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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오라잍136화

공유같은 신식 남편, 그게 내 아들이라면?

['김지영'과 나] 엄마와 다르지 않아야 할 아빠의 육아

등록 2019.11.09 20:06수정 2019.11.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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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82년생 김지영 > 속에서 발견한 저마다의 삶과 사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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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3일 호주의 만화가 마이클 루닉이 그린 그림에 분노한 파울라 쿠카(Paula Kuka)의 '반박' 일러스트. 이게 현실이다. ⓒ 파울라 쿠카 인스타그램 갈무리

 
여기, 한 장의 그림이 있다. 바다 건너 멀리 호주의 한 만화가가 '요새 엄마들은 아기가 유모차에서 떨어져도 인스타그램을 한다지'라며 그린 만평에 분노한 '반박' 그림이다.

아이는 AI가 아니다. 정수기처럼 특정 주기에 맞춰 자동세척되지도 않고, 알파고처럼 스스로 학습하며 바둑을 두지도 않는다. 우리가 일평생 그래 왔던 것처럼 누군가의 노동을 통해 자란다.


여기, 한 편의 영화가 있다. < 82년생 김지영 >. 이 영화에도 한 호주 만화가가 삐딱하게 봤던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가 나온다. 멀리서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팔자 좋다"는 비난(이라 쓰고 모욕이라고 읽는다)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바다를 건너든 건너지 않든 '엄마'에 대한 편견은 비슷해 보인다.

'이것은 페미니즘 영화다'라며 별점 테러를 당한 < 82년생 김지영 >. 애석하지만 테러에 참전한 이들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내가 봤을 때 이 영화는 철저한 '가족 드라마'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인 '김지영'(정유미)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주변 가족들의 분투가 담겼다. 김지영이 아이에게 감기약을 먹이고 뽀뽀를 하는 순간부터 시작된 나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2시간여 동안 목젖을 움켜쥐고 우느라 힘들었다.

< 82년생 김지영 >이 흡입력이 강한 건 극중 김지영이 일평생 맨몸으로 맞닥뜨려온 불공정 때문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불공정은 약 20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여 눈물 콧물을 쏟아내게 했다. 그런데, 눈물과 콧물로는 '반도의 불공정'을 해소할 순 없다. 세상에는 더 많은 '공유'(대현)가 필요한데, 그러려면 넘어야 할 벽이 있다. 5세 딸아이를 둔 아빠인 내가 넘어왔던 그 벽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앞으로 수많은 벽이 등장하겠지만).

아들에게 "너 평생 주부로 살 거야?"라는 엄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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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잔칫날, 처음으로 외출을 감행했다. 100일 동안 아이와 함께 부대끼며 바깥 바람 한 번 제대로 쏘이지 못한 아내는 무척 행복해 했다. 그 100일 동안 나는 출퇴근하며, 코에 바람이라도 넣을 수 있었지만... ⓒ 김지현

 
2016년 3월, 아직은 겨울의 발자국이 남은 골목길. 엄마는 내 손목을 잡아채며 아빠 차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엄마는 날 쏘아붙였다. "너 평생 주부로 살 거야?"라는 말과 함께.

전후사정은 이렇다. 그날은 딸의 백일 잔칫날. 양가 어르신들을 따로 따로 모시고 행사를 치렀다. 장인어르신과 장모님을 모신 잔칫상에는 배달음식이 올라왔다. "뭘 번거롭게 음식을 하냐, 그냥 맛있는 거 시켜 먹자"라는 장모님의 말씀 덕분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시부모님 모실 때는 배달음식 말고 상을 좀 차리는 게 좋겠다"라며 걱정했다. 뭔가 '정성이 깔려 있어야 서로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지 않을까'라는 우려였다.


신혼 때부터 우리 집 부엌일은 주로 내 몫이었다. 둘 중 요리를 더 잘하는 쪽이 더 자주하는 식으로 역할이 분담된 것이다. 하지만 괜한 불똥이 아내에게 튈까 봐 나의 부모님에게는 굳이 알리지 않았다. 내막을 모르는 엄마는 우리가 집에 오면 며느리인 아내를 불러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려 했고, 요리에 서툰 아내는 낯선 부엌에 멍하니 서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커밍아웃' 해야 한다면 새 식구를 맞이한 지금이 적기라고 판단했다. 마포농수산물센터에서 회를 떠오고, 매운탕 거리를 준비했다. 부모님은 생각보다 일찍 오셨다. 아내는 핏덩이 같은 아이를 돌보고, 나는 상을 차렸다. 그 후엔 아이를 받아 안아 아내부터 먹이고, 나는 아이를 안고 젓가락질을 했다.

최대한 고개를 빼야 했다. 피 같은 내 새끼 얼굴에 간장 한 방울 떨어트릴 수는 없으니까. 접시 위에서 회가 거의 사리질 무렵, 나는 다시 아이를 아내에게 맡기고 매운탕을 끓이러 갔다. 매운탕을 상에 올린 뒤엔 또 다시 아이를 안아 분유를 먹였다. 그러고는 설거지와 뒷정리를 했다.

부모님은 이 광경을 식사 중 TV를 시청하듯 묵묵히 지켜봤다. 보다 못한 엄마는 "설거지는 내가 하마"라며 팔을 걷어붙였지만 "내 살림은 내가 해"라는 말로 대꾸했다. 엄마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며 앉았다.

"너 주부로 살래?"라는 말은 부모님을 배웅할 때 나왔다. 사실 엄마의 말은 당신의 인생을 압축해 놓은 것과 같았다. 이론은 탄탄하나 실천은 요원한 아빠 옆에서 40년을 살아온 엄마였다. 그런 엄마에게 앞치마 두르고 잔칫상을 차리는 아들의 모습은 당신의 지나온 삶과 꼭 같았을 것이다. '넌 남자니까 좀 그렇지 않니?'라는 말을 최대한 에둘러 돌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내와 내 부모 사이에 갈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했다. 내가 주방에 있는 사이에 아내는 아이를 봤다고, 우린 똑같이 힘들다고 답했다. 엄마 아빠는 침묵했다. 그 일 이후로 내가 부엌일을 하는 것에 대해 부모님은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물론 우리 집에 와서 '차려진' 밥을 먹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아내 구출 작전, '아빠 육아휴직'의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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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중 가장 여유로웠던 시간. ⓒ 김지현

 
육아휴직 1년 동안 아내는 '빠삐용' 같았다. 끊임없이 집에서 탈출하려 했다. 아이의 투정이 심해지거나 유독 잠을 안 자는 시기가 오면 아내는 "더 이상은 못 참겠어"라며 아이를 내게 부탁하고 지갑만 든 채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출산 전 5년여 동안 취재기자로 일해온 아내였다. 도시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해오다가 갑자기 하루 8시간 이상 집에 갇혀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며 아기를 돌봐야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아내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일 새벽. 아내가 "여수 밤바다가 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난 아침부터 급히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아내를 기차역으로 보냈다. 탈출에 성공해 열차까지 탔던 아내는 수원역에서 발길을 돌리고야 말았다. '애엄마가 혼자 어딜 가냐'는 장인어르신의 걱정 때문이었다.

그후로도 아내의 '창살 너머 세상에 대한 갈구'는 계속됐지만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서너 시간 혹은 한나절 외출하고 오는 게 전부였다. 아내는 '모성애가 부족한 걸까'와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라는 양가적인 감정 사이에서 매일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내가 얼른 복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사실 딸아이가 세상에 나오긴 전부터 나의 육아휴직은 계획돼 있었다. 사내커플인 우리 부부는 총 1년 4개월을 휴직기간으로 잡았다. 아내 1년, 나는 4개월(육아휴직 3개월+5년 근속 유급휴가 1개월)을 아이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아내가 힘들어 할 때마다 예정보다 일찍 복직해도 된다고 권유했지만, 아내는 약속한 기간만큼은 아기를 직접 돌보고 싶다고 했다.

2017년 1월 14일 밤. 아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이 복직일이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쉽게 잠들지 못했다. 다음날부터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육아휴직에 돌입하기 전 친구는 내게 물었다. "너희 회사는 육아휴직 하면 불이익 없어?"라고.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다행히도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 하지만 내가 육아휴직을 쓰지 않을 경우, 가족이 받을 불이익은 더 크다. 그럼 뭘 선택해야 할까. 적어도 내게는 육아휴직이 답이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육아휴직은 대성공이었다. 아내는 활기찬 모습으로 일과 육아를 병행해갔다. 또한 슬슬 말을 시작하고 생각이란 게 생긴 딸아이의 일상에 '아빠'라는 존재는 아주 깊게 각인됐다. 배고프면 아빠를 찾고, 슬프면 엄마를 찾고, 화가 나면 아빠를 찾는다(우리 집 샌드백이 바로 나다).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소아과 간호사 선생님들도, 집 인근 카페 직원들도 내 얼굴을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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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중 딸아이는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했다. 하원 하고 나면 동네 공원으로, 카페로, 어디든 쏘다녔다. 집안에만 있기에는 아이의 의지와 체력은 넘쳐 흘렀고, 어떻게든 나는 밖으로 나가서 아이의 에너지를 소진시켜야 했다. 육아하는 부모들이 공원에 나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82년생 김지영' 속 상황처럼 '벌어다 주는 돈으로 팔자 좋게'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 김지현

 
1분 단위로 뛰는 아빠, 절대로 이상한 게 아니다

나는 매일 아침, 시간을 1분 단위로 쪼개 산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내가 시키기 때문이다. 새벽에 출근하는 아내를 보낸 뒤, 아이와의 쌍방 투쟁이 시작된다. 한쪽은 1분이라도 일찍 깨워 등원시키는 투쟁, 다른 한쪽은 조금이라도 더 자고 조금이라도 더 아빠랑 놀아야겠다는 투쟁. 아이도 이 생활이 익숙해져서인지 아내가 쉬는 날에도 등원은 나와 한다.

아내는 뭐하냐고? 바로 옆에 사는 장모님의 도움으로 아이가 하원하면 아내는 최대한 일찍 퇴근해 아이의 저녁을 함께한다. 나 역시 퇴근종이 땡 하고 울리면 전력질주가 시작된다. '지금 저 9호선 일반열차를 놓치면 10분이 늦어진다'면서 개찰구까지 분주히 이동한다(9호선 국회의사당역에서 눈 풀린 상태로 종종거리는 수염 많은 아저씨를 봤다면, 그게 바로 나다).

집에 골인하면 먼저 사투(?)를 벌이고 있던 아내와 바통 터치를 한다. 아내가 아이와 하던 상황극을 이어 받아 목소리를 변조시키고, 아닌 밤중에 간식을 먹인다. 아내와 나, 둘 중 하나가 집안 정리를 하는 동안 다른 하나는 아이를 씻긴다. 온갖 교태를 부려가며 아이를 침대로 유인하고 나면 세 가족이 도란도란 모여 어린이집에서 벌어졌던 이야기를 나눈다. 아내와 나는 잠자리에 누워 졸음을 참아가며 동화책을 읽다 곯아떨어진다. 눈 떠 보면 아침, 다시 출근... 이 생활의 연속이다.

지금껏 30여 년 동안 누려올 것 다 누려온 나였다. 특히 남성이라는 이유로 누려운 특권은 가히 대단했다. 명절에 앉아서 나오는 음식을 족족 받아먹었고, 사회에 진출해서도 비교적 안착이 쉬웠다. 육아휴직을 쓰고, 아이의 주양육자로 인식되고 나니 "어머, 이런 아빠 또 없겠네" 같은 말을 자주 듣곤 한다. 사실 이것도 특권이다. 엄마가 하면 밑져야 본전이고, 아빠가 하면 뭘 해도 칭찬받는 것이니까.

저런 말을 들으면 으레 이렇게 답한다. "아뇨, 전 제 일을 하는 거예요"라고. 사실이 그렇다. 아내는 큰 그림을 잘 그린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적금을 붓고, 휴일이나 휴가 일정을 짠다. 설계에 능하다. 하지만 나는 설계보다는 몸 쓰는 일을 잘한다. 아이의 몸 상태를 살피고, 밀린 집안일을 한다.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을 하는 데 소질이 있다. 육아는 '지상최대의 노력을 엄마만 쏟아붓는 것'이 아니다.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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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네 돌을 바라보고 있는 5세 따님. 이제 이것 저것 명령질(?)을 하는 상전 중의 상전이 됐다. 그사이 내 등은 많이 굽었고, 아내는 손목이 자주 시큰거린다. ⓒ 김지현

 
물론 말은 쉽지만 무척 힘든 일이다. 우선 몸이 망가진다. 본격 육아에 돌입한 뒤로 등이 굽었다. 나와 키가 같았던 아내를 이제는 올려다 본다. 왼쪽 손목 관절이 자주 시큰거린다.

회사 동료 선후배들의 눈치도 봐야 한다. 계획했던 시각에 등원에 실패하면 "죄송합니다,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라는 카톡을 아침마다 보낸다. 열이 난다는 속보가 어린이집에서 날아오면 양해를 구하고 조퇴를 하는 일도 더러 생긴다.

1950년대생인 부모님은 아직도 내 행동이 그리 달갑지 않다. 아내와 부모님 사이에서 중재를 하고, 양쪽에서 나오는 불만을 온몸으로 틀어막아야 한다. 쉬운 게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더 많은 '공유'가 필요하다.
#육아 #82년생김지영 #육아휴직 #정유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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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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