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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일당과 달리 시민들은 궐기대회서 평화해결 모색했으나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48회] 대규모 학살이 예상되는 재진입 방침은 오직 집권욕에 있었다

등록 2019.11.10 16:44수정 2019.11.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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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궐기대회를 하고 있는 광주 시민들. 이같은 궐기대회는 목포 등 전남 지역으로 급속히 번져갔다. ⓒ 5.18기념재단 자료사진

전두환 일당의 12ㆍ12하극상과 5ㆍ17쿠데타 그리고 광주학살에 이어 다시 대규모 학살이 예상되는 재진입 방침은 오직 집권욕에 있었다.

"23일 소준열 전교사령관은 전두환, 황영시 등 신군부 실세로부터 '자필 메모'와 독려전화를 받고 김순현 전교사 전투발전부장에게 '상부충정작전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다. 소준열은 전교사령관에 취임하자마자 도청소탕 작전을 서둘렀다. (주석 8)

중앙에서 다시 '거대한 살육음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알 리 없는 광주에서는 평화롭게 사태가 종결되기를 바라고, 이를 위한 시민자치가 활기롭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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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들이 시민군들에게 주기 위해 밥을 짓고 있다. ⓒ 5.18기념재단 자료사진

 
이날 오후 5시 30분경 광주시 대의동 소재 YWCA 소강당에서 정상용은 김영철, 이양현, 윤개원, 박효선, 김상집, 이행자, 정유아, 정현애 등과 성명미상 청년ㆍ대학생 10명이 모여 그간의 도청 앞 시민 궐기대회의 성과를 분석한 후 시민들의 호응도가 높아 좋았다는 결론을 내린 다음, 계엄당국과 유리한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보다 더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시민 선동궐기대회를 계속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이를 준비하기 위한 위원회 집행부를 구성하기로 결의하고,

1. 기획부 : 이양현, 정상용, 윤강옥
2. 홍보부 : 윤개원, 박용준
3. 집행부 : 정현애, 정유아, 이행자

등으로 편성하였다. 윤강옥과 이양현은 기획부에 소속되어 시민 궐기대회의 일정 및 식순, 기타 선언문과 경과보고서 무안 등을 작성하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공소장) (주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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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18 당시 태극기를 들고 민주화시위를 하고 있는 광주시민들. ⓒ 5.18기념재단 자료사진

 
이날 오후 7시 30분 경에는 시민궐기대회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호남동 소재 보성기업 사무실에서 김영철은 정이윤, 이양현, 정상용, 정해직, 윤기현 등과 함께 광주사태에 관하여 논의를 가진 결과,

1. 무조건 무기를 반납하는 것은 투항이며 사북사태와 같은 처벌을 받게 되므로 정부당국 고위층으로부터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무기반납하자.

2. 정부, 군인, 국민, 광주 시민, 경상도민에게 광주사태를 알리는 글을 작성하여 궐기대회시 발표한다.

3. 적십자를 통해서 전국적인 헌혈운동을 전개하여 은연중에 광주사태가 유혈사태임을 알리고 생활필수품을 지원받도록 한다.

4. 인권운동 경력이 있는 재야인사와 학생을 영입하여 집회 및 시위를 주도하도록 한다는 앞으로의 대정부투쟁 방향을 결정. (공소장). (주석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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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 영상, <기억하겠습니다 5·18>. ⓒ 5.18기념재단, 기억하겠습니다 5.18

 
광주시민들의 평화로운 자치활동과는 달리 시외곽에서는 여전히 계엄군에 의한 살상이 자행되고 있었다. 두 가지 사례를 든다.

5월 24일 광주 외곽을 봉쇄하던 계엄군은 송정리비행장으로 퇴각했다. 계엄군은 후퇴하면서도 소리나는 곳을 향해 반사적으로 발포해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됐는데, 그중에는 국민학생(현 초등학생)들도 있었다.

11살의 전재추는 효덕동 공동묘지 부근에서 지나가던 공수부대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사인은 '좌요부, 우요부 관통상, 좌대퇴부 골절 총상'이었다. 방광범은 효덕동 저수지에서 목욕한 뒤 귀가하던 중 총격을 받았다. 그는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50세의 박연옥은 중학생 아들을 찾아 나섰다가 총소리에 놀라 하수구 밑에 숨어 있던 중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주석 11)

24일 이후 1시 30분경 시민군 11명이 군용트럭을 몰고 효덕초등학교 삼거리를 조금 지나 차를 세우고, 이 지역 주민들에게 상황을 물어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10분이 흘렀는데, 효덕초등학교 골목에서 장갑차 한 대가 나왔다. 이를 발견하고 모두 엎드렸는데, 장갑차가 약간 후진했다가 나오면서 캐리버 50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였다. 가까스로 피해서 주변 인가로 피신했는데, 이 차에 대고 계속 사격을 가하였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밖으로 포성이 울리고 계속해서 총소리가 났다. (주석 12)


이 사격으로 중학생을 비롯 수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였다.


주석
8> 앞과 같음.
9> 『광주5월항쟁전서』, 105쪽.
10> 앞과 같음.
11> 노영기, 앞의 책, 228쪽.
12> 1989년 2월 22일 국회광주특위 제28차회의 청문회에서 최진수 증언, 정상용 외, 앞의 책, 277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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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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