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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북한처럼 하자는 건가?" 그 악플에 답합니다

LAB2050이 발표한 국민기본소득제, 악플 사이에서 찾아낸 새로운 질문들

등록 2019.11.02 18:57수정 2019.11.0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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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노인을 포함한 모든 개인에게 2021년부터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
  
LAB2050이 지난 10월 28일 발표한 '국민기본소득제'는 이와 같은 의제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먼 미래에나 가능한 상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가운데 이 연구 결과는 당장 2년 후부터,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지 않고도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아서 꽤 호응을 얻었다.

10월 28일 오후 서울 대학로 공공그라운드에서 열린 '국민기본소득제 연구 결과 발표회 : 2021년부터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한 모델'에는 1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가 끝나기까지 대부분 자리를 지키면서 집중하는 모습이었고 수준 높은 질문과 의견들이 이어졌다.

국민기본소득제 연구 결과 발표회 현장 스케치 바로 가기

여러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기도 했다. 몇 건은 포털 사이트 '인기 기사'로 올라갔다. '네이버' 경제 섹션의 '가장 많이 본 뉴스'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 관련기사는 발표 다음날 포털사이트 경제분야 가장 많이 본 뉴스에 올랐다. ⓒ 이원재


*국민기본소득제를 다룬 기사들:
"전 국민 월 30만원 기본소득 지급.. 2년 안에 가능하다" (한국일보)
상위 12% 세금 더 거둬 기본소득…"재분배와 민간소비 활성화 효과" (한겨레)
"2021년부터 전 국민에 매달 30만원 '기본소득' 지급 가능" (경향신문)
"국민에 월 30만~65만원 기본소득, 현행 조세제도 손질하면 가능" (TV조선)

댓글 전쟁을 부른 이름, 기본소득

관심은 구설을 부르는 법이다. '인기 기사' 답게 댓글이 수천 개 달렸다. 거의 전쟁이었다.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이 악플이었다.


하지만 구설 역시 공론 아닐까? 악플 역시 중요한 국민들의 반응이다. 특히 기본소득제처럼 새로운 의제가 던져졌을 경우, 악플과 같은 반응들도 소중하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 정책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토론의 주제가 되고, 장단점이 분석된다. 그래야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악플이라도 글 한 줄을 쓰려면 제시된 내용을 파악해야 하고, 가치 판단도 해야 한다. 이 자체가 작은 공론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악플들을 자세히 읽어보기로 한 것은 그래서다. 그리고 몇 가지로 압축되는 비판에 대해서 해명을 해 보기로 했다.

기사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단 의미 없는 내용은 제외하고, 표현은 다소 거칠더라도 꽤 의미 있는 지적 및 비판을 담은 댓글들을 추려서 유형 별로 정리해 봤다. 댓글의 표현은 다소 순화하고 맞춤법에 따라 약간 수정했다. 이 칼럼을 읽는 분들의 피로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유형 1. 불공정성: 일 열심히 하는 사람만 손해 보는 제도 아닌가?
 
"고소득자가 봉입니까? 본인이 노력해서 소득이 높은 겁니다. 왜 그 소득을 나라에서 빼앗아 가려 하나요?"

가장 눈에 띄는 질문은 '일 열심히 하고 돈 많이 버는 사람에게 불리한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짚어볼 만한 지적이다.

먼저 국민기본소득제의 핵심을 잠시 소개하면,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한국 사회에서 빠르면 2021년부터 구현할 수 있도록 LAB2050이 고안한 제도다. 소득 격차 및 불평등의 심화로 한국 사회 역동성이 떨어졌다는 판단 아래, 경제적 활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제안됐다. 

세부적으로는 2021년부터 월 30만 원을 지급하는 안부터 2028년부터 월 65만 원을 지급하는 안까지 총 6가지 모델로 구성됐다. 이를 위한 핵심 재원은 소득세에서 온다. 각종 세액 공제, 감면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누진성을 강화하면 새로운 세목을 만들거나 명목세율을 올리지 않고도 재원의 상당 부분을 마련할 수 있다.

여기서 '누진성을 강화'한다는 점 때문에 위와 같은 비판이 나왔을 것이다. 즉, 소득이 높을수록 더 높은 비율로 소득세를 낸다는 원칙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소득세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에서 누진제 원칙을 따른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내는 것이 공정하다'는 원칙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명목세율은 누진적이면서도, 비과세 감면이 너무 많은 탓에 사실상 누진 구조가 깨져 있다. 공정성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국민기본소득제는 이런 구조를 바로잡고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다. 이 제도가 불공정하다는 주장은 세 가지 점에서 틀렸다.

첫째, 국민기본소득제는 너무 커진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 사회를 공정하게 만든다.
보편적 기본소득제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금액의 소득을 지급하는 제도다. 단순함이 가장 큰 장점이다.

재원의 부담 측면에서 보면 앞서 설명한 것처럼 고소득자가 좀 더 불리한 게 맞다. 소득세 비과세 감면을 없애면 고소득자가 누리던 감면 혜택이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련되는 재원만 (2021년 기준) 60조 원이다.

중요한 점은, 그렇게 불리해지는 고소득자의 기준선이 연소득 4700만 원(이하 2021년 월 30만 원 지급액 기준)으로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소득계층 중에서 상위 27%, 국민 전체 중 상위 12%에 해당하는 선이다. 

자녀와 노부모 등 부양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그 기준선이 더 높아진다. 2인 가족이면 연 9400만원, 3인 가족이면 연 1억4100만 원, 4인 가족이라면 연 1억8800만 원의 소득이 있는 경우여야 한다. 그보다 소득이 낮다면 기존보다 순소득이 늘어나는 것이 국민기본소득제의 구조다.

한국 사회는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가져가는 몫이 50% 이상일 정도로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선진국 중 가장 높은 소득 편중도다. 이런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이 공정성을 높이는 것 아닐까?
 

상위 10%집단 소득비중 국제비교 (출처: 홍민기 (2019), ‘2017년까지의 최상위 소득비중,’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2019년 2월호, 63?65.) ⓒ LAB2050

둘째, 국민기본소득제는 탈루 및 비과세 소득을 찾아 과세해 재원으로 삼는 방안을 포함한다. 공무원 복지 포인트, 해외 부동산 등 지금도 과세 대상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 한 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걷어 추가 재원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공정성에 부합한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지금 고소득자는 계속 고소득자인가 하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일자리는 점점 더 불안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창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도 불안을 느끼는 이유다. 

국민기본소득제가 시행된다면 돈을 잘 벌 때 세금을 더 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처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국민기본소득제는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에게 안전망이 된다. 따라서, "열심히 일 해 온 사람들을 인정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와도 부합한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다.

유형 2. 획일성: 평등만 추구하는 공산주의를 하자는 것인가?
 
"그냥 배급제, 공산주의 하자는 거잖아? 북한처럼 하고 싶은 건가?"
 
다음으로 많이 보인 댓글은 국민기본소득제가 '평등'만 추구하므로 획일적인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비판들이다. 

국민기본소득제는 기본소득은 동일한 금액을 지급한다는 점에서는 평등을 증진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선택의 자유를 높이는 역할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액수의 예산을 투입해 모든 개인에게 현금으로 지급할 때와, 정부가 공공일자리를 만들어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는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 보자. 어느 쪽이 더 획일적인 사회를 만들까?

옛 소련의 사회주의 계획 경제는 후자였다. 그와 달리 기본소득제는 모든 사람에게 소득을 보장하고, 그 각자 소득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한다. 이쪽이 사회에 다양한 활동이 많아지도록 하는 데는 분명히 효과적이다.

특히 기본소득은 행정비용을 최소화하므로 선별 작업, 관리 감독 등을 하던 행정 조직을 축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면에서도 계획 경제를 위해 비대한 행정 체계가 유지하던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국민기본소득제는 가처분소득을 늘려 시장을 더 활성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국민기본소득제 연구는 이 제도가 실행됐을 경우 소비성향(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중장기적으로 소비성향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높아진 구매력 덕에 자영업도 활력을 얻을 것이다.
 

2021년 국민기본소득 도입시 소비성향 변화 전망(출처: LAB2050) ⓒ LAB2050

 
유형 3. 현금 지급의 문제: 돈을 그냥 나눠주면 누가 일을 하겠는가?
 
"청년수당 줘 봤더니 술 먹고 밥만 먹더라. 사지육신 멀쩡한 젊은 사람들한테 왜 돈을 주냐?"
"평생 백수 즉,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늘어나는지 계산은 빠트렸군. 생산성 저하 현상이 분명 발생 할텐데?"
 
유럽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제를 '복지함정'(빈곤수당을 유지하려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을 극복하기 위한 도구로 본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정책실험은 실업자들이 취업을 해도 기존에 받던 소득이 유지되도록 함으로써 취업 의지가 강해지는지를 보려는 것이었다.

과거 보수적 경제학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기본소득제와 유사한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지지했던 것이나, 최근 그레고리 맨큐 같은 보수적 경제학자들조차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된 이유가 여기 있다. 게을러지게 만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일하게 만드는 제도라는 이유다. 

특히 노동시장에 일대 전환이 필요한 한국 사회에서 기본소득은 전환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제조업 고용위기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재훈련, 청년들이 좀 더 여유 있게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게 해주는 자원, 처우가 낮은 일자리에 매여 있는 기존 직장인들이 과감하게 전직을 시도하게 해 주는 안전망이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노동시장은 더 활력 있게 돌아갈 수 있다.   '선플'에서 발견한 미래를 보는 시각들

국민기본소득제에 대한 악플도 많았지만, 찾아 보면 '선플'도 적지 않았다. 게다가 이 댓글들은 상당히 논리적이었고, 이번 연구보다 더 넓게, 더 멀리 사회를 내다보고 있기도 했다. 대표적인 몇 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세금이 투명하게 잘 쓰이기만 한다면 많이 떼어가도 불만 없다. 선별적 복지 대상자들을 향한 시기와 혐오도 사라지겠네. 세금 감면 못 받아도 기본소득 월 30씩 받으면 직장인들은 오히려 이익일 듯. 연말 정산 환급액이 1인당 360만 원 되는 사람 드무니까."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 없어질 것입니다.  행정비용 아껴서 국민에게 돌려줍시다."
"일자리는 점점 사라지고 나라경제가 돌게 하려면 어쩔수 없는 순서인거 같다. 어떻게든 소득을 분배해야 지출하고 돈이 돌고 돌지. 욕만 할것이 아니라 어떻게 헤쳐나갈지 모색해야 될 시점이다."
"뭐든 직접 줘라. 유치원, 사립학교 지원하는 대신 학부모들에게 직접 주고, 국가에서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돈 내보내지 말고 그 예산을 국민들에게 직접 줘라. 그럼 어려운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이다."
 

이원재 LAB2050 대표가 국민기본소득제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이우기

기본소득 공론화를 시작할 때  

댓글들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기본소득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흔적들이 엿보였다. 어째서일까? 아마도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이 워낙 절박해서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점점 불평등 구조가 굳어지고, 활력이 떨어지는 문제의 근본에는 낡은 분배 구조가 있다. 경제 구조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근본적으로 변화했지만 분배 구조는 그대로다. 최근 밀려드는 기술 변화와 국제 환경 변화 속에서 이 괴리는 사회 문제를 더 커지게 만든다.

분배 체계 변화에 있어서 핵심은 "한국사회에서 역동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이다. 그 전제 조건은 국민 개인의 경제적 안정이다. 모든 개인에게 조건없이 지급하는 국민기본소득은 그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임금이나 사업소득이 1차 분배, 사회복지급여가 2차 분배라면, 국민기본소득은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인 이상 보장되는 '0차 분배'다.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기여해서 모두를 위한 안정성을 만드는 것이다.

앞의 댓글 중에서 "뭐든 직접 줘라"라는 부분을 읽으며 공자 말씀 하나가 떠올랐다.
 
"子曰 誰能出不由戶 何莫由斯道也."
"공자가 말씀하셨다. 누구든 방문을 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다. 그런데 왜 다들 그 길을 거치지 않으려 하는가? (<논어> 6편 15장 중)"
 
소득을 늘리는 정책은 수없이 많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소득을 직접 지급하는 것이다. 밖으로 나가려면 방문을 통해야 한다는 그 명백하고 유일한 사실처럼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됐다. 

* 국민기본소득제 연구보고서를 첨부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원재씨는 LAB2050 대표입니다. 이 글은 LAB2050 블로그(https://medium.com/lab2050)에도 실렸습니다.
#기본소득 #국민기본소득제 #LAB2050 #악플 #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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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민간 정책연구소 LAB2050 대표입니다.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쓰고 방송과 강연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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