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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최고'... 헌재 깎아내리려 선 넘은 판사들

[사법농단 - 양승태 42차 공판] 헌재 의식해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 개입, 언론에 대필 기사도

등록 2019.11.08 20:05수정 2019.11.0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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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11.6 ⓒ 연합뉴스

 
위상이라는 허상을 좇은 것이었을까. 결국 누군가는 선을 넘어버렸다.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농단 재판에선 조한창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와 문성호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문 판사는 10월 16일에 이어 두 번째 출석이었다. 이들은 양승태 대법원이 헌법재판소와 '최고 사법기관' 타이틀을 두고 경쟁하며 얼마나 위험하게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진술들을 쏟아냈다.

대표 사례는 통합진보당 문제였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을 결정하자 양승태 대법원은 법원행정처 내에 '통진당 행정소송 대응전담팀(TF)'를 꾸렸다. 검찰은 대법원이 헌재 결정을 심사, 최고법원으로서 우위를 드러내기 위해 TF까지 구성했다고 본다.

실제로 TF는 진보당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등이 의원직 지위 확인 등을 위해 제기한 행정소송을 검토한 보고서에서 "의원직 상실 결정은 헌재의 권한 없는 결정으로 의견표명에 불과" 등의 표현을 써가며 헌재를 견제했다. 또 "법원은 법령의 해석, 적용을 통해 분쟁을 해결할 임무가 있음", "의원직 상실 여부가 달라질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는 여전히 법원의 판단권 내에 있다고 할 것임"이라며 자신들의 위상을 강조했다.

"지나친 검토, 간담이 서늘했다"

2015~2017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 문성호 판사는 전임자 김종복 판사(현 변호사)에게서 TF 관련 문건들을 전달받고 "밑에 사람들이 알아서 이 같은 연구를 했다는 건 상식에 안 맞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헌재에서 의원직 상실까지 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을 넘어서 지나친 검토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간담이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고도 표현했다.

문 판사는 검찰 조사 때 이런 보고서를 "재판 개입을 전제로 한 것 아닌가"라고 평가했고, 법정에서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단순히 소송형태를 분석한 것을 넘어서 제소 방안 등도 포함돼 있었다"며 "근무 당시에 이규진 (당시) 양형실장 등이 (관련 소송) 재판부와 접촉한 사정을 일부 인지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 변호인 고일광 변호사는 "TF에 참여한 이국현 전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현 포항지원 부장판사)은 검찰 조사에서 '정책결정권자들의 결정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사태 전개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차원으로 (TF 활동을) 이해했다'고 답변했는데, 증인 인식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성호 판사는 "재판 사항이기 때문에 정책 결정이란 표현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반박했다. 또 "TF에서 만든 자료가 일선 법원으로 건너간 것은 확인됐기 때문에, 그런 위험이 있는 자료는 안 만드는 게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행정처 문건, 찜찜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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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당 전 의원들 "의원직 박탈 무효다" 2014년 12월 22일 통합진보당 전 의원들이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진보당 강제해산과 의원직 상실 결정에 항의하는 1인 시위를 시작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재연, 이상규, 오병윤, 김미희 전 의원. ⓒ 이희훈

 
문 판사가 말한 '위험한 자료' 중 하나는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검토보고>였다. 조한창 부장판사는 2015년 5월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재직 시절, 이규진 실장으로부터 이 문건을 전달받았다. 보고서는 당시 진보당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지위확인소송의 예상 결론을 각하, 기각, 인용, 일부인용으로 나눠 검토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각하 결정에만 '부적절'이란 표시가 있었다.

이규진 실장은 조한창 부장판사에게 이 보고서를 해당 재판부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 조 부장판사는 법정에서 "각하/기각/인용별 근거들이 나열돼있는 보고서 그 자체가 판결문이 작성되는 것(같은 방식)이어서 이걸 재판부에 직접 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다만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그런 것으로 이해했다"며 "(재판부에 전달할지) 좀 주저하는 건 있었고, (문건을) 받은 것 자체가 찜찜했다"고 했다.

그러나 조 부장판사는 해당 사건 재판장 반정우 부장판사에게 법원행정처의 의견을 전달했다. 그는 "한 서너명이 모인 자리에서 중요한 사건 이야기도 있어서 '마침 기회가 됐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다"며 "각하 등에 법리적 문제가 있으니 신중하게 검토해서 하라고 했고, 반 부장판사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몇 달 뒤 반정우 부장판사는 헌재가 이미 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린 만큼 소송을 진행할 이유가 없다며 각하 판결을 했다. 법원행정처 TF가 보고서에 '부적절'하다고 못박았던 결론이었다.

부당인사, 기사 대필... 상처만 남은 법원

그해 인사평정에서 반 부장판사와 배석이었던 김용찬·서범욱 판사 모두 '중' 등급을 받았다. 이전까지 대체로 '상' 등급이었지만, 이번에는 "일부 사건에서 결론을 도출하면서 객관적인 여러 사정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채 주관이 강하다(반정우 부장판사 판결 작성 평정자료 중에서)" 등 부정적인 평가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세 사람은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검찰은 이들이 법원행정처에 반하는 판결을 했기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고 본다.

양승태 대법원의 헌재 견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성호 판사는 2016년 3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지시로 박한철 헌재소장을 비판하는 기사 초고를 작성했고, 이 글은 작성자만 기자로 바뀐 뒤 거의 그대로 <법률신문>에 실렸다. 헌재에 파견됐던 최희준 판사는 헌재 내부 자료 등을 충실히 수집해 법원행정처로 넘겼다.

이들은 모두 법정에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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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에 있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모습. ⓒ 이희훈

#사법농단 #양승태 #헌법재판소 #대법원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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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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