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친구 문제로 잠 못 잔다'는 너에게

[은경의 그림책 편지] 조은수 글, 채상우 그림 '친구란 뭘까?'

등록 2019.11.09 16:04수정 2019.11.09 16:04
1
원고료주기
수많은 그림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때 이 글을 씁니다. 이번 글은 엄마의 이름으로 열세 살 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 기자말

운동을 막 마치고 집에 왔을 때였나? 네 아빠가 놀란 표정으로 와서 말하더라.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라고.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네가 친구 문제를 상담했다는 거야. 그것도 1시간 동안이나. 평소 과묵한 너의 '다른' 모습에 아빠도 놀라고, 그 사실을 들은 나도 놀랐지. 넌, 내가 오길 기다렸다가 말하고 싶었는데 참을 수가 없어서 아빠에게 먼저 고민을 털어놨다고 했어. 물론 내가 오자마자 나에게도 그동안 있었던 긴 사연을 털어놨지만.

너의 복잡다단한 그간의 일을 정리하면, 너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고, 너 말대로 "나는 난데", 자유로운 영혼인데, 친한 친구가 자꾸 너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힘들다고 했어. 네가 다른 친구랑 이야기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고, 가끔은 일부러 너를 배제시킬 때도 있다고 했지. 왕따, 은따 이런 문제는 아닌 것 같았어. 놀 때는 또 잘 논다고 했으니까(이게 더 신기하네).

요점은, 너는 다른 친구는 물론 그 친구와도 계속 잘 지내고 싶은데, 자꾸만 너를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친구가 불편하고 힘든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거였어.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엄마는 고민이 됐어. 네가 네 입으로 처음 털어놓은 친구 고민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

그동안의 인생 경험을 토대로 어떤 데이터를 뽑아낼지 머릿속을 풀가동시키고 있는데 갑자기 네가 "아, 내일 그 친구랑 한번 이야길 해봐야겠어"라며 방으로 들어갔어. 응? 대화를 해본다고? 불편한 친구와 담을 쌓지 않고, 속으로 '꿍' 하고 있지 않고, 대화로 풀겠다고? 멋있네. 엄마는 그런 네 모습이 기특했어. 요즘 아이들이 모바일과 인터넷 등을 많이 사용하면서 친구와 문제가 생겨도 직접 대화로 해결하기 어려워한다는 이야길 들어서 그랬는지 너의 태도가 반갑고 좋았어.

그런데 '대견하다'라고 느낀 마음이 잊힐 때쯤 네가 또 말했어. 다시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나아지지 않는 친구 모습에 정말 힘들다고. 그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난 운동회에서 우연히 만난 담임 선생님께 이 말을 들었을 때 엄마는 좀 충격이었어.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은이가 친구 문제때문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들대요." 그래도 선생님은 다들 성품이 좋은 아이들이라 스스로 문제를 푸는 등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보자고 하셨어. 걱정되는 마음에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 없는 거냐'라고 물으니, 선생님인 자신도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하셨지. 엄마는 그저 가벼운 갈등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너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

'고민하면 뭐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닌데 뭐...'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계속 엎치락뒤치락하길 몇 번. 그즈음 도서관에서 이 책이 눈에 띄었어. <친구란 뭘까>. '그러게 친구가 뭐길래 우리 딸이 잠도 못 잘 정도로 고민을 하는 걸까' 속엣말을 하면서 책을 집어 들었어.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

친구란, 남극 펭귄이 북극곰을 만나러 떠나는 여정같은 것
 

'친구란 뭘까?' 겉표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표지부터 심상치 않아. 검은 표범과 노란 표범. 성격도 생김새도 너무 맞지 않을 것 같은 표범 두 마리가 세상 편안한 모습으로 서로에게 기대고 있어. 두 눈을 감고. 지금 이 순간이 좋은 느낌을 주는 표정이야. 둘은 좋은 친구 사이 같아. 작가는 말하지. 친구란, 달달한 코코아를 마시는 것처럼 달달한 거라고. 친구란, 눈이 잘 안 보이는 두더지가 삐뚤빼뚤 쓴 연애편지를 왕눈이 올빼미가 두 눈 부릅뜨고 읽어주는 거라고.

친구란, 남극에 있는 펭귄이 북극에 있는 곰을 만나러 머나먼 길을 찾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친구 사이에 늘 좋은 일만 있다고 말하지도 않아. 친구지만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등을 질 때도 있고, 가끔은 숨이 막혀도 안 그런 척할 때도 있다고 하지. 하지만 또 친구란 말이야. 도무지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이룰 수 있게 돕기도 해. 신나는 일은 또 꼭 같이 불러서 하기도 하지. 다 맞는 말이지 않아? 친구란 바로 이런 거 맞지?

이 그림책 글을 쓴 작가 조은수님은 동화를 오래 지은 분이라고 해. 나이도 50세가 넘으시대. 인생에서 먹을 것과 친구를 제일 좋아한다는 작가는 오랜 시간 동안 겪은 친구 이야기로 원고를 썼다고 해. 그래서인지 엄마가 읽어도 참 좋았어. 
 

친구란, 눈이 잘 안 보이는 두더지가 삐뚤빼뚤 쓴 연애편지를 왕눈이 올빼미가 두 눈 부릅뜨고 읽어주는 거야. ⓒ 한울림어린이

 
"걔는 왜 그럴까?" 하고 네가 물었지? 그런데 은아,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 알려고 너무 애쓰지는 마. 알려고 해도 알 수 없고, 설사 알아도 네가 해줄 수 없는 문제인 경우도 많아. 너에게 집착하는 친구도 어떻게 하면 좋은 친구가 되는 건지 아직 방법을 찾지 못한 건지도 몰라. 나중엔 알게 되겠지. 좋은 친구는 집착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어쩌면 그때서야 너에게 한 일을 후회할지도 몰라.

은아, 친구의 마음을 억지로 알려고 하는 대신 '좋은 친구란 무엇인지' 질문하면서 네가 생각하는 좋은 우정은 어떤 것인지 계속 생각해 봐. 그러다 보면 네가 생각하는 좋은 친구를 발견할 수도 있고, 너 자신도 그런 모습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물론 이도 저도 다 귀찮고 힘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방법이야. 노력해도 안 되는 친구 관계가 있고,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친구도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혼자라고 느낄 때도 있을 거야. 그때는 기억하렴. 필요할 땐 가족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또 함께든 혼자든 중요한 건 너 자신을 잃어선 안 된다는 거야. 은아,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 이런 대목이 있더라.

"친구는, 마음의 피를 흘리지 않고는 절대 생기지 않는 법입니다. 몇 번의 억울함과 치사함, 화와 슬픔, 화해와 인정,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파도를 고스란히 맞고, 삼키고, 참아 낸 뒤에야 우리는 우리 옆에 친구란 존재가 어깨를 기대고 서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친구가 되고 나서도 아이들은 다투고, 화해하고, 용서하고, 때로는 다시 안 볼 것처럼 등을 질 때도 있지만, 그러는 동안 친구와의 관계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지요. 친구라는 존재는 이토록 대단합니다."

엄마가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여기 다 쓰여 있네. 그런데 엄마도 미처 몰랐어. 친구 관계가 이렇게 힘들고 대단한 일이라는 걸. 별로 세심하지 못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잘 못하는 엄마에게 10년도 넘게, 때론 15년도 넘게, 때론 20년도 넘게, 때론 30년 가까이 곁에 있어 준 엄마 친구들이 오늘따라 새삼 소중하고 위대하게 느껴진다.

'몇 번의 억울함과 치사함, 화와 슬픔, 화해와 인정, 기쁨과 즐거움이라는 파도를 고스란히 맞고, 삼키고, 참아 낸' 친구들에게 안부 문자라도 보내야겠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이야.

은이 너에게도 머지않아 좋은 친구들과 좋은 우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마. 시간이 너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립니다.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피의자와 성관계 검사'가 보여준 절대 권력의 민낯
  2. 2 조국 PC 속 인턴증명서 파일은 서울대 인권법센터발
  3. 3 김세연 '동반 불출마' 사실상 거부한 나경원... 패스트트랙 때문?
  4. 4 김남길 "이젠 저도 건물주 됐으면 좋겠어요"
  5. 5 '까불이' 정체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동백이의 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