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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모들은 왜, '뽕짝 춤판' 옆에서 오열했나

[이면N] 인현동 화재 참사 20주기③ 눈물의 배삯 1만2000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등록 2019.10.31 17:38수정 2019.11.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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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N]은 뉴스의 이면을 봅니다. 그 이면엔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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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인천 팔미도 앞바다를 찾았다. ⓒ 김성욱

   
30일 오후 2시 30분 인천 팔미도 앞바다.

"아이고 지혜야... 엄마 왔어..."
"진선아... 흑흑흑"
"상윤아... 아빠다... 얘들아!"
 

대형 금색 물고기 장식을 한 203인승짜리 관광 유람선이 인천 바다 한가운데 잠시 멈춰 섰다. 검은 옷을 입은 가족들이 선내 2층 객실에서 1층 야외 난간으로 나와 푸른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20년 전 아이들 유골을 뿌렸던 바로 그곳이었다. 뱃머리에서 "뿌-" 고동 소리가 울렸다. 가족들은 오열했다.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주저앉은 어머니도 있었다. 물결치는 바다 위로 가족들이 하얀 국화꽃을 던졌다. 그때까지도 유람선 내부의 다른 관광객 수십 명은 영문도 모른 채 요란한 뽕짝에 맞춰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난간까지 새어 나오던 뽕짝 소리를 뚫고 가족들이 하나둘 울부짖었다.

"아이고... 잘 있었지... 흑흑흑... 엄마가 미안해..."

유람선은 단 5분 만에 다시 팔미도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있는 곳에서 멀어져 가는 유가족들이 또 한 번 울었다. 가족들이 탄 배는 연안부두와 팔미도를 왕복 3시간 여정으로 오가는 일반 관광 유람선이었다. 유람선은 유가족들의 부탁을 받고 잠시 멈춰 섰던 것뿐이었다. 바깥쪽 낌새를 알아챈 건지 실내의 들썩들썩했던 관광객들도 어느새 스피커를 끈 채 의식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헌화를 마친 유가족들은 서로 등을 두드리며 통곡했다. 가족들이 눈물을 닦으며 유람선 선내 2층 좌석으로 돌아왔다. 1층 실내는 곧장 다시 요란한 춤판이 됐다.

이날로 꼭 20주기를 맞은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들의 추모 현장 모습이다.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는 20년 전인 1999년 10월 30일 인현동 4층 상가 지하 노래방에서 난 불이 불법 영업 중이던 2층 호프집까지 번져 대형 참사로 이어진 비극이다. 당시 호프집에 있던 중고생 52명을 포함해 57명이 사망했고 78명이 다쳤다. 희생자 대부분이 인근 고등학교 십여 군데에서 가을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기 위해 모여든 고등학생들이었다.

참사 이후 수사 과정에서 불법 영업을 한 호프집과 경찰, 공무원 사이의 유착이 드러났다. 소화기 부재, 석고보드로 가려진 창문, 탁자나 의자가 잔뜩 쌓여 통행을 막던 통로도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됐다.

관광 유람선 타고 20주기 추모 헌화... "이건 아니야,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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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인천 팔미도 앞바다를 찾았다. ⓒ 김성욱

 
유가족들은 앞서 인천 중구청에 선박 지원을 요청했지만 협조를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인천 중구청 관계자는 지난 29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중구는 행정선을 갖고 있지 않아 인천시에 행정선 협조를 요청해 11인승 배를 준비했지만, 가족들이 요청하는 30인승 이상 배는 어로 단속 일정이 잡혀 있어 협조가 불가능했다"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희생자만 50명이 넘고 가족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데 11인승 배 한 척만 빌려준다는 게 말이 되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이날 20여 명의 유가족들은 자비로 1인당 만 2천 원씩을 내고 유람선을 탔다. 배를 타기 직전까지도 유가족들은 다른 단체 관광객들과 함께 시끌벅적한 유람선을 타고 가야 하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선박 예약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던 것이다. 유가족들이 단체로 팔미도 앞바다를 찾은 건 지난 2014년 15주기 추모제 이후 5년 만이었다.

"우리끼리 하다 보니까 이런 거까지 다 확실히 신경 못 쓰는 거지. 다들 나이도 들었고... 우린 당연히 가족들끼리만 조용히 타고 가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이거 참..."

고 김춘효양의 아버지 김폰삼(63)씨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다른 날도 아니고 오늘이 20주기인데... 마음이 너무 아파. 너무 속상해."

고 오상윤군의 아버지 오덕수(64)씨는 배 뒷머리에서 줄담배를 피우며 가슴을 쳤다. 객실 좌석에 앉은 다른 유가족들은 준비해간 소주를 종이컵에 따라 마시며 서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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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인천 팔미도 앞바다를 찾았다. ⓒ 김성욱

 
"괜찮아. 괜찮아. 좋게 생각하자고. 팔미도 관광 왔다고 생각하자. 우리들끼리 언제 시간 내서 이런 데 놀러 나오겠어. 자, 들어 들어."

고 김태연양의 아버지 김동한(67)씨가 주변에 술잔을 따르며 말했다. 유쾌한 성격의 그였지만 딸 얘기가 나오자 여러 번 말문이 막혔다.

"우리 딸 너무 예뻤지. 그때 열아홉이었으니까 살았으면 벌써 서른아홉이겠네. 내가 택시를 하는데 매일 아침 학교에 태워다 줬어. 너무... 응어리가 졌지. 지금도 이게 어떻게 풀리지가 않아. 자네도 그러지? 어딜 가나 마음 한쪽엔 걔가 항상 있어. 흑흑흑... 이게 어떻게 안 돼. 지금도 생생해. 애가 죽었다는데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어. 코밑에만 까맣게 그을었어. 질식을 해서 그랬다지...

너무 후회되는 게 하나 있어. 우리 애가 중3 때 파마를 해 갖고 집에 왔는데 내가 엄청 심하게 혼을 냈거든. 학생이 무슨 파마냐고 난리를 쳤지. 내가 아주 엄했으니까. 근데 지금 와서는 그게 너무너무 후회가 돼. 애가 얼마나 더 살 거라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줄걸. 머리 그까짓 게 뭐라고 말이야, 참... 그게 너무 못이 박혔어."


소주를 털어 마신 그가 흐느꼈다. 잔잔한 파도에 유람선이 출렁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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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 20주기였던 이날 20여 명의 유가족들은 자비로 일반 관광 유람선을 타고 팔미도 앞바다에 나가 헌화해야 했다. ⓒ 김성욱


유가족들은 유람선 관광 일정이 끝나는 오후 4시 40분에야 다시 연안부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직도 눈가가 촉촉한 이도 있었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고 노이화양 어머니 김순복(67)씨 "그래도 바다에 가서 실컷 울고 오니까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후련해요. 집 가면 또 쌓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시원해. 우리 딸 잘 있을 거야."

고 정혜미양 어머니 허영숙(63)씨 "가을이 얼마나 좋은 계절이에요. 근데 우리 가족들은 이맘때 되면 웃질 못해. 시간이 많이 지나서 다른 사람들이랑 단풍 구경도 가고 같이 웃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우리 애 생각이 나는 거야. 그건 아무도 이해를 못 해요. 유가족들끼리만 알지. 20년이라지만 그건 똑같아. 매년, 아니 매일 아파."

고 이지혜양 어머니 김영순(65)씨 "김해에서 올라왔어요. 바다에는 오랜만이니까 와야죠. 인천에서는 더 못 살겠으니 이사를 갔어요. 그날만 생각하면 아직도... 거기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그리됐거든요. 제 가슴이 무너져요. 그 어린 것이 집안 형편 생각해서 돈 벌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못한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서... 흑흑흑."

고 김춘효양 아버지 김폰삼(63)씨 "부모는 자식을 못 잊어요. 쉽게 말해서 내가 죽어야 우리 딸을 잊지, 내가 죽어야. 아내도 결국 2013년에 세상을 떴어요. 몰라, 거기서 아마 만났겠지. 지금은 손주, 손녀들 보는 맛에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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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인천 팔미도 앞바다를 찾았다. ⓒ 김성욱


가족들은 늦게나마 인천시로부터 사과를 받아 다행이라고 입을 모으기도 했다. 이날 오전 인천시 중구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열렸던 20주기 추모제에서 허종식 인천광역시 균형발전정무부시장은 "참사 당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인천시를 대표해 너무 늦었지만 희생된 청소년들의 어머니, 아버지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관련 기사 : 인천 인현동 참사 20주기 추모제... "못난 어미 용서해줘"). 고 오상윤군의 아버지 오덕수(64)씨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가족들이 그렇게 사과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에요. 너무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가슴이 좀 시원했어요. 추모 공간도 개선해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지켜봐야죠. 솔직히 그 말을 그렇게 믿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얘길 했는데... 그래도 믿어봐야지 어쩌겠어. 내년엔 그저 올해보단 나았으면 좋겠어요.

솔직히 우리 유가족들이야 지금까지 숨어 지내다시피 한 거죠. 오늘도 봐서 아시겠지만 남아있는 가족들도 별로 없잖아요. 애들이 호프집에 있다가 죽었다는 식으로 매도해버리고 손가락질했었으니까... 그게 너무 한이에요.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었겠어요. 다 어른들 잘못이었는데... 오늘에야 조금 세상에 나온 느낌이에요. 앞으로도 많이 관심 가져주세요. 잊지 말아 주세요. 제발...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선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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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유골이 뿌려진 인천 팔미도 앞바다를 찾았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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