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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야자감독' 하다 번아웃증후군 진단 받았습니다

[70점 아빠 육아] 육아휴직 후 만든 책상, 미끄럼틀, 그네... 그리고 알게 된 것들

등록 2019.11.06 11:06수정 2019.11.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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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과 쉰의 딱 중간 나이입니다. 10살 아들과 5살 딸을 둔 아빠입니다. 저는 육아에 빵점 아빠였어요. 육아에 신경을 쓴 것은 솔직히 3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서 주로 3학년을 맡으며 일명 '야자감독'을 하느라 9시 이후에 퇴근하는 날이 많았고, 애주가라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자정을 훌쩍 넘겼죠.


주말엔 피로감에 낮잠으로 보내고 육아는 아내의 몫이었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컴퓨터를 켜고 수업 준비를 하는데 시간을 보냈지요. 죽어도 교실에서 죽겠다는 신념을 갖고 학교, 학생들 생각으로 가득차 가정은 뒷전이었습니다. 소위 일하고 결혼한 셈이었답니다.  

2학년 부장을 하며 간염과 폐렴을 연달아 앓았는데도 다음해 3학년 부장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졸업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라고는 할까요? 고3부장을 지원하는 분도 없고요. 그런데 어느 날 출장을 갔다 오는 길에 심장이 이유없이 마구 뛰더라고요. 대리 기사를 불러 응급실에 가니 그런 증상이 사라지고 좀 쉬라는 말만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그래 다음 해에 육아휴직을 하자"고 결심했지요. 속내는 육아휴직을 내고 내 시간을 갖겠다는 심보였습니다. 3월부터 국내 일주 여행 계획을 세우고, 컴퓨터 안에 흩어진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겠다는 부푼 꿈을 꾸었지요.

그 못된 심보를 알았는지 2월에 일주일에 두세 번 전처럼 이유없이 심장이 뛰고, 터널을 들어갈 때 그 증세가 극도로 오르는 거예요. 병원 검사 결과 심장이 아니라 마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번아웃증후군 진단을 받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약을 처방받고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평소 하고 싶었던 목공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다들 수납장이나 선반 등을 만드는 데 저는 아이들 것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첫 작품이 책상. 두 아이가 함께 앉을 수 있는 책상입니다. 한쪽은 평면, 한쪽은 빗면으로 디자인하고 스케치를 했습니다. 목공선생님의 도움으로 한 달여만에 만들었답니다. 소위 말하는 대박이었죠.
 

첫 작품 양면책상 평면에는 우리딸이 인터넷감상을 빗면에는 아들이 그림을... ⓒ 추준우

 
아내도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책상이었습니다. 저는 포효하는 사자처럼 거들먹거렸습니다. 아내는 농담삼아 특허를 내 보라고 했습니다. 아들에게 못 박는 것도 가르쳐 주고 톱질하는 것도 가르쳐 줬습니다. 아이들은 몸으로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니까요.


다칠 수 있으니 조심하고, 다치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럽 어느 국가에서는 초등학교때부터 자전거를 분해하고 드라이버를 돌리고 망치질을 한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무 안전을 강조해서 손으로 스스로 터득하는 지혜를 가르쳐 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다음 작품은 미끄럼틀입니다. 목공선생님이 미끄럼틀은 처음이라며 난색을 보였지만 함께 만들었습니다. 어른이 타도 튼튼합니다. 적당한 길이와 각도, 높이를 산출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엄청 검색하고 종이를 찢어가며 스케치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미끄럼틀 만든다고 하니 집이 좁다며 반대했지만 막상 두 달간의 작업 끝에 갖고 오니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아내에게 농담 삼아 동심으로 돌아가기하며 아이들과 함께 탑니다. 이사할 때 불편하지 않냐고요? 미끄럼틀과 다리가 분리되게 만들었답니다. 아내가 책상처럼 천을 달아서 아이들이 그 속에서 자기만의 왕국을 만들어 놉니다. 아이들은 숨어서 노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아들과 딸이 "아빠 최고"라며 엄지척했지요.
  

미끄럼틀 올라가는 계단은 나름 코끼리?를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 ⓒ 추준우

   
그 다음은 그네입니다. 이번에도 목공 선생님은 "애들 것이네요. 그네도 처음인데..." 하고 또 한 번 갸우뚱하더라고요. 사진엔 보이지 않지만 숨은 기능이 있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게 판을 올릴 수 있습니다. 강도를 높였지만 8세 이상은 곤란합니다.

10살짜리 아들이 이젠 탈 수 없다고 아쉬워했지만 어쩔 수 없지요. 목공소 블로그에 '아버지의 선물, 그네의자 추준우 작'이라고 제작 과정과 글이 올라와 있어 몸둘 바를 몰랐지만 우리 딸은 영원히 기억하겠지요.
 

목공소에서 만드는 모습과 완성 후 우리 딸이 탄 모습 그네 뒷쪽에 붙은 판을 앞에 올릴 수 있어요. 책을 보며 탈 수 있죠. ⓒ 추준우

 
짬짬이 시간 내서 작은 연필꽂이, 화장대, 동물 등도 만들었습니다. 한창 목공에 빠져 있을 때는 아이들이 오늘 뭐 만들어 줄 거야 하며 달라붙었지요. 이렇게 크게 삼 종 세트를 완성하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2학기에는 복직을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목공도 하고 애들도 좋아했지만 가장 좋은 아빠는 재미있게 잘 놀아 주는 아빠입니다. 비싼 장난감도 아니고 재미있는 만화도 아닙니다. 몸으로 애들과 부딪는 것이 제일 좋은 육아임은 틀림없습니다. 

제가 무릎을 꿇고 말만 태워줘도 아이들은 서로 타려고 합니다. '몸쌓기'만 해도 아이들은 엄청 좋아 합니다. 마지막에 아내가 타면 '헉' 소리가 나오지만 5초는 참다가 쓰러집니다. 무너지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들립니다.

물론 아내와 가사 활동을 평등하게 서로 협력하여 하는 것은 기본이지요. 그럼 제가 100점짜리 아빠냐고요? 절대 아닙니다. 70점 정도. 제 방에 갇혀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할 때가 많으니까요. 반성을 하며 글을 마칩니다. 다음 이야기는 '용돈에 사랑 담기' 이벤트를 쓸까 합니다.
#육아 #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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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주로 입시지도를 하다 중학교로 왔습니다.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나누며 지식뿐만 아니라 문학적 감수성을 쑥쑥 자라게 물을 뿌려 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또는 따뜻하게 볼 수 있는 학생으로 성장하는데 오늘도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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