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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국·피해국 함께 위자료 모은다? 문희상이 남긴 '숙제'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문재인-아베 선언이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되려면

등록 2019.11.06 12:00수정 2019.1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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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5일(현지시간) 오후 도쿄 와세다대학교에서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 문재인-아베 선언을 기대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특강을 하고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국회 제공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로 냉랭해진 아베 신조 총리를 달래기 위한 한국의 노력이 다각도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와세다대학 특강에서 아베 총리에게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자리에서 문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선상 회담을 제안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역구는 부산입니다. 아베 총리의 지역구는 시모노세키입니다"라면서 "현재도 두 지역을 오가는 연락선이 있는데, 이 배 위에서 이루어지는 한일정상회담을 상상해봅시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뒤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버금가는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하관(下関)으로 표기되는 시모노세키는 청일전쟁 종전조약인 1895년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과 부산을 잇는 일본 철도성 연락선을 '관부 연락선'이라 불렀었다. 지금은 민간 회사의 페리선이 왕복 운항하고 있다. 이 코스에서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버금가는 선상의 한일 정상회담을 열자는 게 그의 제안이다.

일본에 간 문희상의 세 가지 제언 
 

시모노세키의 위치. ⓒ 구글 지도

남북·북미 정상회담에 버금가는 한일 정상회담을 현대판 관부연락선 위에서 개최하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이뤄보자고 문희상 의장은 제언했다.

"그 정상회담을 통해, 첫째 1965년 국교정상화를 매듭지었던 한일 청구권협정과 1998년 김대중-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둘째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와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조치를 원상복구하며, 셋째 양국의 현안 문제(강제징용 피해자 문제 등)를 입법을 통해 근원적으로 해결한다는 대타결이 이뤄지기를 기대해봅니다."

2018년 10월 30일의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은 1965년 청구권협정과 무관하다. 이 협정은 불법적인 식민지배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다루지 않았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과 정부가 청구권협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이 협정을 위반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협정이 유효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한편,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에 입각해 한일관계를 복원하는 선언은 현대판 관부연락선 위에서 하자는 게 문희상의 첫째 제안이다.

그렇게 해서 원론적인 사항을 정리한 뒤 각론으로 들어가, 일본은 무역규제를 해제하고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 조치를 원상복구 하자는 게 그의 둘째 제언이다. 그런 다음, 강제징용 문제가 두 번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입법 조치를 취하자는 것이다. 한일관계 갈등의 궁극적 본령인 이 부분에 관해 그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입법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이미 집행력이 생긴 피해자들과, 향후 예상되는 동일한 내용의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들에게 위자료가 지급된다면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이 대위변제된 것으로 간주하고, 배상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법에 따른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오랜 논란이 종결되는 근거를 담아야 하겠습니다."

승소 판결을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가 지급되면 법적 문제가 종결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말을 한 뒤 그는 배상청구권에 소멸시효 제한을 두자고 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더 이상 청구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위자료를 마련하기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것은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같은 전범기업이 곧바로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아니다. 배상책임을 지는 전범기업뿐 아니라 여타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금을 거둔 뒤, 여기다가 양국의 국민성금, 화해치유재단 잔고, 한국 정부 자금까지 보태자는 것이다. 화해치유재단은 박근혜 정부 때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생겨난 재단법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의 제안은 양국 국민과 양국 기업의 기부금에다가 한국 정부의 기금을 보태자는 것이다. 그의 말은 구체적으로 이렇다.

"기금의 재원은, 첫째 양국 기업의 기부금으로 하되 책임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그 외 기업까지 포함하여 자발적으로 하는 기부금 형식입니다. 둘째, 양국 국민의 민간성금 형식을 더하겠습니다. 셋째, 현재 남아 있는 '화해와 치유 재단'의 잔액 60억 원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금을 운용하는 재단에 대해 한국정부가 출연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위자료는 위법행위를 전제로 한다. 위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다룬 한국 민법 제751조에 정신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이 규정돼 있다. 이것이 위자료다.

문 의장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그런 위자료가 지급되도록 하겠다는 발언을 도쿄에 가서 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동시에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일본이 범죄행위를 저질렀음을 명확히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발언이다.

그런데 기부금이나 성금과 달리, 위자료는 위법행위의 가해자가 주는 것이다. 법적 책임이 있는 전범기업뿐 아니라 양국의 일반 기업, 양국 국민, 한국 정부까지 금전을 내게 되면, 이것이 기부금인지 위자료인지 불명확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전범기업이 내는 돈 역시 위자료인지 기부금인지 덩달아 모호해질 수 있다.

위자료인지 성금인지 모호해지면, 징용 피해자들의 감정과 위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피해자들은 돈이 아니라 사과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들이 돈을 받게 되면 그 돈은 사과가 전제되는 위자료여야 한다. 문 의장의 제안대로 되면, 피해자들이 받을 돈의 성격이 모호해지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감정과 위신에 부정적 영향을 줄 여지도 없지 않다. 이런 문제점들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문재인-아베, 현대판 관부연락선에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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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4일 오전(현지시간)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아세안+3 정상회의 전 환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연합뉴스


한편, 그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자'고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선언은 그전에 있었던 일본 총리들의 사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21세기 한일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란 제목의 이 선언 제2조에 이런 부분이 있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를 했다."

일본이 반성하고 사죄한다고 했다. 일본 내부적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한국을 향해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소개된 이 선언 일본어본에 적힌 오와비(おわび, お詫び)는 사과로도 번역되고 사죄로도 번역된다. 따라서 한국어본에 '사죄'라고 적힌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이 선언에서는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줬다"고 인정했다. 한국 국민을 상대로 사죄한 것이다. 일본이 이런 식으로 사과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1993년 고노 담화에서처럼 '출신지를 불문하고' 사과하거나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서처럼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식으로 하지 않고, 한국 국민을 직접 명시해서 사과한 것은 1998년이 최초다.

그에 더해 이 선언은 구두가 아니라 문서를 통한 사과였다는 점에서도 높은 의의를 갖는다. 이전보다 훨씬 견고한 형식의 사과였던 것이다. 이 같은 획기적인 사과이기 때문에 이 선언 당시 '1998년 체제'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도 <김대중 자서전> 제2권에서 이런 평판을 소개하면서 만족해했다.

현대판 관부연락선 위에서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재확인하기를 바란다는 문 의장의 발언은 식민지배 역사에 대한 아베 신조 총리의 명확한 인식 표명을 희망하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아베가 적어도 오부치 정도의 발언을 해주기를 바라는 뜻을 표시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 사태를 어물쩍 넘어가지 않고 일본의 역사인식을 확인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려가 남는다. 지금 상황을 놓고 볼 때 아베로부터 오부치 수준의 발언을 듣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2018년 10월 30일 이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아베는 웬만해서는 사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아베를 비롯한 일본 극우는 전쟁에 대해 사과하는 것을 자학 행위라고 폄하한다. 우리는 사과하는 일본인을 양심적인 일본인이라고 부르지만, 그들은 그런 일본인을 자학적인 일본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역사관도 자학사관이라고 부른다. 이 같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아베 신조가 관부연락선 위에서 일본의 지난날을 과연 어느 정도나 반성할지 현재로서는 의문이다.

실제 NHK의 6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 내에서는 문 의장의 제안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라고 전해진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과 잠깐 대화를 나눌 때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입장을 바꾸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처럼 문희상 국회의장의 제안은 현재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위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위자료를 주자고 한 것이나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자고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위법행위 책임이 없는 사람들한테서까지 기부금을 받아 위자료 재원을 만들자고 한 것이나 아베로부터 1998년 선언의 재확인을 받겠다고 한 것은 현재로서는 숙제를 남기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제안이 한일 양국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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