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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도 '계엄의 음습함' 느낄 뻔했네요

계엄과 삼청교육대에 관한 어떤 기억

등록 2019.11.07 10:07수정 2019.11.0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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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진압한 계엄군 탱크들1980년 5월 28일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한 계엄군 탱크들이 도로에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1980년 봄은, 분명 흉흉했다. 어른들은 숨죽였지만 한쪽에선 수군거렸다. 어딘지 근심이 어려 있었다. 당시 열세 살 소년이었던 필자의 눈에도 불안은 마찬가지였다. 딱히 무엇을 알아서가 아니라 암울한 분위기가 공기 중에 흘렀고 그렇게 전염되어 있었다.

그 해 5월, 전국에 계엄령이 확대되었다. 철부지 나이라 계엄이 뭔지는 몰랐지만 어른들이 나누는 말에 난리, 군인들, 독재와 같은 단어들이 섞여있는 것은 들을 수 있었다. 그 나이 또래가 그렇듯이 짐짓 안 듣는 척 귀를 열고 단어들을 주워 담았다. 아이들끼리 얘기에서 어른들의 세계를 아는 것처럼 말하는 애가 주도권을 잡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2학기가 시작됨과 거의 동시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예의 어른들에게 주워들은 단어들을 친구들 앞에서 늘어놓았다. '군사독재' 이런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뭘 알고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우쭐거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먹히는 것 같았는데, 웬걸 반장 정현이가 끼어들어 말을 가로 막았다. "잡혀가 말조심해!" 순간 다른 녀석들도 주위를 살폈다. 그 모양이 마냥 어른들과 닮아있었다. 우리들은 수군거렸고 숨죽일 줄 알았다. 그게 흉내이건 본능이건 당시 우리는 그랬다.

가을운동회도 열렸다. 백군과 홍군이 '소고기 잔치'를 벌였다. 저학년은 오자미로 바구니를 터트렸고, 고학년은 곤봉을 들고 마스게임 같은 것을 했다. 역시 운동회의 백미는 계주였고, 우리 반 대표로 또래보다 머리하나가 더 컸던 상택이가 나가 역전극을 벌였다. 마치 자기자신이 뛴 것 마냥 우리 반 모두는 숨 가쁘게 기뻐했다. 그러나 최종승리는 종합점수에서 백군이 앞섰다. 청군인 우리 반은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건너편 멀리에서 육상계주보다 더 숨 가쁘게 어떤 사내가 질주하고 있었다. 얼마 안가 뒤를 힐끗거리더니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몸을 숨기는 듯 했다. 이내 호루라기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방범아저씨 두 명이 헐떡이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거의 반사적으로 손가락으로 도망치던 사내가 숨어든 골목을 가리켰다. 길은 막혀 있었다.

잠시 후 의기양양하게 방범아저씨들이 사내를 끌고 나왔다. 그는 별다른 저항도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비썩 마른 몸을 한 사내였다는 이미지뿐이다. 우쭐대는 마음에 부모님께 알렸는데, 그리 썩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으셨다. 잘했다는 칭찬 한마디 들을 줄 알았는데, 마냥 서운하고 섭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에 소문이 돌았다. '건너동네 어느 집 둘째아들이 군대에 끌려가 정신교육을 받고 왔는데 반쯤 넋이 나가있더라.' 뭐 그런 얘기로 기억된다. 무서웠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던 이 같기도 했다.

사실 두려웠던 것은 그가 돌아와 해코지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었다. 말 못하는 고민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중학생이 된다는 생각으로 들떠있던 겨울방학, 9시뉴스는 계엄이 해제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육교마다 '정의사회구현'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그 밑에는 '민정당' 창당을 축하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진짜 그런 사회가 오나했다. 물론 어른들은 여전히 수군거렸고 숨죽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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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신군부가 군부대내에 설치한 삼청교육대에선 많은 억울한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인권유린을 당했다. ⓒ 공개사진

 
정작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은, 1995년 1월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추운 날씨로 언 발걸음을 총총거리며 귀가를 재촉하는데, 유년의 골목에서 끌려나온 청년이 드라마 주인공 태수의 얼굴로 바뀌어 있었다.

최민수가 역을 맡은 태수가 계엄 상황에서 재판도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모진 고충을 받는 장면이었는데, 어려서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정신교육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손짓으로 그이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유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쩌면 그 사내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어린 필자의 유년에 대한 자기연민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2017년 탄핵정국에서 군이 실제로 계엄을 준비하고 일부세력에 의해 친위쿠데타가 모의되었다는 문건이 매체를 통해 전해져 많은 시민들이 놀랐고 한편으론 마음을 쓸어 내렸다. 바로 이 시점에, 뉴스를 통해 육군대장을 지낸 한 보수인사가 자신의 비위 사실을 검찰에 고발했던 군인권센터 소장을 '삼청교육대에 보내 정신교육을 받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접했다.

아직도 이런 사고를 하는 이가 많을 수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공교롭게도 그가 비난한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번에 충격적인 그 계엄문건을 공개한 이였다. 문득 기억의 자물쇠가 풀리면서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계엄의 음습함을, 내 아이들이 다시 20~30년 후에 추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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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인재 영입을 추진하다 보류된 박찬주 전 육군 대장이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63스퀘어 별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을 둘러싼 공관병 갑질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유성호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문화평론가이자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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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로 재직중이며, 현재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문화정치에 관한 칼럼을 아시아투데이에 연재중입니다. 출판한 저서로는 영화로 읽는 우리시회- 역설과 아이러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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