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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도 저지른 아이... 교사는 왜 직접 개입하지 않았을까

[리뷰] 아픈 청소년들을 향한 믿음의 메시지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19.11.11 16:18최종업데이트19.11.1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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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포스터 ⓒ 부영엔터테인먼트

 
2009년 작품 <바람>은 개봉 당시 흥행에 크게 성공하진 못했다. 하지만 이후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화제가 되었고 몇몇 이들에게는 '인생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성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폼 나게 살고 싶은 고등학생 짱구가 폭력조직에 엮이는 이야기를 잘 담아내며 깡패영화가 아닌 한 청춘의 인생이 지닌 단면을 진심으로 표현해냈다. 잘 만든 영화는 많지만 마음을 울리는 영화는 드문데, <바람>은 그 중 하나다. 
 
이성한 감독이 보여준 이런 진심은 영화적인 완성도나 이야기의 흥미와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그 감정을 곱씹을 수 있는 순간을 감독은 만들어낼 줄 안다.

그런 점에서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또한 진심을 다해 청춘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작품이다. 비행 청소년 구조 활동으로 유명한 일본의 교사 겸 작가인 미즈타니 오사무의 저서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품 속 교사 민재(김재철 분)는 비행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 싶어 한다. 그의 반에도 세 명의 비행청년 준영(윤찬영 분), 용주(손상연 분), 현정(김진영 분)이 있다. 민재는 그들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돈이 궁한 준영은 취객의 지갑을 훔쳐 용주와 함께 저녁을 해결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블랙박스에 찍히면서 형사들은 준영을 잡기 위해 학교에 온다. 교무실에서 미리 사실을 파악한 용주는 이 사실을 준영에게 알리고 준영은 도망친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스틸컷 ⓒ 부영엔터테인먼트

 
준영이 선뜻 민재와 가까워지지 못하는 이유는 준영과 그 친구들이 지닌 어른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준영은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고 툭하면 어머니에게 돈을 요구하는 삼촌 때문에 괴로워한다. 용주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는 툭하면 '아들을 낳다 아내가 죽었다'면서 용주를 원망한다. 때문에 용주가 집에서 아버지를 견뎌내는 유일한 방법은 모른 척하며 게임을 하는 것이다. 현정은 학업보다 아르바이트에 매진한다.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정은 어른들을 못 믿을 존재라 생각한다.
 
절도 사건 이후 준영은 학교에 가지 못한다. 민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음에도 어른을 신뢰하지 않기에, 어른들에 의해 다시 고통을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더 낮고 어두운 곳으로 계속 도망친다. 이 작품의 진심은 준영을 대하는 민재의 모습을 그려내는 지점에 있다. 비행 청소년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 사이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드라마는 얼마든지 자극적이고 극적일 수 있다.
 
민재가 직접적으로 아이들의 문제에 개입하고 그들의 해결사를 자처할 수도 있으며 이를 학생과 교사의 끈끈함으로 포장하면서 극적인 재미를 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구성은 영화적인 재미는 줄 수 있지만 미즈타니 오사무라는 인물이 보여준 위대한 사랑을 그려내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영화는 학생을 대하는 교사의 태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바로 관심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관심을 기울이되 그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스틸컷 ⓒ 부영엔터테인먼트

 
비행 청소년의 대부분은 어른에게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부모조차 버린 자신을 남이 감싸주고 사랑해줄 것이라 여기지 않는 것이다. 지나친 관심과 사안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은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는 반항이고 둘째는 의존이다. 학생이 아예 교사에게 척을 지고 대항하거나 모든 문제를 교사가 이해하고 해결해주길 바란다.
 
이런 문제는 교사를 지치게 만든다. 교사도 사람이고 감정이 있다. 학생에게 상처를 받으면 교사가 먼저 포기하게 된다. 그래서 민재는 준영에게 연락을 하라고 말한다. 언제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힘들고 지쳐 더 이상 세상과 맞설 힘이 없을 때 도움을 청하라고 말이다. 이런 민재의 모습을 통해 영화가 비행 청소년들을 단순히 오락요소로 여기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는 청소년들의 고통과 현재를 보여주며 그들이 위로와 관심을 바라고 있음을 알려준다. 

여기에 준영을 비롯한 인물들의 문제를 어른들과 연결지은 점은 비행 청소년의 문제가 특정 시기의 특정 인물들이 겪는 것이 아닌 사회 전체가 책임지고 관심을 가져야 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가정에서 버림받고 또래들에게 무시당하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공간은 학교뿐이다. 학교는 아이들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장소이기에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됨을 영화는 강조한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는 제목만큼이나 따뜻한 감성으로 비행 청소년 문제를 조명한다. 어제 일이 모두 괜찮다는 말은 잘못에 대한 묵인이나 무책임을 뜻하는 게 아니다. 어제의 일이 오늘의 네가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위로의 말이다. 영화는 사회의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상처받는 아이들을 향해 너희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 줄 테니 함께 있어달라는 따스한 믿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어제 일은 모두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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