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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 부디 제주를 지켜 주십시오

[주장] 제주 제2공항 건설계획 전면 취소를 호소합니다

등록 2019.11.09 10:47수정 2019.11.09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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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저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신자로서 살아가는 제주도민입니다. 표선에서 우도로 또 화순으로 이곳저곳 작은 마을들을 돌아다녔습니다. 농사일도 부지런히 하고 시간 나면 바다에도 들어가 먹을 것도 따고, 마을 사람들 만나 이야기 하다 보면 하루 하루가 보람있게 지나갔습니다. 생명을 키우고, 생명을 만나는 것이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라 생각하며 정말 열심히 살아 왔습니다. 

그러다가 강정에 오고 난 뒤에는 밭에 있는 시간보다 도로에서 경찰들이랑, 해군기지 지키는 용역 경비들이랑 씨름하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밭으로, 바다로 가고 싶고 고사리도 따러 가고 싶은데 그야말로 시절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울부짖는 사람들을 두고 어떻게 그것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공소(천주교에서 본당보다 작은 교회 단위) 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지만 후 세대에, 먼저 가신 4.3영령들께 부끄럽지 않기 위해 열심히 했습니다. 

아침 7시면 강정에서는 매일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100배를 합니다. 지금은 해군기지 앞에서 하는데 싸늘한 눈빛이 느껴집니다. 기도를 하는 등 뒤로 해군들과 일하러 들어가는 사람이 보내는 차가운 눈빛. 그래도 해군기지에 꽉 막혀 숨도 못 쉬는 구럼비를 생각하며 힘을 냅니다.

그러고서 밭일 잠깐 하면 금방 11시, 거리 미사를 준비할 시간이 됩니다. 바쁘게 밭에서 미사 천막으로 가 매일 미사를 올립니다. 그러고서 강정의 활동가들과 함께 12시에 인간띠잇기 행사를 합니다. 점심을 먹고서야 온전히 밭에 가 일하거나 바다에 가거나 하는 시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바다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바다가

8일은 해군기지 반대싸움이 4658일째 된 날이었습니다. 제가 2012년 강정에 왔을 때만 해도 짬을 내 숨을 쉬러 바다에 나가면 바닷것들이 살아 있어 우미(우뭇가사리)도 양파 자루에 담아올 수 있고 운 좋으면 성게도 잡아와서 나눠먹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공사 시작하고 해군기지가 완공되고 난 뒤에는 개체수가 줄어드는 건 물론이고 바다에 해초가 없습니다. 바다가 말라가고 있습니다. 바다가.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것처럼 작은 것은 잡지 않아도 다른 것들 얼마든지 잡을 것이 있었고, 4계절 종류별로 해초들이 나와 국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때에 맞는 생물들이 다 살아 있었습니다. 바글바글.

그런데 지금은 사계절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바글바글했던 생명이 없고 먼 바닷가 끝까지 가도 해초가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이런 변화가 정말 무섭습니다. 아마 초기에 해군기지 찬성했던 강정의 해녀들도 지금의 텅 빈 바다를 보면 '아이고 우리가 무슨 짓을 해신고' 겁나고 무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라 씨앗을 던지고 전복 씨앗을 던지면 그게 다음해 되면 자라는 걸 보는데 지금은 껍데기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 이것이 재앙이 아니고 무엇일까요. 평생 바다에 의지해 온 사람들이 어디 가서 살겠습니까. 

돈에만 급급... 깨져버린 마을 공동체

이것은 생명과 관계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어지는 과정에서 생명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황폐화 됩니다. 생명을 돈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강정의 현재 마을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에 대한 건강한 비전이 있는 게 아니라 주어진 돈이니까 그냥 받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후손을 위한 것이다'라고 합니다만 제가 보기엔 내 앞에 있는 돈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을 공동체가 깨지면서 '공동체 회복 사업'이란 명목으로 받은 돈을 나누지 않기 위해 감옥 가고 벌금 낸 이주민들의 주민권을 박탈하고 배척합니다. 

바다는 다 죽고 공동체는 다 깨지고 주민은 주인 의식 없이 돈에만 급급하고 혈안 되어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큰 실수입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돈에 의해 생명이 깨지고 인간이 황폐해지는 강정의 현실을 보고 저는 이런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제주 제2공항을 막는 일에 나서게 됐습니다. 

제2공항은 제2의 강정, 절박한 마음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청와대 앞 천주교 미사 제주 제2공항 계획 철회를 위한 미사가 청와대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 김광철

문정현 신부님께서 제2공항 중단을 위한 9일 기도로 잠시 강정이 아닌 청와대 앞으로 간다고 했을 때 주저 없이 그 길에 따라 나섰습니다. 제가 강정에서 느끼는 변화가, 이 재앙이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주도민으로서 군사 문화에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미군에 의해서 4.3때 소리 없이 처참하게 죽어간 양민들의 영혼이 제 뒤에 있습니다. 강정에서 그리고 이곳 청와대에서 외롭게 100배를 하고 미사를 해도 영혼들이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아마 그 영혼들이 오늘의 제주를 본다면 우리와 함께 억울함을 풀고 싶어 할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주 도민으로서 4.3 영혼들을 기억한다면 군사문화가 시작되면서 생명을 파괴하는 이 문화를 용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이 모든 일을 봐 왔을 설문대할망이 벌떡 일어나 상처난 몸뚱아리를 감싸줬으면 하는 상상을 합니다. 신방들이 설문대할망의 영을 부르면 억울하게 죽은 영들과 모든 사람과 돌과 나무들이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돈에 창자 막혀 죽은 귀신들에게 말입니다. 

제주에 제2공항이 지어진다면 강정의 바다처럼, 몇 백년 동안 조상들이 묻혀 있는 그 오름, 짐승들하고 사람들이 같이 공존했던 그 오름, 그곳이 강정 바다만큼이나 삭막하게 변화될 것입니다. 그런 변화를 두고 본다는 것은 제주 사람으로서 제주를 포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저는 후손들에게 제주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 2공항을 막아냈다고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 이곳에서 무릎을 꿇고 탄원을 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 '제주 제2공항백지화전국행동' 전국 290여 단체들 중심으로 출범)

평생을 거리에서 보내신 문정현 신부님이 옆에 계시고 국민 정서에 공감했던 정부였으니 2공항에 대한 진실을 알면, 강정이 얼마나 황폐해졌는지를 알면 정부의 생각도 바뀔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루 종일 묵주 기도를 하고 100배 절을 합니다. 만나는 경찰들의 모습이 하나도 바뀌지 않아 조금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만은 이 통렬한 외침에 응답하지 않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 

대통령만은 응답하지 않을까
 

청와대 앞 햇볕에 기대 강정에서 들고 온 땅콩을 까고 있다. 정성스럽게 농사지은 땅콩을 강정에서부터 이곳까지 들고 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삶. 길에서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 정선녀


저는 이제 다시 강정에 내려갑니다. 청와대 앞에서 기도하며 화학비료 주지 않고 생명 농사로 지은 땅콩을 가져와 하루 종일 껍질을 깠습니다. 땅콩 한 알은 흙을 살립니다. 흙속에서 미생물들과 같이 농약이나 화학비료로 길들이지 않은 순수한 생명입니다. 손가락마디 관절이 쑤시지만 죽는 날까지 우리 밭에서 나는 흙과 함께 하며 하루를 평생처럼 그렇게 강정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땅을 살리는 기도, 바다를 회복하는 기도, 우리 사람 안에 양심이 다시 살아날 수 있게 하는 기도, 우리 스스로가 지킬 수 있는 자존감 살려내는 기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제주도민이 간절히 원하는 생명 살리는 이 탄원에 '2공항 중단'이라는 문재인 대통령만이 해줄 수 있는 선물이 돌아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이 보물섬 제주를 지켜 주십시오.
 

청와대 앞에서 간절한 기도를 올린다 청와대 앞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마음을 모은다. 대체로 신자들이지만 제 2공항 강행 소식을 듣고 우리의 기도에 마음을 모으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다. 강정에서는 쓸쓸한 천막 미사이지만 이 추운 청와대 앞에는 마음을 모아주는 사람들의 발이 끊이지 않는다. 감사하고 힘이 된다. ⓒ 백승호

 
#제주 제2공항 #강정 #4.3 #제주 제2공항 반대 #제주 난개발 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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