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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MBC 뉴스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던 이유

[언론개혁 2]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MBC 빛나게 하려면

등록 2019.11.10 19:13수정 2019.11.1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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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6일 방송된 MBC <뉴스데스크> ⓒ MBC

   
문화방송(MBC) 뉴스가 호평을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MBC 뉴스가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객관적 진실이나 시대 감각에 맞지 않는 보도들이 나오는 것이었다. 대략 10년 전부터 그랬다. 이명박(MB) 때인 2010년경부터 MBC는 MB의 C(Corporation, 기업)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친정권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공영방송의 면모를 스스로 깎아내렸던 것이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이승선·김재영 교수가 공저한 논문 'MBC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적 제안의 특성과 과제'는 MBC의 추락에 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MBC는 모호한 정체성과 여기서 파생한 주인 없는 회사, 노영방송 등의 비아냥거림에 시달리기도 했으나, 이는 곧 국가와 시장으로부터의 상대적 자율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MBC는 이를 자산으로 삼아 2010년까지 신뢰도·영향력·공정성 등 각종 지표에서 상위권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후 급격한 하향세를 보였다. 이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의뢰로 실시하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시청자 만족도 평가지수(KI)를 비롯해 미디어미래연구소, 한국기자협회, 시사저널, 시사IN이 해마다 실시하는 평가에서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나타났다." - 2017년 한국지역언론학회 <언론과학연구> 제17권 제2호.


MBC를 타락시킨 결정적 인물 중 하나가 김재철 전 사장(2010~2013년 재임)이다. 지난 9월 16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삭발식에 출현해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다.

황교안의 언론·홍보 특별보좌역인 그는 황 대표가 삭발한 뒤 마이크를 잡고 "아! 이게 살 나라가 아니구나"라면서 "지금도 묻고 싶어요. MBC 사장 최승호가 적폐냐? 김재철이가 적폐냐?"라고 외쳤다. 약 2분간 울분을 토해낸 그는 "제가 '황교안' 하면 '황교안과 같이 간다' 세 번만 외쳐주십시오"라고 주문한 뒤 그렇게 세 번 외치고 퇴장했다.

2019년 현재 '황교안과 같이 간다'고 외치고 있는 그는 2010년에는 '이명박과 같이 간다'는 목표 하에 MBC를 사상 최악으로 황폐화시켰다. 이명박의 심복인 원세훈 국가정보원장과 공모해 정부 비판 프로그램을 폐지하고, <피디수첩> 제작진과 방송인 김미화·김여진 등을 차별하고, 파업 노동자들에게 불법·부당한 인사 불이익을 가했다. MBC를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MB의 방송으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한국문화방송 주식 강탈한 5·16 쿠데타 주역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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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6일 김재철 전 MBC사장이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뒤로는 '김재철 구속'이라고 쓴 팻말을 든 MBC 노조원 등이 보인다. ⓒ 이희훈

 
그런데 김재철 사장만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니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든 MBC 지배구조 때문에, 김재철만큼은 아닐지라도 문제적인 사장들이 많이 배출될 수밖에 없었다.

MBC는 기업인 김지태가 1961년에 세운 한국문화방송에서 출발했다. 김지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부일장학회 장학금을 줬던 인물이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 "그분이 내 인생에 디딤돌을 놓아준 은인이었던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지난 3월 15일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때 곽상도 의원이 김지태를 친일파인 듯 몰아붙였지만, 김지태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말단 직원으로 5년간 근무한 적은 있어도 <친일인명사전>이 말하는 친일파는 아니었다.

김지태는 MBC를 오래 지키지 못했다. 1961년 5·16 쿠데타 주역인 박정희 장군이 그의 재산을 빼앗고 한국문화방송 주식도 강탈했기 때문이다. 이때 부일장학회도 박정희 쪽으로 넘어가 5·16장학회가 되고 정수장학회가 됐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MBC는 5·16장학회의 지배를 받았다. 자연히 박정희 손아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1969년경 경영난에 봉착하자 박 정권이 주식 70%를 현대·쌍용화재 등 11개 대기업에 넘겼지만, 의결권 없는 주식을 준 것이기에 MBC는 계속해서 박 정권 손아귀에 남아 있었다.

1980년에 전두환의 신군부가 청와대를 장악하자, 그 11개 대기업들은 MBC 주식을 국가에 헌납했고 이것은 KBS로 돌아갔다. MBC에 대한 정권의 지배가 KBS를 경유해 계속 이뤄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배구조 때문에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MBC

1987년 6월항쟁 이듬해인 1988년 12월 31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라는 공익재단이 설립됐다. KBS가 갖고 있던 MBC 지분 70%가 바로 이 방문진에 넘어갔다. 하지만, MBC에 대한 정권의 영향력은 여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정권이 방문진을 통해 MBC를 움직일 수 있는 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통로가 바로 방송문화진흥회법(방문진법)이다.

1988년 12월 26일 제정되고 당일부터 시행된 최초의 방문진법 제6조 제3항은 국회의장이 추천하는 4인과 방송위원회(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하는 4인을 방송위원회 위원장이 방문진 이사로 임명하도록 했다.

1987년 제정된 방송법 제12조에서는 방송위원회 위원 12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되 4명은 국회의장이, 4명은 대법원장이 추천하도록 했다. 국회의장과 대법원장이 추천권을 행사하기는 하지만, 방송위원 12명 전원에 대한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었다. 이 12명 중 한 명이 방송위원장이 됐다. 방송위원장과 방송위원이 대통령의 영향 아래 있었던 것이다.

최초의 방문진법에서는 방문진 이사 8명을 방송위원장이 임명하되 그중 4명은 국회의장이 추천하도록 했다. 방송위원장과 방송위원들이 대통령 영향 아래 있었으니, 방송위원장에 의해 구성되는 방문진 이사진 역시 친정권 성향을 띨 가능성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방문진이 1988년 12월 31일부터 MBC를 지배했으니, MBC가 권력의 수중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동안 MBC 뉴스가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그 같은 지배구조 때문에 MBC는 항상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등장한 지배구조는 현재도 별다른 변함 없이 유지되고 있다. 2014년에 개정된 현행 방문진법 제6조는 "이사는 방송에 관한 전문성 및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고 규정했다.

한편, 2018년에 개정된 현행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송통신위원회법) 제5조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및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이 두 규정은 청와대가 방통위와 방문진을 통해 MBC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를 남기고 있다. MBC의 공공성을 해할 수 있는 요소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김중배, 청와대의 영향력을 거부한 MB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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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13일 김중배 언론광장 상임대표가 서울시청 시민청 태평홀에서 열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특강-우리 공부합시다'에서 강연하고 있다. ⓒ 유성호

물론 MBC에서 항상 김재철 같은 사장만 배출됐던 것은 아니다. 존경을 받는 사장도 있었다.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 "김중배(金重培)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리도 좋더냐?"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김중배와 한자마저 똑같은 김중배 전 MBC 사장(2001~2003년 재임)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김중배는 <한국일보> 기자로 출발해 <동아일보> 편집국장이 됐다. 방송기자도 아니고 신문기자 출신이 MBC 사장이 돼서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2017년 <뉴스타파> 앵커였던 최승호 MBC 사장은 2017년 7월 <권력과 언론>이라는 대담집에서 김중배 전 사장을 '청와대의 영향력을 거부한 MBC 사장'으로 기억했다. 최승호의 말은 이렇다. 김중배가 사장에 임명되기 직전 상황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방문진 이사회 내부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청와대에서 해달라는 대로 해줄 거냐?'라면서 논의를 많이 했다고 해요. 동아일보 편집국장 출신인 김중배씨를 뜻 있는 인사들이 추대해서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고 사장을 만든 거죠. 청와대의 영향력을 거부한 건 김중배 사장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예요."

최승호의 말을 들은 전 MBC 노조위원장 박성제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자·PD들이 가장 마음 놓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뉴스를 했을 때가 김중배 사장이 계실 때였어요"라고 화답했다. 이런 MBC 사장이 등장한 것은 제도와 법률의 덕분이 아니었다. 정치 환경과 지지자들의 열성도 작용했지만, 김중배라는 인물 자체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김중배의 등장이라는 우연적 요소도 작용했던 것이다.

이런 우연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에 발생하는 것은 김재철 같은 인물의 일상적인 양산이다. 이런 우연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의 뜻에 영합하는 인물이 방통위와 방문진의 협력 속에 MBC 사장실에 앉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김재철과 이명박의 인연을 보여주는 일화가 위 대담 때 박성제의 입에서 나왔다.

"1992년에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당시 신한국당의 1993년 정풍운동을 주도했는데, 그때 부정축재 의원이라고 해서 몇 명을 날렸어요. 그 리스트에 이명박이 들어간 거예요. 잘리느냐 마느냐 한참 기사가 날 땐데, 갑자기 김재철씨가 후배 기자들을 술집으로 오라고 했대요. 그래서 가보니 이명박 의원이 스폰서로 나왔더라는 거예요.

김재철이 후배 기자들에게 '야, 우리 이명박 의원이 참 억울하게 됐다. 이야기 한번 들어봐라'라고 하고, 이명박이 술을 사주면서 해명을 하더라는 거예요. 이걸 MBC 대상으로만 한 게 아니고 김재철이 다른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과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고 해요. 이명박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웠겠어요."


다이아몬드가 MBC를 항상 빛내게 하는 방법

지난 9월 16일 삭발식 때 김재철은 '황교안과 같이 간다'고 외쳤다. 1993년에 그는 이명박과 같이 가는 언론인이었다. 그때의 인연 때문에 이명박이 2010년에 그를 MBC 사장으로 앉혔던 것은 아닐까. 김재철은 이명박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2010년 이후에도 '이명박과 같이 간다'를 열심히 실천했다.

김재철 같은 인물이 등장해 MBC를 망치고 방송의 공익성을 망친 것은 제도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MBC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을 가능케 하는 방문진법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의 의중에 영합하는 인물이 사장이 될 가능성을 그 법이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떤 정권이 등장하느냐 어떤 사장이 임명되느냐에 따라 '다이아몬드 반지' 같은 제2의 김중배가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우연을 마냥 기대할 수는 없다. 우연을 기대하고 손 놓고 있는 동안, 제2의 김재철이 또다시 등장할 수도 있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MBC를 항상 빛내게 하는 방법은, MBC 지배구조를 바꿔 국민의 목소리가 사장 선임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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