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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동란' 속에 떠오른 개혁, 이래야 성공한다

[기고] 박호성 서강대 정외과 명예교수

등록 2019.11.05 15:38수정 2019.11.0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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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를 밝힌 조국 법무부 장관이 10월 14일 오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최근 몇 달 동안 '조국 동란'에 맞물려 검찰개혁의 돌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런데 개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는 목표 및 주도세력의 두 측면으로 개혁을 조망할 수 있다.

첫째, 개혁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진보적 개혁과 보수적 개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미 뿌리내린 가치체계를 기존 사회질서의 테두리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청산하려는 것은 '진보적 개혁'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개혁노선이 이에 해당한다.

[개혁의 지향] 보수적 개혁은 '긴급수술'같은 것

다른 한편 5, 6공화국 시절의 집권세력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제창했다. 그러나 정권 자체가 반자유민주적이었기에, 공허하고 위장된 외침에 불과했다. 이렇게 형식적으로 선포된 기존 가치체계, 즉 자유민주주의를 새롭게 구현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수적 개혁'으로 규정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개혁 의지가 여기에 속한다. 가령, 보수적 개혁은 지배세력의 부도덕한 통치윤리를 미화시키려고 악용돼 왔던 형식적 자유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긴급 수술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지닌 약점과 모순을 그대로 껴안을 수밖에 없는 개혁이기 때문이다. 보수적 개혁이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긴 했지만 부분적으로 역사의 진보에 기여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그 이전의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 가 존재하지 않았던 허울 좋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진행 중인 검찰개혁의 외침은 보수적 개혁이다. 보수적 개혁은 이미 최고 가치로 선포된 것을 계속 긍정적으로 유지-발전시켜 나가거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유명무실했거나 등한시 해왔던 가치를 새롭게 확립하고자 애쓰는 것을 의미한다.

[개혁의 주체] 혁명보다 개혁이 어려운 까닭

둘째, 어떤 세력이 개혁을 주도하고 있는가 하는 측면에서, 우리는 개혁의 양면성을 파헤칠 수 있다. 개혁이 보수적 개혁과 진보적 개혁의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개혁 세력은 근원적으로 보수진영과 진보진영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당할 수 있는 이중적 가능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두 개의 이질적인 세력을 동시에 맞상대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혁은 대체로 적대세력 한쪽과 씨름질 해도 좋은 수구나 혁명보다 더 많은 난관에 부딪칠 수도 있다. 이것이 개혁의 객관적 어려움이다.

또 여기에 주체적 한계와 장애도 가세한다. 개혁이나 혁명세력을 막론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수립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집단들은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한다. 새로운 사회적 혁파를 위해 구질서를 대변하거나 이에 봉사하던 수구 기득권 세력을 제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세력들은 전문적 행정경험을 소유하고 있고, 주요 관계요로, 경찰, 군부, 경제계 등을 장악하고 있다. 개혁을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심지어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레닌과 볼셰비키는 짜르 치하의 전문 행정요원들을 재등용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기 권력 기반이 확고한 국민적 정통성 위에 뿌리내리고 있는 개혁세력은 국민 대중에 호소하고, 이런 힘으로 난관을 돌파해왔다는 것을 그동안의 역사는 잘 보여줬다.

우리나라처럼 오로지 수구적 지배체제로 일관해온 곳에서 새롭게 권력을 장악해야 하는 개혁세력은 대체로 경륜과 전문지식을 요하는 행정 실무경험을 거의 갖추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그럴 기회와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개혁은 일사불란하게 추진되기 힘들고, 전통적인 보수적 정치풍토로 인해 순수한 개혁의지가 분출되고 결집되기도 쉽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의 개혁은 바로 이런 객관적 난관과 주관적 결함으로 인해 뒤뚱거리고 있는 것이다.

[급진적 개혁] 살기등등한 개혁대상... 여론 형성이 중요

혁명은 폭력적-불법적으로 수행되는 사회 및 경제구조, 소유관계, 법질서 정치제도 등의 급격한 변화양상을 일컫는다. 혁명은 대중운동에 의해 수행되고, 폭력을 마다하지 않으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진보, 해방, 자유, 평등 등의 이상을 지향한다. 그러나 혁명은 대체로 첨예하고 광범위한 사회적 위기의 연속선상에서 터져 나온다.

혁명 주체세력은 목숨을 걸고 기존 지배질서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기존세력이 타도되던지 혁명세력이 박멸되던지 하는 생사를 건 양자택일의 가능성만 존재한다. 새로운 지배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정책과 노선을 추구한다면 혁명세력에 대해 어느 누구도 감히 거부하지 못한다. 이에 반대한다면 종말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급진적 혁명세력도 권력을 장악한 직후에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즉시 보수화 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개혁은 차원과 본질을 전혀 달리 한다. 개혁은 주어진 법과 제도 하에서, 그리고 개혁세력의 의도와 목표가 만천하에 공개된 상태에서 추진된다. 법과 제도라는 민주적 절차와 범주의 한계 안에서 수행되기에 살기등등하지는 않다. 개혁세력은 목숨을 걸고 개혁에 나서지는 않는 것이다. 평화적이다.

그러므로 개혁 지원세력의 합법적인 결집과 결속이 필수적이다. 대중을 이해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이해관계까지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론의 형성과 향배가 중요하다. 여론의 든든한 후원이 감지될 때 개혁은 전격적으로 추진되어야 하고, 부분적으로나마 일정한 성과를 보이기에 여론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개혁은 여론 확보 투쟁이기도 한 것이다.

평화적인 여론 형성 및 지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개혁은 장기간을 요하는 과업이다. 그러나 시간을 질질 끌게 되면 서로가 의도했던 개혁의 지향점에 차이가 있음을 간파할 수 있기에 개혁세력간에는 반목이 싹틀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개혁은 가급적 급속히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마디로 장기적 전술설정과 단기적 전략강행, 원대한 개혁철학의 제시와 급격한 개혁정책의 수행, 이것이 바로 개혁의 본질적 특성이면서 동시에 모순이다.

[반동의 힘] 똘똘 뭉치는 청산 대상과 개혁 세력의 허약한 결속력

반면에 수구 세력들은 시간을 확보하면 개혁을 저지시킬 수도 있는 강력한 전래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혁의 대상이 되는 집단의 의지와 자세가 강경하다는 말이다.

인간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이해관계와 공포다. 수구 세력들은 기득권의 상실과 개혁세력의 압력에 대한 공포로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그들로 하여금 과격한 자기수호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자기 이해를 수호하려고 무섭게 저항한다. 따라서 개혁 추진세력에게서 살기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혁의 청산대상에게서 살의가 번쩍인다.

수구세력들은 쉽사리 똘똘 뭉친다. 수구세력은 기득권이라는 탁월한 군비까지 갖추고 있다. 반면에 개혁은 민주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는 부담까지 안고 있다. 개혁 세력들은 수구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좌초하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개혁세력 자체의 자중지란이나 허약한 결속력이 가세하는 경우도 잦다. 역사적으로 보면, 반(反) 개혁세력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이 개혁의 가장 큰 실패 사유로 꼽히기도 한다.

[개혁을 위하여] 뿌리째 파고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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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시민들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광장 인근에서 열린 ‘제12차 공수처 설치, 검찰개혁 여의도 촛불문화제’를 마친 뒤 국회 앞을 지나며 공수처 설치 등 검찰개혁을 담은 입법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무엇보다 개혁세력을 단합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통일된 개혁철학이 절실히 요구된다. 아울러 시민단체 및 노동계를 포함하여 여야를 망라한 책임 있는 개혁세력들을 거족적으로 결집시킬 범국민적 방도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혁명만 급진적인 것이 아니다. 개혁도 충분히 급진적으로 과격하게 수행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역사의 발전은 개혁 쪽에 있다. 진보는 진보(眞寶)다, 요컨대 진짜 보석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급진적 수구를 상징-대변하는 정치인 및 그 주변집단과의 단호한 결별을 서두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온건 기득권 세력을 개혁세력화 하는 작업을 벌여나가야 한다. 동시에 서로 다른 진영이지만 합리적 개혁 지향성을 공유하는 집단이 있다면, 개혁 추진 세력의 저변 확장을 위해 이들과 결집하는 것이 급선무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체질과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세대교체와 정계개편이 바람직한 방안의 하나이다. 우리 정치문화의 가장 고질적인 질환은 권위주의와 지역주의와 온정주의이다. 능력 대신에 관록, 이념 대신에 지방색, 합리성 대신에 연줄이 우리의 정치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이런 구태의연한 정치행태를 근본적으로 청산하기 위해서 세대교체와 정계개편 등의 외과수술이 필요한 것이다.

특히 정계개편은 정치세계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불러올 것이기에 그 의의와 파장은 엄철날 것이다. 무엇보다 여당, 야당, 시민단체 및 노동운동권 등, 기존 정치권 및 재야세력을 망라하여 개혁지향성을 지니고 있는 정치․사회집단들이 총 단합하는 국면을 상정할 수 있다. 개별 집단들의 인맥이나 성장배경 등의 차이로 손쉽게 이루어지기는 힘들겠지만, 한국정치 발전을 위한 장기적 안목에서 바람직한 대안이 아닌가 여겨진다. 거국내각 구성은 그 과정상의 중요한 방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개혁을 추구하는 양심세력은 힘이 없고, 힘이 있는 세력은 양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특히 국민복지 증진을 위해 전력을 경주할 때, 개혁세력에 대한 범국민적 지원이 깊어질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는 개혁의 토대 확산뿐만 아니라, 개혁세력의 대동단결을 위한 확고한 기초 작업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른바 '좌파'의 자세를 아우르며 과격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영어 '래디칼'(radical)의 어원은 '뿌리째 파고든다'는 의미를 가진 '라딕스'라는 라틴어다. 뿌리까지 파고들어 속속들이 따지고드는 단호한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에게도 옛적부터 이러한 '급진적인' 정신이 전통처럼 살아 숨쉰다. '발본색원'(拔本塞源)하는 정신이야말로 우리들의 자랑거리 아니었던가. 우리 민족은 전통적으로 급진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혁명의 불가능성을 전제한다면, 보수적 기득권세력에 맞서는 유일하게 효율적인 방략은 개혁밖에 없다. 개혁이란 보수세력이 수호하려는 기존 가치체계를, 그 가치체계가 허용하는 가장 과격한 수단에 호소해서 대중적․평화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급속한 변화가 내습하는 시기에 멈칫거리기만 하면 낙오될 수 있다. 어쩌면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사자의 용기보다 뱀의 간지가 더욱 필요한 시대인지 모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혁은 역사발전과 진보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작용할 엄중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 뱀이라도 되자. 뱀의 간사스러운 지혜마저도 아쉬운 시대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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