성들의 노동운동에 대해 "가녀린 여공들을 짓밟았던 유신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술 시중을 들던 젊은 모델과 여가수의 품에서 독재자가 쓰러짐으로써 종말을 맞았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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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숙 열사의 YH무역 사원증 ⓒ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

 
여성노동자 '연민' 대상 아냐... 경제적 자부심 있던 집단

신 교수는 '여공'과 '공순이'란 표현도 문제 삼았다. 그는 "여공'은 산업화 시대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행사했던 폭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표현"이라며 "'여'를 붙이는 것 자제가 직업적 지위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오지만 이것이 70년대 '공순이'로 불렸던 '공'과 만나면서 성별이라는 범주와 노동자라는 계급의 위계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집단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그러나 70년대 여공은 계급 사다리의 가장 밑바닥에 놓인 집단은 아니었다"라며 "가난한 농민과 도시의 빈민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직업을 가진 제조업 생산직 여성 노동자는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경제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신 교수는 YH 무역 등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을 연민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YH 무역 여성노동자들은) 가난한 가족의 생계부양자로서 고향 부모의 생활비와 남자형제들의 학비를 지원했다"며 "이러한 경제적 자부심과 일터를 지키는 욕구,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 등은 YH 무역 여성노동자들의 강력한 조직적 저항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신 교수는 여성들의 실천이 역사를 바꿔온 것을 강조하며, 성평등운동을 확장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40여 년 전 김경숙의 죽음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당겼다면, 2016년 강남역 청년여성의 죽음은 광장으로 다시 사람들을 불러왔다"라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주의 운동은 미투 운동과 일터에서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의 실천에 의해 확장돼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지금 주목해야 할 문제는 한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이다. 오늘의 20대 여성노동자들은 김경숙의 시대와 비교해 얼마나 달라진 조건 속에서 일하고 있나?"라며 "미투운동의 에너지를 일터에서의 성평등운동으로 연계,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심포지엄은 김경숙 열사의 40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와 지난 40년간의 여성노동운동을 돌아보고, 페미니즘 관점으로 여성노동자의 역사를 제대로 기록하고자 마련됐다.

YH 무역 노조위원장을 지낸 최순영 김경숙 열사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전태일 열사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알지만 김경숙 열사에 대해선 모른다"라며 "세상이 변화하는 데 여성노동자들이 역할을 했는데, 알려지지 않거나 잘못 알려진 게 있다. 이를 제대로 기억해 앞으로 여성노동자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신경아 교수와 김상숙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가 발제를 맡았고, 김상숙 교수는 '젠더 관점으로 본 1970년대 여성노동자운동: 민주노조운동을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아울러 서아현 성공회대학교 사회학과 석사, 정영훈 한국여성연구소 소장, 유경순 한국여성노동사 연구활동가,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이 토론 패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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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 도중 전경에 끌려나오는 YH 무역 노조원들 ⓒ 김경숙열사기념사업회

 
#김경숙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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